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산과 들에 나무를 심어라!

입력
2020.11.26 04:30

©게티이미지뱅크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지나고 조선의 산과 들에 나무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산림을 개간하는 화전(火田)의 영향도 있지만 국가의 토목과 건축 사업, 그리고 백성들이 사용하기 위해 무분별한 나무 베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효종대에 온돌이 보급되고 나서부터 더욱 나무가 귀해졌다.

조선 조정에서 국가가 정한 지역의 산과 왕릉 일대에 나무 베기를 금지시켰지만 백성들은 사직단의 소나무도 베고 세종대왕의 영릉에 있는 나무도 베어 갔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조선후기에 온 나라가 민둥산으로 변해 홍수가 발생할 때마다 백성들은 물난리로 고통을 당했다. 이에 대한 심각성을 깨달은 숙종은 나무를 베지 못하게 하는 금송정책(禁松政策)을 실시하였지만 효과는 거의 없었다.

정조는 금송정책의 한계를 뛰어넘어 식목정책을 추진하기로 하였다. 나무를 베지 못하게 하는 것보다 나무를 많이 심어 산림을 푸르게 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조는 먼저 오늘날 혜화동 서울대학교병원 일대인 사도세자의 사당 경모궁(景慕宮)에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그 결과 몇 년 안 되어 숲이 울창하게 조성되었다.

이때 정조는 나무 전문가인 식목직(植木直)을 관리인으로 두고 나무를 전문적으로 운반하는 군인들인 운목군(運木軍)과 나무를 심는 식목군(植木軍)을 두어 안정된 급여를 주고 나무 심기에 전념하게 하였다. 전문가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혁신 사업을 추진한 것이다.

이후 정조는 자신이 만든 혁신도시 수원을 중심으로 나무를 심었다. 사도세자의 묘소인 현륭원 일대와 수원도호부 관아가 새로 들어선 팔달산 일대에 소나무 등 목재로 사용될 수 있는 나무와 유실수를 적극적으로 심었다. 그리고 수원 인근의 광주(廣州)와 용인 등 7개 고을에 나무 심기를 시작하였다.

1789년 7월부터 심기 시작하여 5년간 심은 나무는 무려 1,200만9,712그루였다. 정조는 나무를 심는 것은 백년 미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만년을 내다보는 계획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길게 내다 보는 안목과 실천으로 조선의 산하는 다시 푸르게 되었다. 이는 매우 중요한 경제 기반이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는 우리의 새로운 미래를 위해 그린뉴딜을 추진한다. 자연과 환경을 지키면서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내는 일이 바로 그린뉴딜이다. 나무가 없는 조선의 산천에 나무를 심은 정조의 행동이 바로 그린뉴딜이고, 이를 계승하는 새로운 친환경 사업이 바로 우리가 지금 하고자 하는 그린뉴딜인 것이다. 창의적이고 혁신적 사고는 거대한 인공물을 통하지 않고서도 새로운 경제 발전의 토대를 만든다. 이를 우리는 실천해야 한다.



김준혁 한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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