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이냐, 히잡이냐'... 싱가포르ㆍ말레이 히잡 착용 논란

입력
2020.09.24 15:20
수정
2020.09.24 19:55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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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직장 내 히잡 착용 허용 청원
말레이시아, 히잡 착용 거부 여성 논란

할리마 야콥(왼쪽) 싱가포르 대통령이 2018년 국빈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과 담소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할리마 야콥(왼쪽) 싱가포르 대통령이 2018년 국빈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과 담소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잡(직장)이냐, 히잡이냐.'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에서 히잡 착용 여부를 두고 상반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무슬림이 소수인 싱가포르에선 직장 내 히잡 착용 허용 청원이 진행되는 반면 이슬람교가 국교인 말레이시아에선 히잡은 의무가 아니라는 외침이 높아지고 있다.

24일 현지 매체와 외신에 따르면 최근 싱가포르는 직장 내 히잡 금지령 종식을 촉구하는 온라인 청원에 무슬림을 중심으로 5만명 이상이 동참했다. 일터에서 히잡 착용을 금지하는 행위는 직장 내 괴롭힘이자 차별이라는 것이다. 인구 570만명의 도시국가 싱가포르는 중국계가 많아 불교(33%)와 기독교(18%)가 다수고 이슬람교는 약 15%를 차지한다.

싱가포르 직장 여성들은 그간 일터에서 히잡 착용 금지로 겪은 불이익을 토로하고 있다. "입사 면접에서 히잡을 쓰면 일할 수 없다고 했다" "일할 때마다 불편하게 히잡을 벗어야 한다" 등이다. 지난달엔 한 백화점에서 히잡을 벗으라는 회사 요구를 거절한 여성의 사연이 언론에 소개되기도 했다. 백화점은 히잡 규정을 바꿨지만 경찰, 간호사 등 일부 직업에선 여전히 히잡 착용을 금지하고 있다는 폭로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어졌다.

히잡을 쓴 여성들. 픽베이

히잡을 쓴 여성들. 픽베이

특히 청원에 참여한 시민들은 할리마 야콥 대통령 사례를 들며 차별 철폐를 요구하고 있다. 할리마 대통령은 그간 대통령을 배출하지 못한 여성, 소수종교(무슬림) 배려 차원에서 2017년 9월 무(無)투표로 당선됐다.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이 싱가포르를 국빈 방문했을 때도 할리마 대통령은 히잡을 착용했다. 그는 '백화점 사건'이 불거지자 "일자리와 생계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기간에 벌어진 백화점 사건은 사람들을 위협하고 불안을 악화시킨다"며 "자신의 장점과 업무 능력으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여성단체들도 가세했다. 싱가포르에 거주하는 시크교 남성들의 터번 착용은 직장 내에서 허용한다는 점을 들어 히잡 착용 금지가 이중잣대이자 명백한 차별이라는 것이다. 여성단체들은 "차이가 차별을 낳아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히잡 착용 여부의 자기결정권을 주장하는 마리암씨. 쿠알라룸푸르=AFP 연합뉴스

히잡 착용 여부의 자기결정권을 주장하는 마리암씨. 쿠알라룸푸르=AFP 연합뉴스

반면 이웃나라 말레이시아에선 히잡 착용 거부 운동을 벌이는 여성운동가 마리암(28)씨가 도마에 올랐다. 그는 9세 때부터 착용했던 히잡을 20대 중반 이후 쓰지 않고 있다. 그는 "히잡 착용은 여성의 선택에 따라 결정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권단체들은 그를 옹호하고 있지만 과격 무슬림단체는 살해 위협까지 하고 있다. 무슬림이 60% 이상으로 이슬람교가 국교인 말레이시아는 법적으로는 히잡 착용이 의무가 아니다.

자카르타= 고찬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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