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 아탈리 "유럽이 한국 아닌 中 도시폐쇄 모델 따른 건 불운"

입력
2020.11.23 16:00
수정
2020.11.23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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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신간 출간 맞아 한국일보와 화상인터뷰
"팬데믹 이후 이타주의적 생명경제로 전환,
마스크처럼 남도 돕고 나를 위한 길 찾아야"

미래 경제학자 자크 아탈리가 20일 한국일보와 화상인터뷰를 하고 있다. 오른쪽은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민청 태평홀 화상회의 전용 스튜디오 서울온(ON)에서 열린 제 5회 서울브랜드 글로벌 포럼 세션1에서 강연을 하고 있는 아탈리의 모습. 스카이프 캡처·뉴시스

미래 경제학자 자크 아탈리가 20일 한국일보와 화상인터뷰를 하고 있다. 오른쪽은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민청 태평홀 화상회의 전용 스튜디오 서울온(ON)에서 열린 제 5회 서울브랜드 글로벌 포럼 세션1에서 강연을 하고 있는 아탈리의 모습. 스카이프 캡처·뉴시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전 세계가 단절, 예측 불확실성 등 새로운 삶의 방식에 들어서고 있다. 세계의 유명 석학들은 코로나19를 계기로 인류는 새로운 세계, 새로운 패러다임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국가주의적 고립보다는 글로벌 연대가 중시되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고, '노동의 종말'의 저자 제레미 리프킨은 "발전의 시대를 벗어나 복원의 시대로 전환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21세기 르네상스 맨'이란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세계적 지성인 자크 아탈리는 10여 년전 '이타주의'라는 화두를 꺼냈다. 현재의 경제 사회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그는 '긍정경제' 모델도 제시했다. 미래 세대를 생각하는 이타주의가 오늘날 시장 경제를 지배하는 개인주의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자크 아탈리는 20일 한국일보와 화상 인터뷰에서 '생명경제(Economy of life)'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다. 그는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이타주의'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팬데믹 이후에는 이기주의적 생존경제에서 이타주의적 생명경제로 가야한다고 촉구했다. 아탈리의 소속사 아탈리&아소시에 측에 따르면 '생명경제로의 전환'이라는 그의 최신작이 한국 독자들을 만날 예정이다.

"각국 GDP 절반 차지하는 '생명경제', 80%까지는 올려야"

자크 아탈리.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 연구원 제공

자크 아탈리.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 연구원 제공

아탈리는 "코로나19 위기로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분야의 경제적 가치가 상당히 높아질 것"이라며 '생명경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생명경제의 개념을 "건강, 식품, 문화, 교육, 연구, 클린에너지, 디지털, 물류, 위생, 농업 등 생명과 건강과 관련 있는 기본적인 분야"라고 정의했다. 그는 "이들 분야는 현재 각 나라의 국내총생산(GDP)에서 절반 가량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를 80%까지는 끌어올려야 한다"며 "기업들은 이 분야들과 관련 있는 사업을 찾아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충고했다.

기존에 제시했던 '이타주의'와 '생명경제'를 어떻게 연결지을 수 있냐는 질문에 아탈리는 '이타주의적 생명경제'의 대표 사례인 방역 문제를 언급했다. 그는 특급 호텔들의 건강관리 시설의 탈바꿈을 예로 들었다. 아탈리는 "가령 팬데믹이 발생할 경우 호텔 객실 상당 부분을 감염 환자들의 가족이나 밀접 접촉자들을 격리시키는 시설로 활용할 수 있다"며 "(이는) 감염 확산을 막는 점에서 이타적이지만 동시에 호텔 측에도 유의미한 수입원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홍콩에서 파크레인호텔은 한 층 전체를 격리를 필요로 하는 고객들에게 할애하는 '격리 패키지'를 1,600달러에 판매하기도 했다.

이타주의적 행동에 대해 아탈리는 마스크 착용을 예로 들었다. 그는 "마스크를 끼는 것은 결국 나말고도 (혹시 나로 인해 타인이 감염되는 확률을 줄이기 때문에) 남들의 건강과 생명까지 보호하는 일"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이 결국 나에게 이익(interest)이고 유용하다(useful)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탈리는 "미래 세대를 위해 우리가 이타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그는 "미래 세대가 건강을 유지하고 경제 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며 "그래야 미래의 그들 자신은 물론 지금의 기성 세대를 위해 연금을 낼 준비를 하게 되고 이것이 결국 앞으로 자신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식으로 생각할 수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기후 변화를 포함해 미래에 닥쳐 올 또다른 팬데믹 위협을 대비해야 한다"며 "그게 뭔지 몰라도 결국 우리를 위한 일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미중 힘 약화될 것…글로벌 협력 강화된다"

프랑스 미래학자 자크 아탈리가 2007년 2월 1일 오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비전2030 국제포럼'에 앞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반도 통일 전망에 대한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프랑스 미래학자 자크 아탈리가 2007년 2월 1일 오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비전2030 국제포럼'에 앞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반도 통일 전망에 대한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아탈리는 새로운 지정학적 위기가 도래할 것이라고도 전망했다. 그는 현재 미국과 중국 두 강대국으로 이끌고 있는 세계 질서가 재편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번 위기는 주인 없는 세계(anarchy)로의 변화를 가속화할 것이며, 그 변화에서 미국과 중국은 둘다 약화할 것으로 본다"며 "바이러스에는 국경이 없는 만큼 전 세계적으로 정부 사이에 경계가 사라지고 글로벌 협력 등이 더 강화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세계 경제 질서도 방향을 전환할 것이라는 예측도 내놨다.

그는 "한 국가 또는 한 정부가 세계를 좌지우지했던 힘의 선이 이제는 무의미해질 것"이라면서도 "다만 이 두 열강의 약화를 기회 삼아 밝은 미래가 열릴 수 있게 하려면 현재보다 훨씬 강력하고 민주적인 국제기구들을 발족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를 위해선) 가장 우선시되는 분야인 생명경제에 대대적인 투자를 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탈리는 팬데믹 상황에서 유럽이 마스크 착용·빠른 진단·검사·격리 조치를 선택한 한국이 아닌 도시를 폐쇄한 중국 모델을 따랐다는 건 인류의 불운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조기에 마스크 착용이 결정됐더라면 충분히 제어할 수 있었을 상황에서 유럽은 손을 놓고 있다가 (중국식) 봉쇄 및 격리 지침을 내렸다"며 "적시에 마스크와 진단 검사 키트 생산에 돌입했을 경우 들어갈 비용은, 전격적 격리로 인해 전 세계에 일어난 불황으로 인한 비용의 1만분에 1에 불과했다"고 꼬집었다.

한편 유럽에서 손꼽히는 석학인 자크 아탈리는 프랑수아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의 특별보좌관을 지냈다. 유럽부흥개발은행(EBRD)를 설립해 초대 총재를 지냈다. 현재는 컨설팅회사인 아탈리&아소시에와 마이크로 파이낸스 전문 비정부기구(NGO)인 포지티프 플래닛의 대표로 일하고 있다. '21세기 사전', '어떻게 미래를 예측할 것인가', '자크 아탈리의 긍정경제학', '인류는 어떻게 진보하는가', '미래의 물결' 등 50권 이상의 저서를 펴냈다.

손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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