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없는 옵티머스 ‘가짜 인감·천공’으로 1조원대 매출채권 계약서 위조

입력
2020.10.20 04:3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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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반, 동양, 정인, STX건설? 매출채권 계약서 위조
건설사 인감, 수탁사 천공 가짜로 제작해 찍어

지난 13일 서울 강남구 옵티머스자산운용 사무실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지난 13일 서울 강남구 옵티머스자산운용 사무실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옵티머스자산운용이 펀드 사기를 위해 민간 건설사 4곳과 시중은행 1곳의 명의로 1조원 가량의 ‘가짜 매출채권 계약서’를 만들어 낸 것으로 파악됐다. 옵티머스는 이 과정에서 176건의 계약서에 직접 판 건설사 인감을 찍는 대담함을 보였다. 금융투자업계에선 옵티머스의 ‘가짜 서류’가 겉보기에는 전문가도 가려내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혀를 내두르고 있다.

가상 매출채권을 ‘있는 것처럼’ 꾸며

1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옵티머스의 ‘공공기관 매출채권 사기'의 핵심은 매출채권 서류 위조였다.

옵티머스는 관급 공사를 맡게 된 건설사가 보유한 매출채권에 투자한다고 홍보했는데, 사실 이런 매출채권은 시장에 유통되는 것이 없어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서류를 꾸며야 했던 것이다.

만약 매출채권이 존재했다면, 옵티머스는 건설사 매출채권을 사라고 수탁사(하나은행)에 지시해야 했다. 매출채권이 하나은행에 제대로 넘어가면 이를 확인하는 서류가 이번에 대량 위조된 ‘매출채권 양수도 계약서’다.

이 계약서에는 건설사가 매출채권을 넘겼다는(양도) 사실을 확인하는 건설사 '인감'과 수탁사가 이를 잘 받았다는(양수) 사실을 확인하는 ‘천공(해당기관의 이름을 종이에 구멍을 뚫어 남기는 인증 방식)’이 들어가야 한다. 이런 표식이 계약서에 있으면, 건설사 매출채권이 수탁사에 넘어갔다고 증명되는 것이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1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서울고검·서울중앙지검 등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이 제시한 옵티머스 펀드 관련 수사 자료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1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서울고검·서울중앙지검 등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이 제시한 옵티머스 펀드 관련 수사 자료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인감도 천공도 가짜… 176건 서류 조작

실제 옵티머스가 판매사 등에 제시한 176건의 양수도 계약서에는 민간 건설사 4곳(STXㆍ동양ㆍ정인ㆍ호반)의 인감과 하나은행의 천공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이는 모두 조작된 것이었다. 건설사 인감은 옵티머스 직원들이 직접 팠고, 하나은행 천공을 찍는 기계까지 따로 제작했다.

건설사들은 자기 회사 명의가 펀드 서류 조작에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도 몰랐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옵티머스 사태가 터지고 나서 사정기관에서 매출채권 양수도계약서를 쓴 적이 있냐고 대뜸 물어봤다”며 “그런데 우리 회사는 그런 공사를 하지도 않았으니 당연히 매출채권도 없고 옵티머스와의 거래도 처음 들어보는 얘기라고 답했다”고 말했다.

다만 STX건설은 옵티머스 측의 부탁을 받고 가짜 양수도 계약서를 만들어 주었다. 특히 사정기관에서 “양수도 계약서를 옵티머스에게 주고 있냐”고 연락을 하자 STX건설 관계자는 “해당 매출채권이 존재하고 우리가 계약서를 작성해 내어주고 있는 게 맞다”고 답하기까지 했다.

옵티머스자산운용 매출채권 위조 현황

옵티머스자산운용 매출채권 위조 현황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진 가짜 양수도 계약서상 액수는 총 1조854억원이다. 호반건설 4,508억원, 동양건설 3,327억원, 정인건설 2,001억원, STX건설 1,018억원 등이다. 김재현 대표 등 옵티머스 관계자 4명은 사문서위조 및 행사 혐의로 법원에 넘겨졌다. 호반건설은 관련 위조 행위를 검찰에 추가로 고발하기도 했다.

“외형만 봐서는 전문가도 속을 정도”

옵티머스의 조작 서류는 겉으로 봐서는 진위를 가리기가 어렵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서류를 직접 봤다는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계약서가 존재하고 거기에 인감과 천공까지 들어가 있으면 ‘서류가 완성됐구나’라고 생각하지, 인감과 천공이 조작됐을 거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혹여 인감과 천공을 의심한다고 해도, 모양 등을 아무리 봐도 가짜라고 하기엔 너무 완성도가 높았다”고 덧붙였다.

이상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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