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 안의 은행? 폰으로 겁나서 돈 거래 하겠니" 아버님의 한숨

입력
2020.09.3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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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층 디지털 소외 현상... 모바일 금융 접근성 높여야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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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 하나로 송금은 물론 대출, 보험 가입, 펀드 투자까지 가능한 ‘내 손안의 은행’이 일상이 됐지만, 여전히 고령층에게 모바일 금융은 먼 나라 얘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 속 디지털 소외 현상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는 가운데, 디지털금융 소외는 단순한 불편을 넘어 혜택 차별과 불완전 판매로도 이어질 수 있다.

올 추석에는 부모님께 편리한 모바일 금융 세계를 위한 금융지식을 선물하는 건 어떨까.

5명중 1명은 “금융 서비스 어려워”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금융권에서도 비대면이 대세로 자리잡았지만 금융 취약계층인 고령자들의 ‘디지털 디바이드(디지털 정보의 계층간 불균형)’는 더욱 심화하고 있다.

라이나생명의 사회공헌재단인 라이나전성기재단이 지난 7월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50대 이상 중장년 층의 절반 이상(56.3%)가 ‘코로나19 이후 스마트폰을 보는 시간이 늘었다’고 답했지만 여전히 금융서비스에는 어려움을 느꼈다. ‘배워보려고 애쓰지만 아직 사용할 줄 모르는 디지털 서비스’를 꼽는 질문에 응답자의 18%는 ‘은행과 보험사 금융서비스’라고 답했고, 특히 60대 이상 여성의 경우 이 비율이 23.5%나 됐다.

지난해 한국은행이 진행한 조사에서도 3개월간 일반 은행의 모바일뱅킹 서비스를 이용했다는 응답자 비율이 20~40대는 70% 이상을 차지했지만 60대 이상은 18.7%, 70대 이상은 6.3%에 그쳤다. 60대 조모씨는 “무인결제기에서 음식을 주문하려고 해도 눈앞이 깜깜해지고 식은땀이 나는데, 돈이 오가는 금융거래를 작은 휴대폰 화면에서 하려니 엄두가 안 난다”고 말했다.

일반은행 모바일뱅킹 이용 비율 (단위: %)*인터넷은행 제외
<자료=한국은행>

문제는 이런 현상이 단순히 고령층의 ‘불편’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 금융당국이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65세 이상이 기본적인 이체와 출금을 온라인으로 이용한 비율은 69.9%로 전체 평균(74.4%)과 크게 벌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단순 이체 등과 달리 예금 가입이나 대출 신청 등 절차가 다소 복잡한 거래에서는 여전히 온라인 비중이 낮았다. 이들의 예금과 신용대출 온라인 거래 비중은 각각 7%, 12.4%에 그치면서 전체 연령 평균(각각 47.1%, 58.8%)에도 크게 미치지 못했다.

최근 금융사들이 온라인 또는 모바일을 통해 상품에 가입할 경우 우대 금리를 제공하거나, 수수료 감면 등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점을 감안하면 고령층은 이런 혜택에서 철저히 배제되는 셈이다.

실제 은행들은 비대면 채널을 통해 정기 예금에 가입하거나 대출상품을 신청할 경우 0.1~0.2%포인트의 우대금리를 제공하고 있다. 최장훈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세대간 디지털 정보화 격차는 고령층에게 디지털 소외로 나타나고 있고, 고령층이 금융상품 및 서비스 구매 같은 소비 활동 시 불완전 또는 사기 판매로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며 “고령자들을 위한 전담조직 설치와 교육, 금융사에 대한 지침 등 정책이 강화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줄어드는 국내 은행 영업점 (단위: 천개)(2020년은 6월 기준)
<자료=금융감독원>

한편 고령층이 선호하는 '은행 영업점포'는 해마다 줄고 있다. 올해 6월 기준 국내 은행 영업점 수는 6,526곳으로 2년 전보다 200곳 넘게 줄어든 상태다.

은행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화 등을 감안할 때 앞으로 금융 양극화는 더욱 짙어질 수밖에 없다”며 “단순히 특정인의 불편 차원이 아니라, 디지털 디바이드 상황이 심각해지면 사회적으로 고립된 고령의 금융소비자가 어려운 상황이 생겼을 때 제 때 도움을 받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금융사ㆍ당국도 디지털 포용 박차

시중은행과 금융당국도 디지털 격차를 줄이고 고령자들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디지털 포용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각 금융사들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에서 글자를 키우거나, 화면을 단순화한 인터페이스를 제공한다. KB국민은행은 고령층 고객이 고객센터로 전화를 걸었을 때 스마트폰 화면에 ARS메뉴가 자동으로 표시되는 음성ㆍ화면 동시 서비스를 제공하고, 하나은행도 큰 글씨와 음성전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일부 은행은 금융사 직원이 태블릿PC를 갖고 직접 방문하는 ‘찾아가는 금융서비스’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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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도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우선 오프라인 점포 폐쇄로 고령층의 금융이용이 불편해지는 점을 고려해 점포 폐쇄 시 사전절차를 강화하기로 했다. 앞으로 외부 전문가가 평가 절차에 참여해 검토하는 등 ‘지점 폐쇄 영향평가’의 독립ㆍ객관성을 높이고, 점포 폐쇄 시 3개월 전 고객에게 통지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또 온라인 상품을 중심으로 금리나 수수료 인하 등 각종 혜택이 제공돼 고령층이 금융거래에서 불이익을 겪는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온라인 특판 상품을 제공할 경우 동일ㆍ유사한 혜택을 보장하는 고령층 전용 대면 거래 상품을 출시하도록 장려하기로 했다. 신규 상품 개발 시 연령에 따른 불합리한 차별이 없도록 연령별 영향 분석도 할 예정이다.

외국에서도 고령층의 디지털금융 소외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고령층을 위한 금융보호실(Office of Financial Protection for Older Americans)을 설치해 맞춤형 교육을 실시하고, 이들의 자문에 대비한 지침을 제공한다. 영국의 금융감독청(FCA)에서는 취약 금융소비자에 대한 공정한 대우 지침을 마련하기도 했다.

허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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