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꺼진 불' 종전선언, 다시 꺼낸 이유는?

입력
2020.09.23 18:00
수정
2020.09.23 19:15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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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대선 이후 비핵화 협상 재개 염두
대선 전까지 한반도 상황 관리 의지도

문재인 대통령이 23일 오전(한국시간) 미국 뉴욕 유엔총회장에서 열린 75차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을 영상으로 전하고 있다.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23일 오전(한국시간) 미국 뉴욕 유엔총회장에서 열린 75차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을 영상으로 전하고 있다.청와대 제공


한반도 종전선언은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징검다리로 문재인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했던 대북 카드였다.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취하면 주변국도 김정은 정권의 안위를 보장해줘야 한다는 일종의 정치적 '보상' 차원이었다. 미국이 경제 제재 완화에는 워낙 완고한 터라 그나마 북한을 달랠 체제 보장 카드로 고려된 측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지난해 2월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후 비핵화 협상 교착 상태가 장기화하면서 종전 선언의 추동력도 자연스럽게 꺼졌다.

이를 고려하면 문재인 대통령이 23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종전선언 카드를 다시 꺼낸 것은 다소 의외일 수 밖에 없다. 문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한반도에서 전쟁은 완전히, 영구적으로 종식돼야 한다"면서 "그 시작은 한반도 종전선언이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이처럼 문 대통령이 종전 선언 카드를 재차 띄우긴 했으나 북미 협상 재개의 실마리가 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북미 비핵화 협상 국면에서도 북미간 셈법이 맞지 않아 공전을 거듭했던 이 카드가 협상 교착 국면에서 힘을 받기는 더욱 어렵기 때문이다. 남측의 중재자 역할에 냉담한 반응을 보이는 북한도 문 대통령의 제안에 긍정적 반응을 보이진 않을 것이란 게 대체적 전망이다.

이 때문에 야권에선 "불가능하고 의미도 없다"며 평가절하하는 목소리도 높다. 청와대 관계자도 이날 종전 선언의 실현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오늘 메시지를 냈다고 해서 당장 현실화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면서도 "인내심을 갖고 내일을 준비하겠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혔다.

당장 실효성을 갖기 어려운 카드라는 것을 모를 리 없는 문 대통령이 종전선언을 다시 띄운 것은 미국 대선 이후의 협상 재개를 염두에 두는 동시에 대선 전까지 한반도 상황을 관리하려는 메시지라고 전문가들은 해석했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임에 희망을 건 제안이라고 평가했다. 박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될 경우 문재인 정부 대북 정책의 연속성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면서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에는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대화 돌파구를 만들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임에 성공한다면 한국도 종전선언을 고리로 북미 간 중재자 역할에 다시 시동을 걸겠다는 메시지가 담겼다는 뜻이다.

다음 달 예상되는 북미 간 긴장 가능성을 우려해 평화 메시지를 다시 띄운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통일부 차관을 지낸 김형석 대진대 교수는 "노동당 창건 75주년(10월10일)에 북한이 새로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공개할 경우 미국도 적대적 기색을 보일 수 있다"면서 "종전선언 화두를 재차 던져 북미 간 불필요한 긴장 상승을 막겠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종전선언 카드로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의 필요성을 재차 각인시켜 자칫 미 대선 전 돌출될 수 있는 북미간 군사적 긴장을 사전에 예방하려는 의지가 엿보인다는 것이다.


조영빈 기자
김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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