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의 시간 밝히라" 요구에... 靑 "안 된다"는 세가지 이유

입력
2020.09.28 17:30
수정
2020.09.28 17:57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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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실종 공무원 북한 피격 사건과 관련, 야당은 문재인 대통령의 ‘책임론’ 부각에 화력을 집중하고 있다. 청와대가 비공개 영역으로 남겨둔 문 대통령의 ‘시간대별 행적’을 고리로 삼아서다. 국민의힘이 27일 ‘당일치기’로 진행한 청와대 1인 릴레이 시위도, 28일 국회 앞 계단에서 연 긴급의원총회도 핵심 메시지는 “대통령은 어디서, 무엇을 했나”였다.

논란이 되고 있는 문 대통령의 시간은 ‘해양수산부 공무원 A씨가 북한군과 접촉한 뒤 생존해 있었던 시간’과 ‘A씨 총살 이후 문 대통령 보고까지 걸린 시간’ 등이다. “대통령의 24시간은 개인의 것이 아니고 공공재”라는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 문 대통령의 발언까지 다시 언급하며 야당이 몰아세우고 있지만, 청와대는 28일 “(시간대별 행적을) 추가로 공개할 생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28일 오전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와 희원들이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북한의 우리 국민 학살만행 규탄 긴급의원총회’를 갖고 있다. 2020.9.28 오대근 기자

28일 오전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와 희원들이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북한의 우리 국민 학살만행 규탄 긴급의원총회’를 갖고 있다. 2020.9.28 오대근 기자


① “공개할 건 이미 공개했다”

청와대 침묵의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 번째는 ‘문 대통령의 주요 일정을 이미 공개했다’는 것이다. 북한군에 의한 A씨 사망을 정부가 공식화한 24일 기자들과 만난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시간대별 상황'이라는 명목으로 문 대통령에게 보고된 상황을 개괄적으로 공개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선제적으로 밝혔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북한이 A씨를 해상에서 발견했단 첩보를 22일 오후 6시 36분 문 대통령에게 서면 보고했다 △북한이 이 월북 의사를 밝힌 실종자를 사살 후 시신을 훼손했다는 첩보를 22일 오후 10시 30분 입수, 분석을 거쳐 오전 8시 30분 문 대통령에게 대면 보고했다 △추가로 파악한 사실관계에 대해 23일 오전 9시 문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등의 내용이었다.

그러나 야당이 문제 삼는 '핵심'은 여전히 빠져 있다. 22일 오후 10시30분 이후 대통령 대면 보고까지 왜 10시간이나 걸렸는지, 정부는 A씨 사망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23일 새벽에 관계장관회의까지 열었는데 문 대통령에겐 왜 보고되지 않았는지는 설명되지 않는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서면브리핑을 통해 "북한군이 실종 공무원을 사살한 뒤 불로 태워 시신을 훼손했다는 첩보를 접했을 때 확인이 먼저임은 불문가지이며, 이런 상황에서 취했던 일을 청와대는 이미 있는 그대로 상세하게 공개했다"고 말했다.


27일 오전 북측 등산곶이 보이는 연평도 앞바다에서 해병대원들이 해상 정찰을 하고 있다. 연평도=연합뉴스

27일 오전 북측 등산곶이 보이는 연평도 앞바다에서 해병대원들이 해상 정찰을 하고 있다. 연평도=연합뉴스


② “보고할 만한 게 없었다”

청와대는 “보고할 만한 것이 아니라 보고하지 않은 것”이라는 입장이다. 관계장관회의에서조차 ‘일관된 분석’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가장 기본적인 정보인 ‘어떤 총으로 쐈는지’에서조차 부처별 분석이 엇갈렸고, 이때까지 접수된 첩보 중엔 ‘알 수 없음’ 딱지가 붙은 것들이 워낙 많았다는 게 청와대 설명이다. 해당 회의에서 신뢰도 높은 분석이 가능했다면 문 대통령 보고도 즉각 이뤄졌겠지만, 그렇지 않아 보고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더 필요했단 뜻이다. 강 대변인은 당시를 "단지 토막토막의 첩보만 존재했던 상황"으로 규정하며, 대통령 보고 때까지 "사실로 확정하지 못한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북한군이 해상에서 A씨와 접촉했단 사실을 문 대통령이 인지한 22일 오후 6시 36분부터 A씨가 북한군에게 총격을 당한 9시 40분까지 약 3시간 동안 구출을 위해 어떤 지시가 있었고, 노력이 행해졌는지를 해명할 필요도 여전히 남아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28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우리 국민이 총탄을 맞고 불태워지는 6시간 동안 대통령으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않은 문재인 대통령이 전임 대통령과 무엇이 다른지 국민은 묻고 있다”고 말했다.

25일서울역 대합실에서 한 시민이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남북 정상 친서 관련 브리핑 뉴스를 보고 있다. 뉴시스

25일서울역 대합실에서 한 시민이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남북 정상 친서 관련 브리핑 뉴스를 보고 있다. 뉴시스


③ “세월호 비교는 정치적 공세”

야권은 문 대통령의 사라진 10시간을 ‘국정 운영 공백’으로 규정하고,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시 사라진 박근혜 전 대통령의 7시간과 비교한다. 우리 국민이 북한군에게 사살당했을 가능성을 담은 ‘긴급한 사안’이라면, 신빙성이 다소 떨어져도 국군통수권자인 문재인 대통령에게 즉각 보고됐어야 한다는 게 야권의 주장이다.

‘세월호 사건과 A씨 피살 사건은 다르다’고 청와대는 선을 긋고 있다. 세월호 참사는 박 전 대통령이 기민하게 대처하지 않아 ‘구조의 골든 타임’을 놓친 것이 핵심이고, 이번 피살 사건은 ‘북한 해역에서 이미 벌어진 사건’임을 감안해야 한단 설명이다. ‘시간을 낱낱이 밝히라’는 야권의 주장을 청와대는 '팩트 추궁'보다는 ‘정치 공세’로 본다. 이에 응하는 순간 야당의 프레임에 휘말릴 것이라고 판단하는 게 청와대 기류다.

강 대변인은 이날 발표한 서면 브리핑에서 정부 대처에 대한 비판을 담은 일부 언론 보도의 제목을 거론하며 "'남북이 냉전과 대결 구도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 같은 주장이 서슴지 않고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 우려스럽다"고 했다.

신은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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