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성 "갑옷은 송도 앞바다에 던지고 왔다"

입력
2020.10.07 15:54
수정
2020.10.07 19:09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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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플레이 중시 강을준 감독과 예상밖 케미
강 감독ㆍ이대성?“백업이 약점? 우리는 모두가 영웅”

프로농구 오리온 강을준 감독과 이대성이 7일 고양체육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고양=배우한 기자

프로농구 오리온 강을준 감독과 이대성이 7일 고양체육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고양=배우한 기자

프로농구 고양 오리온을 초대 컵대회 정상으로 이끈 ‘성리학자’ 강을준(55) 고양 오리온 감독과 대회 최우수선수(MVP) 영예를 안으며 ‘영웅’이 된 이대성(30)이 9일 막을 올리는 2020~21시즌 또 한번의 돌풍을 꿈꾼다.

올해 오리온은 강 감독과 이대성의 만남으로 농구 팬들의 큰 관심을 받았다. 개인 플레이보다 팀 플레이를 중시하는 강 감독은 창원 LG 사령탑 시절 “우리가 '성리(경상도 사투리 억양으로 승리)'했을 때 영웅이 나타난다”는 어록을 남겨 '성리학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반면 이대성은 울산 현대모비스 시절 유재학 감독에게 ‘자유이용권’을 두고 밀고 당기기를 할 만큼 자유분방한 농구를 추구한다.

성향이 전혀 다를 것만 같았던 둘의 ‘케미(조화)’는 예상과 다른 시너지 효과를 냈다. 강 감독은 올 시즌 출사표로 ‘즐겁게 농구’를 내걸며 선수들이 신나게 코트에서 뛰어 놀 수 있도록 판을 깔아줬고, 이대성은 조력자로 팀 동료들을 모두 ‘영웅’으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이대성은 7일 경기 고양체육관에서 진행한 본보 인터뷰에서 “이번 시즌 동료들을 살리는 농구를 하는 게 내 역할이자 목표”라며 “주위에서 우리 팀 아킬레스건이 백업 문제라고 하는데, 같이 운동하는 선수들을 보면 서로의 능력을 잘 알 수 있다. 나만 잘하면 우리 누구나 다 영웅이 될 수 있는 선수 구성원”이라고 강조했다.

함께 자리한 강 감독 역시 “백업 자원이 약하다는 얘기가 있는데 그건 우릴 잘못 알고 있는 것이더”라고 말했다. 이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선수들 모두 한결 같이 ‘농구가 재미 있다’ ‘즐겁다’고 얘기하고 다닌다. 이 말을 듣는데, 그렇게 좋을 수 없더라”면서 “‘작전이 좋았다’. ‘감독님 멋지다’라는 말은 두 번째다. 선수들이 더 즐겁게 뛸 수 있도록 더 노력해야겠다”고 말했다.

강 감독과 이대성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배우한 기자

강 감독과 이대성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배우한 기자


선수를 편안하게 해주는 강 감독의 입담에 오리온은 팀 분위기가 활기차게 바뀌었다. 유재학 현대모비스 감독은 “강을준 감독 언변에 선수들이 녹아 든 것 같다”며 오리온을 우승 후보로 꼽기도 했다. 실제 강 감독 품에서 이대성은 그 동안 입고 있었던 무거운 ‘갑옷’을 던지고 밝은 표정을 되찾았다.

강 감독이 기억하는 올해 자유계약선수(FA) 최대어 이대성은 부담감과 마음 고생 때문인지 유독 표정이 어두웠다고 했다. FA 협상 기간 이대성을 중식당에서 만난 강 감독은 “우리 팀에 안 와도 좋은데, 선배로서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TV 중계로 경기를 보니 얼굴이 어둡다. 뭔가 무거운 갑옷을 입고 있는 것 같다. 유니폼을 입고 신나게 농구를 할 선수인데, 내가 꼭 도와주고 싶다”며 설득했다. 자신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강 감독의 말에 이대성은 식사 다음 날 오리온에서 뛰기로 결심하며 강 감독에게 “갑옷은 (인천 거주지) 송도 앞바다에 던지고 왔다”고 전했다.

사령탑은 이런 이대성이 대견하게 느껴졌다. 강 감독은 “컵대회는 단기전인데다가 이적 후 첫 대회라 부담이 있었을 텐데 생각보다 빨리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며 “갑옷 비늘이 몇 개 붙어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팀에 빨리 적응한 모습, 동료들이 이대성을 좋아하는 걸 보면서 ‘인간 이대성’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고 칭찬했다.

이 말을 들은 이대성은 “KBL 무대는 외국인 선수가 주축으로 뛰지만 우리 팀은 국내 선수가 중심이 될 수 있는 구성이 됐다”며 “지난 시즌 꼴등을 했던 팀이라 믿기지 않을 만큼 모든 선수들이 자신감을 갖고, 가진 능력들을 쏟아내고 있다. 우리 팀은 다 준비됐다”고 당차게 시즌 출사표를 던졌다.

고양 김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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