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규범 외교와 한국의 선택

입력
2020.11.10 18:00
26면

바이든 대외정책 다자주의와 규범외교
미국 이익 중시하되 규범저해국 압박
한국, 규범기반 동의 이끄는 외교 펴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9일 델라웨어주 윌밍턴에서 대선 승리 선언 후 첫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9일 델라웨어주 윌밍턴에서 대선 승리 선언 후 첫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내년에 들어설 바이든 미 행정부의 동아시아 정책은 한국의 국가 이익에 중요한 변수이다. 핵심은 역시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전략이다. 미국이 한반도를 미중 전략 경쟁의 관점에서 본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선거 캠페인 기간에 바이든 당선인은 대중 전략을 상세하게 내보이지는 않았지만 몇 가지 줄기는 있다.

첫째, 중국은 전략적 경쟁자라는 것이다. 미국은 자국의 이익이 중국과 충돌한다고 보고 경쟁에서 반드시 이기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 것이다. 군사와 첨단 기술이 핵심 충돌 영역이다. 둘째, 경쟁을 한다고 해서 적으로 삼는다는 것은 아니며, 협력이 가능한 부분에서 대화하고 힘을 모은다는 것이다. 기후, 환경, 대량살상무기 비확산, 보건 등이 그러한 영역이다. 셋째, 대화한다고 중국을 포용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중국은 다자주의 국제 규범을 저해하는 국가이고 강제력으로 다른 국가들을 압박하기 때문에 현재의 중국을 껴안고 가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대중 전략의 시간적 스펙트럼은 길다. 마치 1940년대 말 미국의 구소련에 대해 오랜 기간의 냉전을 예상했을 때처럼 미중 경쟁은 21세기 중반까지 지속될 것이다.

바이든 정부가 추구하는 정책 수단은 다자주의와 규범 외교로 요약된다. 트럼프 정부가 일방주의와 힘으로 동맹과 경쟁국을 가리지 않고 몰아붙였다면 이제는 새로운 외교 경쟁의 장이 열린 것이다. 미국의 힘이 가장 강했던 과거 30년을 거치면서 역설적으로 미국은 급속히 약화되었다. 여전히 세계 1위의 강대국이지만 미국의 운명을 결정하는 주요 국제사건에 대한 통제력은 예전 같지 못하다. 중국을 견제하는 데에도 동맹과 파트너 국가들의 힘이 결정적이다. 바이든 정부는 양자동맹을 중시하지만 미국 주도 국제 질서를 지키기 위해 집합적이고 폭넓은 관계망을 형성해갈 것이다. 한국과 같은 미국의 동맹국은 미국의 다른 동맹국들, 파트너 국가들과의 관계도 중시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이 만드는 다자의 장에서 경쟁해야 한다.

바이든 정부는 미국의 이익을 중시하지만 규범의 이름으로 행동할 것이다. 다른 국가들과 함께 만드는 규범을 바탕으로 기존 규범을 저해하는 중국, 러시아, 그리고 북한 등에 압박을 가한다는 계획이다. 그 핵심에는 민주주의와 인권이 있다.

다자주의와 규범 외교는 일방주의와 거래식 외교를 추구했던 트럼프 정부를 생각하면 희소식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국제정치에서 다자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며 규범 외교는 도덕 외교가 아니다. 다자주의와 규범 모두 치열한 국가들 간의 세력과 이익의 경쟁 속에 만들어지는 것이다. 오히려 한번 만들어지면 강한 구속력을 가지기 때문에 사후에 발 빼기도 어렵다. 미국이 빠른 속도로 여러 국가를 구속할 수 있는 규범을 만들어 갈 때, 한국의 선택은 더욱 어려울 것이다.

대선 기간에 바이든 당선인은 세계를 이끌 민주주의 연합체를 제안했다. 이미 논의되고 있던 D-10(민주주의 10개국 포럼) 구상과 상통한다. 한국도 일원이 될 가능성이 크다. 세계 문제의 주요 이슈들을 결정하는 10개국의 일원이 되면 거의 모든 문제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세계적으로 중요한 이슈에 전문적인 식견과 비전을 제시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범정부 차원은 물론 국내의 전문지식을 총집결하는 외교 체계가 필요하다. 미중 간 전략적 딜레마, 대북 전략, 한미동맹 등 한국의 핵심 이익이 걸린 사안들에서 규범에 기반한 동의를 이끌어 낼 때 한국의 국익은 증진될 것이다. 조급히 당면 사안을 해결하려 하기보다 모두가 귀 기울이는 담론을 전개해 갈 때, 바이든 정부 시대에 한국의 이익이 실현될 수 있다.



전재성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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