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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벗어나려면 강하게 저항할 수밖에...혀 절단 정당방위로 봐야"

입력
2020.09.29 04:30
수정
2020.09.29 08:55
23면

정춘숙 국회 여성가족위원장 인터뷰
가해자 안 다치게 하면서 빠져나올 순 없어
"피해자 비난으로 사건 본질 흐리기는 금물 "

국회 여성가족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8일 서울 여의도 의원회관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성폭력 사건에서의 여성의 방어행위를 정당방위로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국회 여성가족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8일 서울 여의도 의원회관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성폭력 사건에서의 여성의 방어행위를 정당방위로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남성보다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여성이 성폭력 상황을 벗어나려면 강한 저항을 할 수밖에 없어요. 혀 절단 행위는 당연히 정당방위로 인정돼야 합니다.”

지난 여름 부산에서 발생한 혀 절단 사건(본보 9월 10일자 1ㆍ2면 기사ㆍ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0090916500004251)을 접한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8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성폭력 피해 여성이 방어행위로 처벌 받을 것을 두려워하는 상황이 더 이상 반복돼선 안 된다며 이같이 말했다. 정 의원은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2009~2015년)를 지낸 여성인권 분야 전문가로, 21대 국회에서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지난 7월 부산으로 여행을 떠난 여대생 김수정(가명)씨는 생면부지의 30대 남성이 만취 상태인 자신을 차량에 태워 산길로 이동한 뒤 강제로 키스하자, 그의 혀를 깨물어 절단했다. 이 일로 김씨는 남성으로부터 고소를 당해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정 의원은 “남성이 술에 취한 여성을 차에 태우고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간 걸 보면 처음부터 성폭력을 시도할 의도가 있었던 것 같다”며 “당시 여성이 적극적으로 자기 방어를 하지 않았다면 더 위험한 상황이 벌어졌을 수도 있기 때문에 여성의 혀 절단 행위는 최선을 선택으로 보여진다”고 설명했다.

정 의원은 여성의 방어행위를 정당방위로 폭넓게 인정해야 하는 이유로, 성폭력 가해자를 다치지 않게 하면서 폭력 상황에서 빠져 나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을 들었다. “남성과 여성의 힘이 물리적으로 대등하지 않습니다. 성폭력을 당하면 왜 강하게 저항하지 않았느냐고 묻고, 강하게 저항하면 왜 그렇게까지 저항해서 남성에게 피해를 입혔느냐고 묻는데, 이는 매우 잘못된 질문 방식이에요. 성폭력 상황에서 피해자가 느끼는 공포와 고통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필요가 있습니다.”

정춘숙 의원은 지난 여름 부산에서 발생한 혀 절단 사건과 관련, 만취 여성에게 동의를 구하고 키스를 한 것이라는 남성의 주장에 대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의 사람에게 동의를 구했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소리"라고 지적했다. 오대근 기자

정춘숙 의원은 지난 여름 부산에서 발생한 혀 절단 사건과 관련, 만취 여성에게 동의를 구하고 키스를 한 것이라는 남성의 주장에 대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의 사람에게 동의를 구했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소리"라고 지적했다. 오대근 기자


정 의원은 특히 피해자를 비난해 사건의 본질을 흐리려는 시도를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부산 혀 절단 사건의 경우에도 여성에게 ‘인사불성이 될 때까지 왜 술을 마셨느냐’ ‘남성 차에는 왜 탄 것이냐’고 물으면서 여성을 비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설명이다. 정 의원은 “술을 먹었다는 이유로 또는 차에 탔다는 이유로 피해자를 비난한다면, 술을 먹은 사람과 누군가의 차에 탄 사람은 모두 성폭력을 당해도 된다는 뜻이냐”며 질문의 화살은 가해자가 왜 그런 행위를 한 것인지에 모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가해 남성이 여성에게 동의를 구했는지, 동의를 구했다면 어떤 방식이었는지, 그 동의가 명시적인 것이었는지를 꼼꼼히 따져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 의원은 성폭력 피해는 피해자에게 평생토록 잊혀지지 않는 고통인 만큼, 가해자 인권을 말하기에 앞서 피해자 인권에 먼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여성 단체에 있을 때, 대학 시절 당한 성폭행의 고통을 잊지 못해 수십 년이 지난 뒤에 상담 받으러 온 60대 여성도 있었어요. 피해자들은 뉴스에서 비슷한 사건을 접할 때마다 고통이 되풀이된다고 말해요. 떠올리기 싫은 기억은 완전히 지워지지 않은 채로 평생을 따라 가죠. 우리가 이런 부분을 간과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채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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