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료 직접 기르고, 음식물쓰레기는 퇴비로…미식계에 초록별이 뜬다

입력
2020.11.16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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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제로 웨이스트 레스토랑'을 선언한 영국 런던의 '사일로(Silo)'는 자체 농장이나 지역 소규모 농장에서 기른 식재료를 활용해 요리를 한다. 요리들은 폐플라스틱을 녹여 만든 접시에 담는다. 사일로 인스타그램

세계 최초의 '제로 웨이스트 레스토랑'을 선언한 영국 런던의 '사일로(Silo)'는 자체 농장이나 지역 소규모 농장에서 기른 식재료를 활용해 요리를 한다. 요리들은 폐플라스틱을 녹여 만든 접시에 담는다. 사일로 인스타그램


이제 음식점을 고를 때 맛과 양 만큼이나 ‘지속가능성’을 따지는 시대가 됐다. 기후위기와 코로나19 확산 등으로 환경에 대한 전세계적인 관심은 입고 쓰는 것에서 미식의 영역으로까지 확대됐다. 지역에서 생산된 제철 재료를 쓰고, 직접 농장을 운영하고, 재활용한 가구와 식기를 사용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최소화하는 음식점들이 전세계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세계적인 음식점 평가서 미쉐린가이드도 올해부터 지속가능한 미식을 추구하는 레스토랑에 ‘그린 스타’를 부여하는 제도를 마련했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맛있고, 배부르고, 건강한 음식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그 이상의 가치를 찾는 문화적 소비가 필요하다”라며 “음식의 문화적 소비는 내가 방금 먹은 이 음식이 어디서 왔고, 어떻게 생산됐는지 관심을 갖는 데서부터 시작된다”고 말했다.


올해 미쉐린가이드로부터 '그린 스타'를 받은 독일 함부르크의 레스토랑 '울프 융게(Wolfs Junge)'는 레스토랑 인근에 작은 정원을 만들어 채소와 허브들을 직접 재배하고 관리한다. 울프 융게 홈페이지

올해 미쉐린가이드로부터 '그린 스타'를 받은 독일 함부르크의 레스토랑 '울프 융게(Wolfs Junge)'는 레스토랑 인근에 작은 정원을 만들어 채소와 허브들을 직접 재배하고 관리한다. 울프 융게 홈페이지


올해 미쉐린가이드로부터 '그린 스타'와 '1스타'를 동시에 받은 일본 교토의 '무로마치 와쿠덴(Muromachi Wakuden)'은 직원들이 직접 무농약 벼농사를 짓는다. 무로마치 와쿠덴 홈페이지

올해 미쉐린가이드로부터 '그린 스타'와 '1스타'를 동시에 받은 일본 교토의 '무로마치 와쿠덴(Muromachi Wakuden)'은 직원들이 직접 무농약 벼농사를 짓는다. 무로마치 와쿠덴 홈페이지


세계 최초 ‘제로 웨이스트(Zero-waste) 레스토랑’을 선언한 영국의 ‘사일로(SILO)’는 밀가루공장과 양조장, 자체 농장을 운영해 요리에 들어가는 식재료 대부분을 직접 생산하고, 배출되는 음식물 쓰레기는 퇴비로 쓴다. 폐자재로 만든 식탁과 의자와 폐플라스틱을 녹인 식기 등을 사용한다.

올해 미쉐린가이드의 ‘그린 스타’를 받은 프랑스의 ‘프라이리얼(Prairial)’은 자체 농장에서 채소를 재배하고, 친환경 방사 육류와 지속가능한 어업 방식으로 잡은 생선으로만 요리를 한다. 일본 교토의 ‘무로마치 와쿠덴(Muromachi Wakuden)’은 무농약 벼농사를 짓고, 노르웨이의 ‘에이네르(Einer)’ 등 북유럽에서는 채소의 줄기와 뿌리, 껍질까지 모두 요리에 활용해 음식물 쓰레기 배출량을 최소화한다.


