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근병증 등 희소난치 심장병도 유전자 검사로 조기 진단ㆍ치료 길 열었다

입력
2020.11.24 04:2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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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의에게 듣는다] 오재원 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교수

오재원 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유전자 검사로 희소난치병인 심근병증을 조기 진단해 치료하는 길이 열렸다"고 했다. 세브란스병원 제공

오재원 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유전자 검사로 희소난치병인 심근병증을 조기 진단해 치료하는 길이 열렸다"고 했다. 세브란스병원 제공


개인 유전자 정보를 분석해 질병을 조기 진단하고 맞춤형 치료를 시행하는 ‘정밀 의료(precision medicine)’가 이제 연구 단계를 넘어 임상에 직접 적용되는 시대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2015년 내세웠던 정밀 의료가 국내에서는 2017년 암과 희소 난치병 환자의 유전체 검사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면서 본격화됐다. 건강검진에서는 비급여로 유전자 검사를 받을 수 있고, 병원 밖에서도 소비자 직접 의뢰(DTC)로 유전자 검사를 받을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세브란스병원은 지난해 8월 국내 처음으로 심장혈관 질환에 정밀 의료를 적용하는 ‘심장혈관질환 유전체클리닉’도 개설했다. 이 클리닉은 심장근육 세포 이상으로 초래되는 ‘심근병증’을 포함한 여러 심장혈관질환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면서 환자와 가족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 심장혈관질환 유전체클리닉을 이끌고 있는 오재원 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교수를 만났다. 오 교수는 “우리 클리닉은 희소 난치성 질환인 심근병증 환자의 가족이 비록 증상이 없더라도 유전자 검사로 질병 유무를 조기 진단해 치료하는 획기적인 계기를 마련했다”고 했다.

-심근병증은 일반에게 낯선 심장병인데.

“쉬지 않고 수축과 이완을 하면서 온몸에 혈액을 보내는 심장의 원동력은 심장을 둘러싼 심장근육이다. 심장근육이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해 충분한 양의 혈액을 온몸에 내보내지 못하면 숨이 차거나 다리가 붓는 증상이 생긴다. 바로 심부전이다. 심근병증은 이러한 심부전을 일으키는 원인의 하나다. 심근병증은 10만명당 100명 정도가 앓는 희소 난치병의 일종이다. 심실이 비정상으로 커지면서 수축 기능이 떨어지는 ‘확장성 심근병증’, 심실 벽이 두꺼워지면 굳어지는 ‘비후성 심근병증’으로 나눌 수 있다.

심근병증이 생기면 온몸에 충분한 혈액을 공급하지 못해 숨이 차고 부종 등으로 활동하기 어려워지는 것은 물론, 폐ㆍ콩팥 등에 혈액이 정체되는 울혈로 해당 장기에 합병증이 생기고 심장박동이 불규칙해지는 부정맥도 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조기에 진단해 적절한 치료를 하지 않으면 돌연사할 위험이 높아지고, 심장 기능이 계속 악화하면 심장이식까지 받아야 할 수도 있다.”

-심근병증을 어떻게 알아낼 수 있나.

“희소 난치병인 심근병증은 유전적인 원인으로 주로 발병한다. 이에 따라 유럽ㆍ미국에서는 산전(産前) 유전자 검사로 심근병증 발병 유무를 알아내고, 환자 가족들에게 유전자 검사를 적극 시행하고 있다. 아쉽게도 국내에서는 비용 문제로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현재 확장성 심근병증의 경우 30여개의 유전자 이상으로, 비후성 심근병증은 10여개의 유전자 이상으로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확장성 심근병증은 30~40%, 비후성 심근병증은 60~70% 환자에게서 유전자 이상이 나타나기에 이에 대한 유전자 검사가 반드시 필요하다. 앞으로도 더 많은 원인 유전자가 발견될 것으로 보인다.”

-심근병증 연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세브란스병원은 2000년 ‘심혈관계질환 유전체연구센터’를 개설했다. 이를 통해 한국인에게 많이 생기는 고혈압ㆍ이상지질혈증ㆍ심혈관계질환의 유전적 원인과 환경 인자를 분석하고 데이터를 축적하면서 다양한 유전성 심혈관계질환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유전성 이상지질혈증ㆍ마르판 증후군 등은 전담 교수진이 클리닉을 열어 전문적으로 진료하고 있다. 확장성 심근병증 클리닉도 지난 해 2019년 8월 다학제 의료진이 참여하는 심장혈관질환 유전체클리닉으로 확대해 운영하고 있다.

환자마다 다른 유전자 이상을 가진 심근병증을 맞춤형 치료하려면 환자의 유전자 검사 결과를 정확히 분석할 수 있는 의료진뿐만 아니라 근본적인 병 원인을 알아내고 치료하기 위해 기초연구를 담당할 교수진도 필요하다. 심장혈관질환 유전체클리닉의 다학제 진료팀은 심장내과 교수 외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이승태ㆍ신새암)가 첨단 유전자 분석 기법을 이용해 환자 별 유전자를 정밀 분석하고 있다. 또 병의 기초연구를 위해 연세대 의대 생화학분자생물학교실(이승현), 의생명시스템정보학교실(김상우) 교수 등도 참여하고 있다. 실제 2014년 강석민ㆍ오재원 심장내과 교수팀과 이한웅 연세대 생화학과 교수팀의 공동 연구로 NCOA6라는 확장성 심근병증 유발 유전자를 새로 밝힌 바 있다.

기초연구를 담당하는 교수진은 줄기세포로 유전자를 조작해 심근병증이 있는 심장근육세포로 분화시켜 병 원인과 발병 메커니즘, 병 진행을 더디게 하는 새로운 치료법 개발과 새로운 유전자 이상을 밝혀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심장혈관질환 유전체클리닉은 환자뿐만 아니라 유전성 질환임을 감안해 환자 가족들을 대상으로 해당 질환을 알아내기 위해 유전자 검사 등으로 조기 진단해 치료하기 위해 한 달에 1회에 한해 토요일에 별도 진료하고 있다. 지금까지 400여명 유전성 심장혈관질환 환자와 150여명의 환자 가족에 대해 검사ㆍ진료했다.

이를 통해 심근병증을 일으키는 유전자 변이 가운데 한국인에게서 주로 나타나는 유전자 이상을 밝혀 신속히 진단하는 것은 물론, 한국인에 맞는 유전성 심장혈관질환 임상 진료 지침도 마련할 예정이다. 또한 유전자 이상에 근거한 신약 개발과 유전자 치료로 심장혈관질환에서도 맞춤형 정밀 의료를 실현할 것이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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