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개석과 모택동이 존경한 증국번

입력
2020.09.28 16:26
수정
2020.09.28 17:27
25면
증국번의 초상화

증국번의 초상화


1949년 10월 1일 모택동은 천안문 위에서 신중국의 탄생을 선언했다. 물론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그의 말처럼 참혹한 동족상잔의 내전으로 얻은 결과였다.

1950년 10월 1일 한국 육군 제3사단은 38선을 넘어 북진하였다. 이처럼 공교롭게도 한국 중국 양국의 10월 1일은 군사력에 나라의 성쇠(盛衰)와 존망(存亡)이 달려 있음을 상징하는 날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일제 패망 후 국민당과 공산당의 한판 승부에서 왜 장개석이 지고 모택동이 이긴 건지 궁금해한다. 그에 관한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고, 오늘은 장개석과 모택동이 함께 존경했던 증국번(曾國藩ㆍ시호 文正公ㆍ1811~1872)이라는 인물에 관하여 말해 보고자 한다.

아편전쟁(1840)으로 외세에 무너져 가던 청나라에 태평천국의 난까지 일어난다. 기세등등했던 태평천국을 농민 의용군을 조직해 진압한 사람이 증국번이다. 증국번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이지만 극소수를 제외한다면 대체로 일치한다. '인물' 그것도 '위대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시호를 붙여 '증문정공'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다. 특히 장개석과 모택동같이 전혀 다른 정치관 세계관을 지닌 인물들까지 모두 그를 존경했다는 점은 이채롭고도 부럽다.

사실 증국번은 당시 인물 중에서 가장 노둔하다는 평을 들었던 사람이지만 그는 매사에 신중했고 평생 부단히 노력했다. 지위가 높아질수록 자신이 선택한 사람, 자신의 판단 하나가 나라를 망칠 수 있다는 생각에 늘 반성하고 깨달은 바를 글로 써내며 공력을 축적했다.

장개석은 자식들에게 "너희들이 증문정공의 글을 자세히 본다면 중국의 학문에 대해서도 깨달을 뿐 아니라 정신과 도덕으로도 진정한 중국의 지도자가 될 것이다. 그 시대가 이미 지났다고 홀시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 아들 장경국은 회고록에서 이렇게 말했다. "부친은 문정공의 가르침이 모범이라고 하셨고 문정공의 가훈에 따라 행동하라고 하셨다. 서신으로 안부를 여쭐 적도 있었는데 공무로 바쁘셔서 살뜰한 답장을 못하실 경우에는 문정공의 가훈 어떤 편을 골라주시고 그 글을 자세히 보라는 회신을 주셨다."

모택동이 말했다. "요즘 세상에서 원세개 손문 강유위, 세 사람을 인물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오로지 문정공에게만 탄복할 뿐이다(獨腹曾文正). 태평천국의 난을 완전무결하게 처리하였으니 오늘날 누가 그렇게 완벽하게 할 수 있단 말인가." 1967년 중국의 저명 사학자 범문란(范文瀾)이 위중했다. 모택동은 딸을 보내 문병하며 출간될 '중국통사(中國通史)'에서 증국번에 대한 평가를 좋게 해줄 수 있는지 물었다. '모주석기념관'에는 붓으로 주를 달아 가면서 읽었던 증국번 문집이 아직도 남아 있다.

모택동과 장개석이 증국번을 존경하고 그의 책을 탐독한 주요 이유에는 치병(治兵) 역량, 즉 오랜 세월 지휘관으로 활약한 경륜도 작용했다. 중국 현대사를 리드한 인물들의 산실은 '황포군관학교'다. 1924년 장개석은 교장의 자격으로 증국번의 '치병어록'을 편찬하고 교재로 삼았다. 모택동도 마찬가지였다. 증국번이 기율이 문란했던 농민 의용군을 깨우치기 위해 지은 '애민가(愛民歌)'를 모방하여 인민해방군의 '3대기율 8항주의'를 만들고 노래로 편곡해 부르게 했다.

단재 신채호 선생께서 존경했다던 양계초(梁啓超ㆍ1873~1929)도 증국번을 너무 흠모하여 "하루에 세 번 증국번의 문장을 읊조리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다"며 책 한 권을 편찬했다. 제목은 '증문정공의 아름다운 말씀을 옮겨 적다(曾文正公嘉言?)'. 그중에서 양계초가 제일 좋아했다는 구절은 이렇다. '불문수확 단문경운(不問收穫 但問耕耘)'. 뜻인 즉, '수확이 얼마나 될지 묻지 말고 밭 갈고 김매는 방법만 물어봐라.'

필자도 10월 1일에 관련하여 한 구절을 골라 보았다. '요즘 장수들은 오직 돈을 뿌려서 병사들의 마음을 얻으려 하니 식견이 얕다. 그러니 돈을 뿌릴 때는 병사들이 스스로 개미떼처럼 모여들지만 돈이 떨어지면 시들해져 뿔뿔이 흩어진다.(金多則奮勇蟻附, 利盡則冷落獸散).' 증공의 책을 넘겨 볼 때마다 연신 혀를 차며 혼잣말을 하게 된다. 이런 걸 가르쳐야 하는데……

박성진 서울여대 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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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서울여대 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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