영국 런던의 '사일로'에서 사용하는 폐플라스틱과 와인병을 녹여 만든 접시들. 사일로 인스타그램

영국 런던의 '사일로'에서 사용하는 폐플라스틱과 와인병을 녹여 만든 접시들. 사일로 인스타그램


영국 런던의 '사일로'는 일회용품 대신 여러 번 사용할 수 있는 용기를 사용한다. 사일로 인스타그램

영국 런던의 '사일로'는 일회용품 대신 여러 번 사용할 수 있는 용기를 사용한다. 사일로 인스타그램


국내에서도 직접 소규모 농가와 계약을 맺거나 자체 농장을 운영해 ‘지속가능한 미식’을 추구하는 파인 다이닝(fine diningㆍ고급) 레스토랑이 늘어나고 있다. ‘밍글스’, ‘림프레션’, ‘모수’, ‘라이프’, ‘제로컴플렉스’, ‘테이블 포포’ 등이 대표적이다. 김호윤 ‘라이프’ 총괄셰프는 “예를 들어 마트에서 무를 사면 유통과정이 오래 걸려 무청이 다 시들지만 생산자로부터 직거래로 받으면 싱싱한 무청을 샐러드로 활용할 수 있어 음식물 쓰레기 배출량이 줄어든다”라며 “환경오염도 줄일 수 있지만 멀리 보면 다양한 음식을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미식의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충남 태안군에 있는 '테이블 포포'의 농장인 포포 농장에서 지역 특산물인 마늘이 자라고 있다. 테이블 포포 제공

충남 태안군에 있는 '테이블 포포'의 농장인 포포 농장에서 지역 특산물인 마늘이 자라고 있다. 테이블 포포 제공


독일 함부르크의 '울프 융게'에서는 레스토랑이 직접 운영하는 농장에서 수확한 작은 당근으로 요리(작은 사진)를 한다. 울프 융게 인스타그램

독일 함부르크의 '울프 융게'에서는 레스토랑이 직접 운영하는 농장에서 수확한 작은 당근으로 요리(작은 사진)를 한다. 울프 융게 인스타그램


서울 반포동의 ‘테이블 포포’는 김성운 오너셰프의 고향인 충남 태안에 3만3,000㎡(약 1만평) 규모의 자체 농장을 갖고 있다. 감자, 양파, 부추, 마늘, 허브 등 각종 식자재를 직접 길러 요리하고, 지역에서 자연 채취한 전복, 성게, 굴 등 해산물을 주로 사용한다. 새우머리와 생선 뼈 등은 100% 다시 퇴비로 활용한다.

다양한 품종을 개발하고, 자투리 채소의 활용도를 높이는 것도 지속가능한 미식을 실천하는 방법이다. 서울 신사동의 고깃집 ‘크라운돼지’는 희귀품종이 돼 버린 제주 재래 흑돼지를 개량한 ‘난축맛돈’ 품종을 선보인다. 토종 돼지를 보존하면서도 삼겹살 이외에 다양한 부위를 활용할 수 있어 버려지는 부위도 줄일 수 있다. 배춧잎 등 버려지는 채소를 말려서 활용하는 곳도 있다. 서현민 ‘림프레션’ 오너셰프는 “배추는 속의 부드럽고 예쁜 부분만 쓰고 겉잎들은 낭비되기 쉬운데 이런 잎을 말려서 육수로 쓰고 있다”라며 “지속가능한 미식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라고 말했다.

지속가능한 미식을 선보이는 음식점이 늘어나고는 있지만 소비자의 인식 변화가 우선이다. 문정훈 교수는 “예컨대 사람들이 햄버거만 사 먹으면 밀 농사만 짓고, 소만 키우면 된다”라며 “하지만 가격이 비싸더라도 자신의 입맛에 맞는 것을 잘 골라서 먹으려는 노력을 하면 다양성이 유지되고 지속가능한 미식도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2021 미쉐린가이드 서울’은 19일 ▲로컬 및 제철 식재료의 활용 ▲자원보전 ▲재생 불가능한 에너지의 감소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방안 등 지속가능한 미식을 실천하고 발전하는 데 기여한 음식점에게 ‘그린 스타’를 수여할 계획이다. 올해 ‘그린 스타’ 음식점은 프랑스 50곳, 독일 19곳, 일본 15곳 등 전세계적으로 118곳에 이른다.


강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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