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줄어도 '석탄ㆍ석유 살리기'에 골몰하는 나라들

입력
2020.09.29 07:00

코로나 여파 화석연료 소비 급감했지만
미국 등 석탄ㆍ석유산업 투자 대폭 늘려
고용 창출 등 정치적 목적... 親환경 역행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 회원들이 2017년 프랑스 파리에 있는 글로벌 석유기업 토탈 본사 앞에서 회사의 브라질 아마존 개발을 규탄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파리=AFP 연합뉴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 회원들이 2017년 프랑스 파리에 있는 글로벌 석유기업 토탈 본사 앞에서 회사의 브라질 아마존 개발을 규탄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파리=AFP 연합뉴스

전대미문의 감염병 사태는 많은 것을 바꿔놨다. ‘환경'도 그 중 하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지구촌을 집어 삼키면서 경제가 멈춰 서자 에너지 수요도 급감했다. 줄어든 화석연료 사용은 기후 위기에 분명 호재였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환경단체들은 아우성이다. 일부 국가가 환경오염의 주범인 석탄ㆍ석유산업 투자를 오히려 늘리고 있어서다. 왜 그럴까.

감염병 여파에 따른 에너지 분야의 위축은 수치로 드러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4월 완전 봉쇄조치를 시행한 국가는 25%, 일부 이동제한을 적용한 나라에선 15%가량 에너지 소비가 줄었다는 내용의 연구보고서를 공개했다. 화석연료 산업이 직격탄을 맞은 건 당연지사. 올해 1분기 석탄ㆍ석유 소비는 전년 동기 대비 각각 8%, 5%의 감소폭을 보였다. 같은 달엔 사상 처음 원유 공급이 수요를 앞지르면서 국제유가가 마이너스로 추락하기도 했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글로벌 에너지 공룡들은 몸집 줄이기에 돌입했다. 로이터통신 보도를 보면 일본 최대 정유사 에네오스는 내달부터 오사카 정유시설을 완전히 닫는다. 하루 평균 11만5,000배럴을 생산하는 대규모 정제 공장이지만 수익성 악화에 폐쇄를 더는 미룰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미국 듀크에너지와 엑셀에너지도 최소 석탄발전소 40곳을 폐쇄하기로 했다. 덕분에 올해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지난해보다 약 26억톤 감소할 전망이다.

의도치는 않았으나 결과적으로 친(親)환경 전환을 위한 최소한의 기반은 마련된 셈이다. 하지만 몇몇 국가들의 해법은 달랐다. 23일(현지시간) 미 CNN방송에 따르면 폴란드는 7월 정부가 직접 방치돼 있는 석탄 3,500만달러어치를 사들였다. 미 중소기업청도 코로나19 구제책에 근거해 석유, 가스, 화학업체 7,075곳에 30억~70억달러의 자금을 지원했다. 또 호주 퀸들랜드주(州)는 연간 6,000만톤 석탄 생산이 가능한 세계 최대 카마이클 광산 개발을 승인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7월 14일 저탄소 전환을 골자로 하는 ‘그린 뉴딜’ 정책을 대대적으로 발표했지만, 불과 보름 전인 6월 30일 한전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인근의 ‘자와 석탄화력발전소’ 사업 투자를 결정하는 모순된 행보를 보였다.

이들 나라의 반(反)환경 전략은 역설적이게도 다시 코로나19와 맞물린다. 경기 침체와 그로 인한 대량 실업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막대한 수익을 내고, 일자리 창출도 쉬운 석탄ㆍ석유 살리기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실제 국제지속개발연구원(IISD) 보고서에는 올해 주요 20개국(G20)이 에너지부문에 투입되는 공공재정의 절반 이상(52%ㆍ2,120억달러)을 화석연료에 지원한다고 적시돼 있다.

더 나아가 화석연료에 대한 미련은 ‘표’와 직결돼 있다. 폴란드 정부는 최근 탄소중립 정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곧장 자국 거대 광산기업인 PGG 노동자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혔다. 로이터는 “200여명의 광부가 정부 산업재편 계획에 반대하며 광산 10곳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면서 폴란드 정부의 눈치보기를 지적했다.

각국 정부가 퇴출 위기에 몰린 석탄산업에 심폐소생을 하는 사이 코로나19 이후 녹색성장의 청사진은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조짐은 벌써부터 나타난다. 유럽연합(EU)은 7월 코로나19 경제회복 기금으로 7,500억유로(1,024조원)를 편성했다. 이 중 3분의1이 기후위기 해결에 필요한 그린딜 자금이다. 하지만 경제 추락을 걱정한 체코, 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들이 이탈하면서 현재는 합의 이행 여부조차 불투명해졌다.

급기야 유엔까지 나서 공개적인 경고를 내놨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달 성명을 통해 “모든 나라가 화석연료 보조금 및 석탄 자금 지원을 중단해야 한다”며 “의사 결정을 할 때 기후 위험을 함께 고려해달라”고 호소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도 “석탄화력 발전을 보조금으로 뒷받침할 경우 경제성이 없는 3,600억~8,900억달러 규모의 좌초자산이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장채원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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