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 손흥민과 토트넘 손흥민

입력
2020.11.20 22:00
23면
손흥민이 17일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한국 vs 카타르 경기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손흥민이 17일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한국 vs 카타르 경기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태극 마크'는 모든 축구 선수들의 꿈이다. 축구 선수들도 마찬가지여서, 처음으로 국가대표팀에 소집된 선수들은 평생 잊지 못할 감격을 경험한다. 하지만 갈수록 국가대표팀 간 경기(A매치)의 인기가 시들해지는 게 세계적인 추세다. 유럽의 축구 산업화가 가속화되면서 축구의 인기는 월드컵 중심에서 클럽 대항전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 국가주의가 약화되고 글로벌화가 가속되는 사회적인 배경 역시 축구 인기의 축이 달라지는 데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이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국적이나 고향에 얽매이기보다는, 자신의 취향에 따라 몰입할 대상을 선택한다.

그렇다고 국가주의가 소멸된 것은 아니다. 지금의 스포츠 국가주의는 물리적인 '태극마크'에 국한되지 않는다. 대한민국 국적의 선수들이 더 크고 화려한 무대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면서 큰 만족을 느낀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A매치 기간 동안 팬들이 손흥민을 둘러싸고 보인 반응은 몹시 인상적이었다. 대표팀 주장 손흥민은 올 시즌 소속팀에서 최고 전성기를 누리는 중이다. 프리미어리그 득점 1위에 오른 것을 비롯해 거의 매 경기 골과 도움을 기록하며 유럽 최고의 공격수 중 한 명으로 자리를 잡았다. 팬들은 손흥민이 대표팀에서 많은 경기를 뛰기보다는 휴식을 취하길 원했다. 11월 A매치는 아무런 타이틀이 없는 평가전에 불과했기 때문에 손흥민이 여기서 체력을 소진하길 바라지 않았다.

그러나 손흥민은 사흘 간격으로 치러진 2경기(멕시코전, 카타르전)를 모두 풀타임으로 뛰었다. 다수의 팬들은 분노했다. 대표팀의 파울루 벤투 감독이 손흥민을 '혹사'시켰다며 감독에게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더군다나 대표팀에 소집된 선수 중 무려 7명이 코로나19 확진자로 분류되자 성토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국가대표 손흥민보다 토트넘 손흥민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이들이 많다. 매주 손흥민이 뛰는 유럽 축구를 기다리는게 사는 낙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대표팀이 소속팀 복귀 후 경기 출전에 '방해'가 되지 않길 바라는 것도 그래서다. 그런데 국가대표팀 선수들을 코로나19가 창궐한 오스트리아의 빈으로 소집하다니, 게다가 경기 전 선수단에서 무더기 확진자가 발생했는데도 경기를 강행하다니. 카타르전이 끝난 뒤, 이날 골을 넣은 황희찬의 코로나 확진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자 대한축구협회와 벤투 감독을 향해 더욱 거세게 비난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2020년 일정을 거의 통째로 날려 버린 대표팀의 입장은 이해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여러 가지 이유로 A매치를 미룰 수 없는 상황에서, 해외 개최는 유일한 대안이었다. 해외에서 뛰는 선수들이 대표팀의 주축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입국자 자가 격리를 의무화한 국내에서 경기를 치르는 건 아예 불가능한 일이었다. 덕분에 손흥민 황의조 황희찬 등 유럽 리그 소속 선수들을 대거 소집할 수 있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팬들은 이들의 골보다는 건강과 안정을 더 바랐다.

손흥민의 안녕을 걱정한 소속팀 토트넘은 전세기를 빌려 빈으로 보냈다. 전세기를 타고 런던으로 복귀한 손흥민은 코로나 음성 판정을 받고 팀 훈련에 복귀했다. 팬들은 대표팀의 경기 결과보다 내일 새벽에 열릴 토트넘과 맨체스터시티의 경기를 더 기다린다. 선수들은 여전히 국가대표팀에서 뛰는 걸 영광으로 여기지만 팬들은 달라졌다. 앞으로는 이런 현상이 더 짙어질 것 같다.



서형욱 풋볼리스트 대표ㆍ축구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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