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방지법’

입력
2020.10.16 18:0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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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1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18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1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18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 살림집 구하기가 온 국민 관심사로 떠올랐다. 홍 부총리는 경기 의왕시에 집이 있고 서울 마포에 전세로 살고 있다. 그런데 마포 전세는 집주인이 들어와 살겠다고 통보해 내년 1월 비워줘야 하고, 의왕 집은 세입자가 “더 살겠다”며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는 바람에 집을 팔 수 없게 됐다. 우리나라 경제정책 수장이 졸지에 ‘전세 난민’ 대열에 합류하는 것을 보며 전세를 구하지 못해 애태우는 많은 사람이 다소 위안(?)을 받았을지 모르겠다.

□ 새 임대차보호법이 7월 말 시행된 직후부터 세입자 계약갱신청구권 행사 요건이 너무 허술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하지만 국토교통부의 유권해석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런데 홍 부총리 수난이 알려진 직후 국토부는 부랴부랴 계약갱신청구권 행사 여부를 계약서에 명시하도록 공인중개사법 시행규칙을 고치겠다고 나섰다. 이를 지켜보는 심정은 요즘 유행어로 ‘웃프다’(웃기면서 슬프다). 네티즌들은 국토부 규칙 개정을 ‘홍남기 방지법’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 홍남기 방지법은 “집주인이 들어와 살겠다”는 통보 때문에 홍 부총리가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었던 마포 전셋집 문제부터 해결해줘야 이치에 맞을 것이다. 이 법으로 집주인 권리는 강화하면서, 주인 통보 한마디에 속절없이 쫓겨나야 하는 세입자의 어려움은 모른 척한다면 임대차법 개정 취지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집주인이자 세입자인 홍 부총리가 겪고 있는 수난은 새 임대차법이 오히려 세입자를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가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 홍 부총리는 “기존 임차인의 주거 안정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입장이다. 신도시 건설 등으로 임대 물량이 늘면 혼란이 가라앉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집주인이 입주할 의사가 없어 ‘홍 부총리보다 운이 좋은’ 일부 세입자에게만 적용되는 진실이다. 그 사이 전세 계약에 실패한 세입자가 자기 집 세입자를 내쫓는 악순환이 확산되면서 자기 집 없는 세입자나 새로 전세를 구하는 사람들이 궁지로 내몰리고 있다. 홍남기 방지법을 얼마나 더 만들어야 이 악순환을 멈출 수 있을까.

정영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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