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온 노출 백신, 품질조사 결과 이상 없으면 사용한다는데...

입력
2020.10.04 19:00
수정
2020.10.04 19:13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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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약처 결과 이르면 6일쯤 발표
보건당국 "이상 없을 시 무료접종 재개"
국민들 사이엔 불신 고조...
전문가들 "문제 물량 파악해 폐기" 권고

서울 한 병원에서 간호사가 독감백신을 살펴보는 모습. 연합뉴스

서울 한 병원에서 간호사가 독감백신을 살펴보는 모습. 연합뉴스

유통과정에서 상온 노출이 확인돼 접종이 중단된 정부 조달 인플루엔자(독감) 백신에 대한 품질조사 결과가 이르면 6일쯤 나올 예정이다. 품질에 이상이 없으면 해당 물량으로 예정했던 만 13~18세와 만 62세 이상에 대한 무료 접종 사업을 재개하겠다는 게 정부 계획. 하지만 이미 만연한 백신에 대한 국민 불신이 “문제 없다”는 정부 발표로 달라질지는 미지수다. 전문가들도 검사 결과에 관계 없이 이미 한 차례 상온에 노출된 백신을 접종하는 것에 대해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4일 보건당국에 따르면 질병관리청이 지난달 22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의뢰한 상온 노출 의심 백신 중 표본검사 대상인 750도즈(1도즈는 1회 접종분)에 대한 품질조사 결과가 6일 혹은 7일께 나온다. 현재 식약처 품질조사는 백신 효력을 확인하기 위한 항원단백질 함량시험과 안전성을 확인하기 위한 발열반응 시험 등 막바지 조사에 집중되고 있다. 대부분의 백신은 접종 직전까지 ‘콜드체인’이라 불리는 2~8도의 냉장상태로 유통ㆍ보관돼야 하는데, 상온 노출 시 단백질 함량이 줄어들어 부작용을 야기하거나 효과가 없는 물백신이 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품질조사 결과에서 큰 이상이 발견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질병청은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건 항원단백질 함량의 변화 가능성이고, 백신 대부분이 1회용으로 주사기에 충전돼 밀봉된 상태로 공급되기 때문에 오염 가능성은 굉장히 낮다"고 설명했다. 정부 조달 물량을 만든 제조사 측도 독감 백신이 25도에서 최소 14일, 최대 6개월까지 품질을 유지한다고 밝힌 바 있다. 질병청이 이날 품질조사에서 이상이 없을 경우 물량이 확보되는 대로 중단된 국가 무료 예방접종사업을 재개하겠다고 재차 밝힌 점도 이런 맥락에서다.

문제는 백신 상온 노출 사태가 초유의 일이어서 어떤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을지 품질조사 결과만으로 파악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전문가들이 "식약처의 품질조사가 백신 '안전성(safty)’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며 해당 물량을 다시 사용하는 것에 신중해야 한다고 당부하고 나선 배경이다. 김우주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품질조사만으로는 접종 후 부작용이나 항체 형성 여부, 방어 효과까지 알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발열반응 검사는 세균오염 여부를 보여주긴 하지만, 백신의 변질을 확인할 수 있는 건 아니다"며 "국내외 연구를 다 찾아봐도 냉장유통 시스템이 깨진 백신을 접종할 수 있다는 기준은 없다"고 덧붙였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도 "상온 노출 백신을 접종했을 때 장기적으로 어떤 반응이 나올지 알 수 없고, 괜찮다고 100%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정확한 파악 후 문제된 백신이 100만 도즈 이하 등 일정 수준이라면 폐기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고조된 국민 불신도 고려해야 할 대목이다. 실제 상온 노출 백신에 대한 우려로 유료 백신을 찾는 부모들도 적지 않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결국 신뢰의 문제"라며 "정부가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품질을 검증했는지 소상히 밝히고 국민들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가예방접종사업의 관리체계 부실에 대한 책임론도 나오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21일, 독감 백신 무료 접종 사업 시작을 하루 앞두고 급하게 이를 중단한 뒤 "문제가 된 백신을 맞은 사람은 없다"고 밝혔지만, 이달 3일 기준 정부 조달 물량 접종 건수는 15개 지역에 2,295건에 달하는 상황이다. 이 중 1,600건 안팎은 무료 접종 사업 시작 전에 접종됐다. 의료계가 정부 물량과 자체 조달 물량을 구분하지 않아 발생한 일이라는 게 정부 설명이지만, 국가 사업을 허투루 관리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게 중론이다. 백신을 아이스박스가 아닌 종이상자 등에 담아 상온에 노출시킨 신성약품이 앞으로도 계속 정부 물량 유통을 맡게 되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내과 의사는 “수천만명을 대상으로 한 국가 백신 사업을 이처럼 허술하게 운영했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진주 기자
신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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