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물이 강물 되는 '권력형 비리'

입력
2020.10.14 18:00
26면

추미애 장관 ‘선택적 기억’ 허탈하지만?
옵티머스 의혹은 레임덕 신호탄일 수도?
무리하게 덮으려 하면 정권 쇠락 빨라져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법무부, 대한법률구조공단,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정부법무공단, 이민정책연구원 국정감사에서 의원질의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법무부, 대한법률구조공단,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정부법무공단, 이민정책연구원 국정감사에서 의원질의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1992년 8월 24일 한국과 중국이 수교를 한 이래 한중 교류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그중 경제 분야 발전이 가장 컸을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대중 수출 비중이 30%를 넘나들 정도다.

한중 수교 직후 중국에 진출해 사업을 했던 기업인이 해준 얘기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현지에서 채용한 중국인 직원이 일을 그르쳐 나무라면 딱 잡아떼더라는 것이다. 현장에서 잘못을 포착해 질책했는데도 무조건 잘못을 부인하고 본다고 했다.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촬영해서 따지고 들어도 인정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그 직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중국인 직원 대부분이 그런 식이라 황당했다고 한다.

이 같은 풍토에 대해 중국인들은 ‘문화혁명의 후유증’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문화혁명 시절 잘못을 인정할 경우 어디론가 끌려갔고 이후 생사조차 불투명한 일이 많았다는 것이다. 문화혁명 때 실제 사망자 수는 공식문서에도 존재하지 않지만 1,000만명 이상이라는 연구 조사들이 있다.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목숨까지 잃게 되는 식이었다. 그래서 일단 부인부터 하고 나중에 증거가 잡혀도 ‘배 째라’는 식의 풍토가 형성된 것이 아닐까라는 것이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아들 휴가 미복귀 의혹에 대한 국정감사 공방을 보면서 떠오른 기억이다. 증거가 나오기 전에는 무조건 부인하다 막상 증거가 나와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는 걸 보면서 심한 피로감을 느끼는 이가 나뿐이 아닐 것이다. 사과는커녕 ‘장편소설 쓴다’면서 되받아치는 수법이다. 이른바 ‘선택적 기억’에 이은 역공 방식으로 스스로에게는 매우 편리한 것이지만 다른 이에게는 분노와 허탈감을 준다.

하지만 이런 행태는 법적인 차원에서 매우 유용하고 고차원의 대응 방식이라는 것이 전문가들 주장이다. 국회에서 위증할 경우는 유죄가 될 수 있지만, 기억을 못 한다고 발뺌하는 것은 유죄가 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마도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물러나고 그와 가족들이 처벌 등의 고초를 겪는 것을 보면서, 같은 자리에 오른 추 장관이 이 같은 전략을 선택하는 것은 불가피할 수 있다. 일단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법무부 장관의 자리가 위험한 것은 물론 검찰 수사를 받거나 각종 책임을 져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들의 의혹을 무마하려는 차원이라면 사과 한두 마디면 정리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첫 단추를 잘못 끼우다 보니 다른 단추까지 엉클어지면서 공격을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더욱이 법무부 장관이라는 직책을 고수하면서 정권 차원의 각종 비리 의혹을 덮거나 뭉개겠다는 요량이라면 결과가 심각해질 수 있다. 특히 옵티머스자산운용 펀드 환매 중단 사태 수사에 대한 추 장관의 행태는 미심쩍은 부분이 많다. 추 장관의 위세에 눌려 있던 윤석열 검찰총장이 급기야 “수사팀 규모를 대폭 늘리라”는 지시를 내렸다. 법무부가 5명을 추가 파견하는 모양새를 갖췄지만 검찰 주요 보직의 인사들이 추 장관 휘하에 들어가 있는 마당에 수사 결과에는 별다른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대통령 단임제에서는 레임덕 현상이 빨리 나타난다. 코로나19 사태로 다소 지연된 측면이 없지 않지만 통상 정권이 반환점을 돌아서 버리면 레임덕이 깊어진다. 특히 이 시기에는 권력형 비리가 돌출하고 이를 무리하게 덮으려는 정권 차원의 시도가 흔해진다. 문재인 대통령이 14일 '성역 없는 수사'를 강조했지만 그리 진실성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옵티머스 의혹이 레임덕 신호탄이라는 분석이 많다. 처음엔 빗물인 줄 알았지만 결국 강물이 되어 흐르는 것이 권력형 비리의 전형적인 패턴이다.

조재우 에디터 겸 논설위원 josus6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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