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 중 한 명, 코로나 확진자가 됐다

입력
2020.10.20 04:30
수정
2021.11.29 22:04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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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미 단편소설 '여기 우리 마주'

편집자주

단편소설은 한국 문학의 최전선입니다. 하지만 책으로 묶여나오기 전까지 널리 읽히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국일보는 '이 단편소설 아시나요?(이단아)' 코너를 통해 흥미로운 단편소설을 소개해드립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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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몸살로 열이 38도까지 치솟았다. 온몸을 난타하는 통증보다 정작 더 큰 공포는 ‘혹시 나도 코로나?’라는 걱정이었다. 언제 잠시 마스크를 벗었더라, 누가 그 찰나 나를 감염시켰을까, 혹시 내가 누군가 감염시키지 않았을까, 열보다 기억해 내느라 머리가 아팠다.

2020년이 배경인 소설이라면, 그 소설은 필연적으로 코로나 시대를 품고 있지 않을 수 없다. 모두가 쓰고 있는 마스크, 곳곳에 놓인 손 세정제와 발열 체크대,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 집안에 갇힌 사람들, 확진자를 둘러싼 의심과 혐오의 시선들, 그리고 그 의심과 혐오가 나에게 날아와 꽂히지 않을까 움츠러들었던 나날들. 소설로 이만한 게 어디 있을까 싶다.

계간 문학동네 2020 가을호에 실린 최은미 작가의 단편 ‘여기 우리 마주’는, 우리의 연대가 되레 전염의 원인이 되는, 코로나19시대의 살풍경을 가장 발 빠르게, 또 인상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소설은 “수미는 자신의 재난지원금을 나에게 와서 썼다. 그리고 나는 지금 수미를 만날 수 없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나’는 천연 비누와 향초를 만드는 공방을 운영하며 초등학교 6학년 딸을 키우는 40대 여성이다. 수미는 중학교 1학년 딸을 키우며 작은 학원의 차량을 운전한다. 비슷한 또래의 딸을 키우는 나와 수미는 서로 아이를 돌봐주며 우정을 나눈다. 그러나 이 관계는 코로나19로 하루아침에 바뀐다.


최은미 작가. ©이천희, 문학동네 제공

최은미 작가. ©이천희, 문학동네 제공


코로나19는 내 공방부터 휘청대게 만들었다. 집 한 편에서 남편 눈치 봐가며 ‘홈 공방’을 운영한지 9년, 비로소 근처 상가에 정식 개업한 공방이었다. 그러나 개업 한달 만에 코로나 경보가 '경계'에서 '심각'으로 격상되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된다. 이를 어쩌나 싶을 때 수미가 등장한다. 다른 여성 3명과 함께 수미는 '취미반 클래스'를 제안한다. 이 수업은, 공방 운영에 어려움을 겪던 나는 물론, 엄중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질식할 것 같았던 수미와 다른 여성 3명 모두에게 숨통이 되어준다.

“내 공방에서 무언가를 원하기 시작한 그녀들은, 애정을 갖기 시작한 공간에서 마스크를 내려버렸으므로, 그 공간 전체를 안전한 장소로 만들고 싶어했다. 나리공방이 청정 구역이 되길 바라는 꿈을 품고 나를 바라봤다.”

바깥 사정은 차츰 나아지기 시작한다. 확진자 수가 한자릿수로 떨어지고, 재난지원금을 쓰기 위해 사람들이 나들이를 시작한다. 그렇게 서로를 믿기 시작하고 마스크를 내리던 그 때, 소설은, 아니 현실은 이태원 클럽발 코로나19 2차 유행으로 이어진다. 그 결과, 나는 코로나19 검사 통보를 받아든다. 소설은 "우리가 서로를 욕심내기 시작한 순간부터 어떻게 다시 고립되어갔는지, 그 외로웠던 봄에 대한 얘기"다.

‘불특정다수의 방문을 원하면서도 불특정다수 모두를 의심해야 하는’ 자영업자라는 위치, 걱정하면서도 동시에 의심해야만 하는 이중적 심리를, 작가는 예리하게 그려나간다. 나의 공방 노동, 수미의 학원 자동차 운전 노동처럼,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 노동에 대한 얘기들도 곁들여졌다. 최은미의 '여기 우리 마주'는 2020년, 빠질 수 없는 우리의 이야기다.

한소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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