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면 무조건 좋다? 법정 최고금리 인하, 서민에겐 독 될 수도

입력
2020.11.09 10:30
수정
2020.11.09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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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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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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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부와 정치권이 잇따라 법정 최고금리 인하 검토에 발벗고 나서면서 이 문제가 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통상 금리 상한선이 낮아지면 그만큼 고금리 이자부담이 줄기 때문에 신용도 낮은 서민 대출자는 지금보다 숨통이 트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금융 전문가는 최고금리 인하에 우려의 목소리를 낸다. 이유가 뭘까.

법정 최고금리, 24→20% 가능성

9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국정감사에서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최고 이자율 24%는 높다고 본다”고 인하 필요성을 언급했다.

국회에서도 여야 의원들이 이자율 최고한도를 연 10~22% 안팎으로 제한하는 내용의 관련 법안을 잇따라 발의해 놓은 상태다. 관련 법안을 발의한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완화적 통화정책으로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면서 시중 여신금리는 꾸준히 낮아지고 있는 반면, 제도권 금융권의 문턱효과로 대부업체ㆍ사채 등으로 내몰린 저신용자들은 여전히 과도한 이자부담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발의 배경을 설명했다.

만일 법정 최고금리가 인하가 현실화할 경우 현행 연 24%에서 연 20%로 4%포인트 내리는 안이 유력하다.

그간 법정 최고금리는 꾸준히 떨어져왔다. 2002년 연 66%였던 법정 최고금리는 2018년까지 여섯 차례에 걸쳐 24%까지 하락했다. 특히 2014년부터 2018년까지 4년 사이 10%포인트나 떨어졌다.

◆법정 최고금리 추이단위: 연 %
<자료=금융위원회>

취지와 달리 피해자 생길 우려도

사실 최고금리 인하는 고금리로 돈을 빌리던 금융 취약계층에게는 희소식이다. 이자 부담이 크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과도한 대출이자로 허덕이는 서민들을 생각하면 인하를 반대할 이유가 크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대선 후보시절 취약계층의 부채상환 부담을 덜기 위해 임기 내 최고금리를 연 20%로 인하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런데도 왜 지난 3년간 금리를 신속하게 내리지 않고 오랜 논의와 숙고를 이어왔을까.

이는 의도치 않은 풍선효과가 발생할 우려 때문이다. 최고금리가 낮아지면 대부업체 등에서 이미 돈을 빌린 사람의 이자 부담은 줄어들겠지만, 장기적으론 신용도 낮은 예비 차주부터 제도권 금융 내에서 돈을 빌리는 기회를 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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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는 자금 조달비용과 개인의 신용도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산정된다. 그런데 최고 금리가 낮아질 경우 대부업체의 대출 기준도 엄격해져,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저신용자는 결국 불법 사채 시장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결국 ‘저신용자를 위한다’는 선의의 정책 목적과 반대로 이들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되는 셈이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 교수는 지난달 말 한국대부금융협회 소비자금융 컨퍼런스에서 “최고금리를 20%로 내리면 약 3조원의 수요 초과가 발생한다”며 “1인당 평균 대출금액인 524만원을 대입하면 약 57만명이 대출을 받고자 해도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결국 성급하게 정부가 개입하기보단 시장 원리가 작용할 수 있는 보완책을 마련하는 게 우선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여신금융연구소 관계자는 “중저신용자의 금리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금리인하 등) 외형적인 규제보다 (대부업) 시장 효율성을 높이는 정책이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있다”고 말했다.

허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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