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성폭력 피하려 남성 혀 절단한 여대생 "죄 안 된다"

입력
2020.11.03 04:3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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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중상해 혐의 고소됐지만 불기소 송치
남성은 강간치상·감금 혐의로 검찰에 넘겨
"정당방위 아닌 과잉방위로 본 것은 아쉬워"

지난 7월 부산에서 만취한 여성에게 키스를 했다가 혀가 잘린 남성은 부산 광남지구대로 직행해 여대생 을 중상해 혐의로 고소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 7월 부산에서 만취한 여성에게 키스를 했다가 혀가 잘린 남성은 부산 광남지구대로 직행해 여대생 을 중상해 혐의로 고소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 7월 부산에서 자신을 강제로 키스하려던 30대 남성의 혀를 깨물어 절단한 여대생 사건(본보 9월 10일자 1ㆍ2면 기사,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0090916500004251)과 관련해, 경찰이 여성을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여성의 혀 절단 행위에 대해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한국일보 취재결과 부산 남부경찰서는 2일 남성의 혀를 절단해 중상해를 입힌 혐의로 고소를 당했던 여대생을 불기소 의견(죄가 안 됨)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반면 남성에게는 감금 및 강간치상 혐의를 적용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

남성은 지난 7월 19일 오전 부산 서면 번화가에서 만취 상태인 여대생을 차에 태워 인적이 드문 황령산 산길로 데려간 뒤 차 안에서 강제로 키스한 혐의를 받고 있다. 남성은 여성의 동의 하에 한 행동이라고 주장했지만, 여성은 만취한 사람에게 동의를 구했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을 뿐더러, 합의했다면 혀를 깨물 이유가 없다고 맞섰다.

여성의 혀 절단 행위를 처벌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과 관련, 경찰 관계자는 “혀 절단 행위를 정당방위로 볼 수 있을지에 대해 변호사 등 외부 전문가의 의견을 듣는 과정을 거쳤고, 그 결과 과잉방위에 해당하긴 하나 형법 제21조 제3항을 적용해 처벌하지 않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형법 제21조 제3항은 방어행위가 정도를 초과한 경우라도 그 행위가 야간에 발생했거나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에서 공포, 경악, 흥분, 당황으로 발생한 때에는 처벌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남성은 일요일 오전 한산해진 유흥가를 차로 돌며 술에 취해 길가에 앉아 있던 여대생에게 접근, 여성을 차에 태웠다. 사진은 남성이 여대생을 데려간 부산 연제구 황령산 등산길의 모습이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남성은 일요일 오전 한산해진 유흥가를 차로 돌며 술에 취해 길가에 앉아 있던 여대생에게 접근, 여성을 차에 태웠다. 사진은 남성이 여대생을 데려간 부산 연제구 황령산 등산길의 모습이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학계와 법조계는 경찰의 이번 판단과 관련해, 성폭력 사건에서의 혀 절단 행위가 처벌 대상이 아님을 확인했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했다. 김병수 부산대 법학연구소 연구교수는 “여성의 입장을 감안해 융통성 있게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여대생의 변호를 맡고 있는 법무법인 법과사람들의 우희창 변호사도 “강간, 강제추행 과정에서 강제키스가 이뤄질 경우, 피해 여성이 가해 남성의 혀를 절단했다 하더라도 중상해죄로 처벌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함으로써, 성범죄에 대한 방위 범위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유의미한 판단”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선 혀 절단 행위를 정당방위로 인정하지 않은 것을 두고 아쉽다는 반응을 보였다. 여성을 처벌하지 않은 것은 다행이지만, 정당방위가 아닌 과잉방위로 해석한 부분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1989년 강제추행을 당하던 30대 여성이 가해남성의 혀를 깨문 혐의로 기소된 사건에서 여성의 혀 절단 행위를 정당방위로 인정해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법원은 “여성은 정조와 신체의 안전을 지키려는 일념에서 엉겁결에 남성의 혀를 깨물었고, 이런 행위는 자신의 성적 순결 및 신체에 대한 부당한 침해를 방어하기 위한 행위로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판단했다.

고순생 부산여성의전화 상임대표는 “여성의 혀 절단 행위는 차량이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추가적인 성폭력 피해를 막기 위한 최선의 행동으로 봐야 한다”며 “이를 과잉방위로 판단한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채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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