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식간에 프로가 될 순 없다

입력
2020.10.30 16:40
수정
2020.10.30 18:17
22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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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랫동안 작가라고 불리는 것을 무서워했다. 내 책을 출판하고 북토크를 나가서도 ‘작가님’이라고 불리면 나는 몸을 비비 꼬았다. 나는 여전히 대학생 시절에 그대로 멈춰 있는데, 운이 좋아 책을 몇 개 낸 걸로 내가 감히 불려서는 안될 칭호를 참칭하는 것 같았다. 그 불안이 가장 심할 때는 신촌 거리에서 알몸이 되어 도망치는 악몽을 대단히 자주 꿨다.

나는 내가 프로답지 않다고 생각했다. 글쓰기와 그에 파생되는 일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나는 내 행동과 업무 방식이 아마추어의 영역에 더 가깝게 느껴졌다. 프로 작가라고 하면 생활 양식이 업무에 완전히 맞춰져 돌아가야 할 것만 같았다. 나는 데뷔 이후 지금까지 모든 작업을 주먹구구로 진행해 왔다. 내가 일을 주도적으로 진행한다기보다는 일이 내게 몰려와서 나를 휩쓸어가는 느낌이었고, 원고 작업을 한창 하면서도 내가 무얼 쓰고 있는지 모르는 게 일상다반사였다.

프로라는 단어에는 아우라가 있다. 어떤 일을 전문적으로 하면서 그걸 업으로 삼는 사람, 전문가. 우리는 공과 사를 칼같이 나누고 책임을 다하는 사람에게 프로답다고 말한다. 우리는 어이없는 실책을 하는 야구선수를 보면서 프로가 맞냐고 비난한다. 어떤 전자제품 회사의 프리미엄 라인업에는 프로라는 접미사가 붙는다(이건 나쁜 예일지도). 나는 그 단어에 걸맞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했다. 일에 감정적으로 휩쓸리지 않으면서도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는 태도를 가진 사람. 자기 결과물에 대해 언제나 자신을 가지는 사람.

당연히 성공하지 못했다. 첫 책을 낸 지 이제 2년이 지났는데, 내 태도는 별반 바뀌지 않았다. 나는 쓰는 글마다 항상 격렬한 의문을 가졌다. 나 혼자만 이런 게 아니었다. 이제 나와 비슷하게 연차를 쌓고 있는 내 친구들도 모두 자기 하는 일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있었다. 심지어 10년 넘게 같은 일을 해 온 사람들도 하나같이 말했다. 아직도 일 할 때마다 “으아악 이게 뭐야 어떡해 이게 뭐야 으아악” 하고 눈사태에 쓸려가듯 휩쓸린다고.

이제는 그것이 일 자체의 속성이라고 생각한다. 일은 결국 타인의 돈을 가져 오려고 하는 것인데, 수많은 변수가 따를 수 밖에 없다. 그 모든 변수에 빠르게 익숙해질 수 있다면 어떻게 일을 하겠나. 또, 일은 수십 년 동안 매일같이 해야하는 삶의 커다란 부분인데, 한 번 달아보려고 그 삶의 조각과 내가 오랫동안 맺은 관계를 갑자기 마음대로 뒤틀 수는 없는 것이었다. 프로라는 말에 그렇게 큰 아우라가 감도는 것은 프로답게 살아가는 것이 보통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어렵기 때문에 그렇지 않나 싶기도 했다.

얼마 전에는 출판사에 내 책을 가지고 비대면 북토크를 한 번 열었다. 나는 오랜만에 긴장을 풀고, 작가라는 호칭에도 당황하지 않으면서 평소에 하던 생각을 평소에 쓰는 말투로 이야기했다. 북토크 영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본 친구가 웃으면서 말했다.

“심너울은 공과 사의 톤앤매너가 상당히 닮았네?”

핀잔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그 한 마디가 마음에 들었다. 작가로 일하는 내 모습과 바깥의 내 모습이 닮아간다는 것, 나는 그 말을 내가 일과 융화하고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게 설령 프로다운 모습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심너울 SF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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