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그늘에 갇힌 일본

입력
2020.10.13 04:3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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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달 14일 도쿄의 한 호텔에서 열린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당선된 스가 요시히데 후보에게 축하 꽃다발을 전달하고 있다. 스가 총재는 이틀 뒤 중ㆍ참의원 본회의에서 투표를 통해 제99대 일본 총리로 취임했다. 도쿄=AP 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달 14일 도쿄의 한 호텔에서 열린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당선된 스가 요시히데 후보에게 축하 꽃다발을 전달하고 있다. 스가 총재는 이틀 뒤 중ㆍ참의원 본회의에서 투표를 통해 제99대 일본 총리로 취임했다. 도쿄=AP 연합뉴스

지난달 일본 언론들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장기 정권이 막을 내린 뒤 '민주주의의 후퇴'를 가장 큰 부정적 유산으로 꼽았다. 총리관저에 권력이 집중되면서 공무원들이 관저 측 안색만 살피는 풍조가 만연해졌고, 아베 전 총리가 국민과 언론을 아군과 적군으로 나눠 분열의 정치를 집권에 활용해왔다는 일침이었다.

'아베 정권 계승'을 내건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정권은 이를 적군에 해당하는 일부 국민과 언론의 불평으로 여긴 듯하다.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학자 6명에 대한 일본학술회의 회원 임명 거부 논란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스가 정부의 이번 결정을 두고 아베 정권의 안보법과 공모죄 신설에 반대한 학자들을 겨냥한 '학계 길들이기'라는 지적이 많다.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가 1983년 국회에서 "정부는 형식적 임명권을 갖는다"고 밝힌 법 해석과도 거리가 있다. 국민들이 관행과 다른 정부 결정에 설명을 요구하는 이유다.

스가 총리는 이에 대한 답변은 하지 않은 채 학술회의의 추천을 그대로 따르는 것을 '전례 답습'이라고 했다. 전례를 바꾸려면 합당한 이유를 제시해 법을 개정하면 될 일이다. 아베 정권은 지난 1월 정년퇴임을 1주일 앞둔 구로카와 히로무(黑川弘務) 도쿄고검 검사장의 정년을 슬쩍 연장했다. 정권과 가까운 그를 검찰총장에 앉히려는 꼼수였다. 논란을 무마하기 위해 뒤늦게 관련법 개정을 강행하려다 국민의 반발로 포기했다.

스가 정권은 한술 더 뜨고 있다. 정부의 인사 개입 논란이 일자 학술회의를 개혁 대상으로 지목해 전방위 검증을 시사했다. 일부 자민당 의원은 "학술회의가 중국의 군사연구에 협력하고 있다'" 확인되지 않은 주장까지 폈고, 이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확산됐다.

분열을 집권에 활용하는 것이 일본만의 현상은 아니다. 위정자는 견해가 다른 상대를 설득하는 노력보다 지지층에 기대는 편가르기 유혹에 빠지기 쉽다. 일본의 사례를, 한번 후퇴한 민주주의를 제자리로 돌려놓는 일이 쉽지 않다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는 이유다.

도쿄= 김회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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