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벌여가며 막는 사람들

입력
2020.10.07 03:00
26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지난 7월 2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해 답변하는 모습. 오대근 기자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지난 7월 2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해 답변하는 모습. 오대근 기자


영화 ‘베테랑’에서 ‘가오’를 중시하는 형사 황정민은 망나니 재벌 3세를 대신해 경찰서에 허위 자수하러 온 ‘집사’ 유해진과 마주한다. 재벌 3세는 자신의 ‘맷값 폭행’에 사과는커녕 잘못을 덮으려고 더 큰 악행을 저지르던 중이었다. 급기야 ‘대타 범인’을 내세우는 방법까지 동원했으니, 정의감 넘치는 형사가 보기엔 기가 찰 노릇이었다. 그는 집사를 향해 이런 말을 내던진다.

“당신이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아? ‘그냥 미안합니다’ 한마디만 하면 될 일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커질 수가 있지? 사회적으로 욕 먹고 사는 거 당신네들 익숙하잖아. 근데 왜 이렇게 일을 벌여 가면서 막는 거야?”

그러게 말이다. 일을 벌여 가면서 막는다는 말을 들으며 문득 떠오른 사람이 있었다. 영화 속 주연배우 유아인이 아니라 현실 속 권력자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다. 그는 아들의 군 휴가 미복귀 의혹이란 ‘별 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몇 달 동안 나라를 시끄럽게 만들며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신비한 재주를 지녔다. 상식과 통념을 깨뜨리는 추 장관의 위기대응 방식은 전례가 없어 비교 불가이자 연구 대상이다.

더구나 그는 검찰에서 면죄부를 받지 않았는가. 수사결과를 승패의 개념으로 따진다면 그는 어쨌든 이겼다. 티끌만한 의혹을 태산처럼 부풀렸다는 야당과 언론을 향해 가만두지 않겠다고 큰소리칠만한 자격이 있다. 당연히 억울하고 속상했을 것이다. 사과도 할 만큼 했는데, 본질에서 벗어난 이런저런 가족문제까지 까발려졌으니 말이다. 그런데 승자에게 보내는 박수소리보다 여전히 야유가 더 크게 들린다. 사람들의 분노 게이지는 아직도 가라앉지 않은 게 틀림없다.

상식을 가진 법조인은, 추 장관 아들 문제는 애초에 법적으로 크게 문제 삼을 만한 사안이 아니라고 봤다. 그건 추 장관도 알고, 야당도 알고 있었다. 정치공세 성격이 농후했다. 그러나 그 정도 비난은 법무부 장관이 되겠다고 결심한 이상 각오해야 할 일이었다. 20년 이상 정치생활을 했다는 그가 여의도 생리를 모를 리 없었을 것이다.

의혹이 불거졌을 때 사실대로 말하고 진정성 있게 유감 표시를 했으면 간단히 끝날 일이었다. 야당 의원에게 ‘소설 쓰시네’ ‘어이가 없다’고 말하며 키울 사안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제보자를 단독범이라 매도하고, 안중근 의사까지 끌어들여 일을 벌일 사안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는 집권당 대표를 지낸 법무부의 수장이기에 앞서 평범한 소시민이다. 검찰개혁을 외치고 실정법을 논하기 전에 진심으로 사과하는 법부터 먼저 배워야 한다. 유감 표명을 많이 했다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이 진정성을 못 느꼈다면, 남탓을 하기 전에 자신부터 돌아봐야 한다.

사과하는 법에 대해 책을 쓰고 강의했던 전문가들은 제대로 사과하기 위한 제1원칙으로 '사실대로 말하고 조건을 달면 안 된다'고 말한다. 추 장관은 어떠한가. 보좌관 전화 지시 논란과 관련한 거짓말이 드러난 상황에서도 ‘프레임’ 운운하며 사과하기는커녕 오히려 사과를 요구했다. 야당 의원을 조롱하고서도 ‘원만한 회의 진행을 위해 유감스럽다’고 말하거나, 국민께 정말 송구하다면서도 ‘검찰은 실체적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등 조건을 달았다. 압력이 섞인 유감 표시는 사과의 정도라고 할 수 없다.

그냥 쿨하게 사과하는 것, 그게 바로 사과의 정도다.


[기자사진] 강철원

[기자사진] 강철원


강철원 기획취재부장 str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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