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스 갬빗' 이야기의 뿌리

입력
2020.11.26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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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사무엘 레셰프스키

8세의 레셰프스키가 프랑스 파리에서 체스 강자들과 벌인 동시대국 장면. chess.com

8세의 레셰프스키가 프랑스 파리에서 체스 강자들과 벌인 동시대국 장면. chess.com

넷플릭스 드라마 '퀸스 갬빗'은 고아 체스 신동 '베스'의 기적같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의 주체적 삶은 얽힌 섹시즘의 덩굴들을 걷어내는 개척의 시간과 맞물려 있다. 냉전기 동서의 체스 대리전은 선악 이분법의 클리셰를 비껴가고, 긴장의 소품인 약물(신경안정제란 게 아이러니) 에피소드도 과하지 않아 거슬리지 않는다. 전쟁터에 흔히 비유되는 체스 무대에도 악당이 없고, 절규도 잔혹도 없다. 딱 한 명 악역이라 할 만한 그의 양아버지도 악당이 되기엔 너무 잘다.

그런데 재미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TV 앞에서 세월을 보냈다는 작가 스티븐 킹도 얼마전 자신의 트위터에 '퀸스 갬빗'이 올해 최고의 드라마였다며 이렇게 썼다. "완전 끝내 준다(Utterly thrilling). '시카고 세븐 재판(The Trial of The Chicago Seven)'을 능가할 작품은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이게 해내네."

고아원 잡역부에게서 체스를 배운 베스가 지역 고교 체스팀 지도교사를 꺾고 체스팀 에이스들과의 집단 대결에서 완승하는 장면은, 폴란드 출신 미국 체스 선수 사무엘 레셰프스키(Samuel Reshevsky, 1911.11.26~1992.4.4)의 실화를 차용한 듯하다. 4세 무렵 체스에 입문한 레셰프스키는 6세 때 마을 최강자가 됐다. 1차대전 종전 이듬해 미국으로 이민간 그는 8세이던 1920년 프랑스 파리에서 체스 대가들과 집단 대국을 벌였고, 9세 땐 미 육사 웨스트포인트의 장교와 사관 중 선발된 스무 명과 맞서 19승 1무승부를 기록했다. 그해 그는 미국 전역을 돌며 내로라하는 이들과 1,500여 대국을 벌였고, 진 건 8번이었다. 체스 원정 때문에 학교를 거의 못 다닌 탓에 그의 부모는 당국의 처벌을 받았고 그는 부득이 1924~1931년 체스판을 떠나야 했다. 그리곤 시카고대 입학 이듬해 US오픈 체스 챔피언십 우승을 시작으로 1960년대까지 미국 대회에서만 수십 차례 우승했다. 하지만 월드 챔피언이 되지는 못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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