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부죄금지(自己負罪禁止) 원칙 흔들기

입력
2020.11.15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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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공수처장후보자추천위원회 2차회의에 참석해 자료를 보고 있다. 뉴스1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공수처장후보자추천위원회 2차회의에 참석해 자료를 보고 있다. 뉴스1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한동훈 검사장 사례를 거론하며 휴대폰 비밀번호 제출을 거부하는 피의자를 처벌하는 법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것을 두고 반발 여론이 만만치 않다. 심지어 진보 성향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 참여연대까지 나서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핵심 논지는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을 권리를 의미하는 헌법상 자기부죄금지(自己負罪禁止) 원칙에 정면으로 반하는 위헌적 발상이라는 것이다.

□자기부죄금지 원칙은 17세기 말 영국 종교재판소가 청교도를 상대로 지나치게 가혹한 신문을 한 데 대한 반성에서 보통재판소가 확립한 형사소송의 대원칙이다. ‘아무도 자기 자신을 고발할 의무는 없다’는 법언이 여기에 해당한다. 미국도 수정헌법 5조에 ‘누구든지 형사 사건에서 자기의 증인이 되는 것을 강요받지 아니한다’는 규정을 두었다. 우리 헌법도 12조 2항에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는 문구가 포함됐다. 이러한 자기부죄금지 원칙에 터잡아 허용된 권리가 바로 진술거부권, 다른 말로는 묵비권이다.

□자기부죄금지 원칙이 없다면 수사기관은 진술을 받아내기 위해 강압수사의 유혹에 빠지게 된다. 자기부죄적 진술의 강요를 금지하는 것은 실체적 진실 발견보다 피의자ㆍ피고인 인권을 우선적으로 보장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보장하겠다는 일종의 선언이다. 자기부죄금지는 공정한 재판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피고인이 검사와 대등한 지위에서 공격ㆍ방어의 수단을 갖게 하려면 진술거부권이 필요하다. 지난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의 진술거부권 행사가 우리 사회에서 용인된 것은 이런 법원칙에서다.

□시대 변화에 발맞춰 디지털 증거에 대한 피의자의 협력 의무 등에 대한 논의는 필요하다. 하지만 수사 편의를 위해 강제수사의 범위를 확대할수록 인권 침해 가능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자기부죄금지 같은 기본 원칙에 예외를 만드는 일은 최대한 자제하고, 반드시 필요 최소한으로 해야 한다. 지금처럼 반대편 공격에 쓰려는 목적으로 손대는 방식은 곤란하다. '촛불 정부'를 자임하면서 인권 보장을 위해 인류가 힘들게 쌓아온 원칙을 함부로 흔들어서야 되겠는가.

김영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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