바이오필리아, 숲을 사랑하는 유전자

입력
2020.11.26 22:00
27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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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을 공부하는 나는 다른 사람들이 '숲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숲을 왜 찾는지?', 또 '숲에서 무엇을 하는지?' 등에 관심을 갖는다. 그래서 내 강의 첫 시간이나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수강생들에게 '숲이란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나 생각은 무엇인가?'란 질문을 자주 한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하게도 대부분의 답이 긍정적인 의미가 담긴 단어들이다. 예컨대 '포근함' '고향' '모태' '부드러움' '평온' 같은 것들이다. 아주 가끔은 '무서움'이나 '더러움'같은 부정적인 의미의 단어도 나오긴 하지만 말이다.

왜 우리는 이렇게 숲에 애착을 갖고, 숲의 아름다움에 감동하며, 기회가 있으면 숲으로 가려는 것일까? 그 답을 찾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 인간의 기원부터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얼마 전 세계적 학술지인 '사이언스'는 에티오피아 아와시강 지역에서 발굴된 유골을 갖고 전 세계 47명의 과학자들이 16년간 복원작업을 벌여 '아르디'란 별명을 가진 최고 오래된 인간의 모습을 공개했다. 과학자들은 이 유골의 주인은 약 440만년 전에 생존했던 인류 조상이라고 밝히고 있다.

440만년. 우리 인간의 머리로는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는 세월이다. 그 장구한 세월을 인류는 거의 대부분 숲에서 수렵과 채취로 살아왔다는 게 인류학자들과 고생물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그리고 1만년에서 5,000년 전쯤 인간은 숲에서 나와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농경과 축산을 통해 식량을 재배하고 사육을 시작하였다. 현재 우리의 생활을 지배하는 모든 것들은 인류가 숲에서 나와 공동체 생활을 하기 시작한 이후의 산물들이다. 1만년이란 세월은 우리 인간의 삶에 비추어 볼 때 꽤나 유구한 시간이다. 그러나 진화라는 시간의 척도에 비추어보면 1만년은 아주 짧아서 우리의 몸과 마음은 그 사이에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는데 불충분하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육체적/심리적 유전 설계는 1만년 전 숲에서 살았던 조상의 것과 별로 큰 차이가 없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몸과 마음에 숲에 적합한 유전설계가 남아 있고 자연에 의지해야 하는 유전자가 있다는 주장이 바로 '바이오필리아'이다. 그런데 인간이 숲에서 나온 이후 1만년의 세월동안 환경의 변화를 살펴보라. 우리 주변의 환경은 너무나도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 우리 국민의 90% 이상이 도시환경에서 거주하며 하루 맨땅 한번 밟아보지 못하는 실정이다. 도시에 숲이 필요한 이유이다. 우리나라는 도시민 1인당 약 9.91㎡ 정도이며, 런던의 27㎡나 뉴욕의 23㎡에 비하면 아주 부족한 실정이다.

여기서 우리 인간은 큰 갈등과 모순을 경험한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심리적 압박은 물론이고 육체적인 질병의 위협까지도 느낀다. 이 '바이오필리아'가 바로 우리가 숲과 조화롭게 교류하고 살아야 할 이유이다.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바쁜 틈틈이 잠시라도 짬을 내 공원이나 뒷산의 숲을 찾고 여유를 가져야 한다. 한자의 '쉴 휴(休)'가 사람과 나무가 어울려 있는 형상이라는 것도 뜻 깊다. 우리가 살면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받은 스트레스는 빨리 해소하여야만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숲과 교류함으로 바이오필리아를 충족시키는 것이 바로 현명한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다.



신원섭 충북대 산림학과 교수ㆍ전 산림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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