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C 분리, 그 해묵은 논란

입력
2020.10.12 04:30
26면

박양우 문화체육부 장관이 7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문화체육부와 소속기관에 대한 국정감사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박양우 문화체육부 장관이 7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문화체육부와 소속기관에 대한 국정감사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축구 야구 육상 등 한국의 근대스포츠는 갑오개혁(1894년) 이후 외국인 선교사 등을 통해 소개되며 싹이 텄다. ‘구락부’ 형태의 종목 단체들이 모여 1920년 창립된 조선체육회가 지금 대한체육회의 전신이다. 대한체육회는 올해 창립 100주년을 맞았음에도 성대한 이벤트를 치르지 못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도 있었지만 철인3종 고(故) 최숙현 선수 사건의 여파가 컸다. 체육계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거세게 일어난 상황에서 보란 듯 100돌 잔치를 벌일 수는 없었다.

최근 체육계에선 대한체육회와 대한올림픽위원회(KOC) 분리 문제가 핫이슈다. 내년 1월 대한체육회장 선거를 앞둔 시점과 맞물리며 KOC 분리가 정치적 이슈로도 비화하고 있다.

사실 KOC 분리 논란은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체육계에 문제가 있을 때마다 반복돼왔던 해묵은 문제다. 2000년대 초부터 정치권 시민단체 등에서 KOC 분리 요구가 이어졌고 그 때마다 체육계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2016년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를 통합할 때도 KOC 분리를 추진하다가 체육계의 반대에 꼬리를 내렸다. 당시 분리를 주장한 측은 “통합 새 단체에서 KOC가 분리되지 않으면 올림픽 메달 성적에 치중하는 엘리트 체육 위주의 정책 기조가 변하지 않아 통합의 취지가 퇴색될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정부는 이번에 재차 추진되는 KOC 분리의 타당성을 지난해 8월 스포츠혁신위원회의 권고에서 찾는다. '스포츠 미투' 이후 출범한 혁신위는 ‘대한체육회가 연간 4,000억원에 가까운 예산 대부분을 정부와 공공기금을 통해 지원받고 있음에도 중대한 인권침해와 각종 비리 및 부조리에 책임 있는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또 2016년 국민생활체육회와 통합한 뒤에도 올림픽과 엘리트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지적한 뒤 대한체육회에서 국가올림픽위원회(NOC) 임무를 수행하는 KOC의 분리를 권고했다.

문화체육관광부로서는 사실 KOC가 눈엣가시였다. KOC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헌장에 따라 독립성과 자율성을 갖고 있어 국가가 함부로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체육회에 책임을 물으려 해도 KOC의 우산에 숨은 그들을 어떻게 해볼 수 없었다. 문체부는 지금이 기회라며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정부는 과연 KOC 분리에 대한 명확한 비전을 준비했는지 먼저 묻고 싶다. 단지 말 안 듣는 체육회를 손보기 위해 서두르는 것이라면 득보다 실이 더 클 수 있다. 예전처럼 괜히 분란만 일으키다 흐지부지되고 말 것이라면 시작을 하지 않는 게 낫다.

체육회도 마냥 반대만 할 게 아니라 분리론자들이 주장하는 가장 큰 이유인 ‘체육회 스스로 주체적 각성을 통해 개혁을 해나갈 수 없다’는 평가를 뒤집을 수는 없는가. 지금껏 드러난 한국 엘리트 체육의 부작용과 문제점을 스스로 해결하는 능력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분리안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변화를 인정하지 않고 개혁 요구를 저버릴 때, 국민들은 체육회의 편을 들어주려 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 스포츠는 이제 한 세기 축적을 넘어 미래를 모색할 때다. 새로운 100년을 준비해야 하는 지금, 분열과 갈등으로만 낭비하기엔 시간이 너무 아깝다.


이성원 스포츠부장 sungw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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