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청의 심야 결정… 신고 접수부터 중단까지

입력
2020.09.22 19:00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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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 온도 안 지켜진다 제보 전화
식약처와 긴급회의 거쳐 일부 사실 확인
오후 11시 '국가 무료접종 사업 일시 중단' 고지
향후 백신 물량 확보 계획엔 "강구 예정"뿐

국가 독감 백신 무료접종이 일시 중단된 22일 오후 서울 송파구 거여동 한 개인병원에서 접종이 일시 중단된 백신을 보여주고 있다. 홍인기 기자

국가 독감 백신 무료접종이 일시 중단된 22일 오후 서울 송파구 거여동 한 개인병원에서 접종이 일시 중단된 백신을 보여주고 있다. 홍인기 기자

21일 오후 질병관리청엔 한 제보 전화가 걸려왔다. 인플루엔자(독감) 백신이 배송 과정에서 냉장차의 문을 한참이나 열어두거나, 판자 위에 박스를 쌓아두고 확인 작업을 하면서 상온에 노출됐다는 내용이었다. 당장 질병청에 비상이 걸렸다. 식품의약품안전처와의 긴급회의가 소집됐고, 백신 국가 조달계약 업체인 신성약품에 대한 사실 확인이 이뤄졌다.

21일 질병청에 따르면 독감 백신은 국내 8개사, 해외 2개사에서 생산된 도매상업체를 통해 의료기관 등으로 공급된다. 모든 공급 과정은 반드시 2~8도(평균 5도)의 냉장상태를 유지하도록 돼 있다. 이는 입찰 과정부터 요구한 조건이다. 공급업체는 분배작업을 위해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창고를 갖춰야 하고, 운반 시에는 반드시 냉장차를 이용해야 한다. 하지만 올해 정부와 조달계약을 체결한 신성약품 측 일부 배송기사들이 이를 지키지 않고 일반 공터에서 작업을 한 사실이 확인됐다.

신성약품이 정부와의 조달계약으로 공급할 물량은 1,259만 도즈(1도즈는 1회 접종량)다. 이 중 21일까지 의료기관에 공급된 물량이 500만 도즈로, 당장 22일부터 임산부와 13~18세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무료 접종에 필요한 물량이었다. 안정성과 효과성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질병청은 즉각 공급 중단을 결정했다. 그러고 나서 출입기자들에게 ‘국가 인플루엔자 예방접종 사업 일시 중단’을 알렸다. 여기에는 내달 예정된 노인 무료 접종을 포함한 모든 국가 예방접종사업이 포함됐다. 21일 오후 11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질병청과 식약처는 현재 백신 수거 및 품질검사에 착수했다. 품질검사에는 약 2주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전망되며 그 결과 제품에 문제가 없다면 즉시 물량공급을 재개할 방침이다.

백신 안전성에 문제가 발생하자 보건당국이 무료 접종 중단 등을 빠르게 결정한 점은 인정할 부분이다. 하지만 앞으로의 대책이 없다는 점은 문제다. 현재 신성약품이 아이스박스가 아닌 종이상자에 백신을 넣어 의료기관에 공급했다는 정황도 드러난 상황이어서, 상당수 백신이 폐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정부의 국민 60% 백신 접종 계획은 무산될 수 있다. 더욱이 이날 4차 추가경정예산안 국회 통과로 보건당국은 추가로 1,037만명분 독감 백신도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다. 앞서 ‘전 국민 백신 접종’에 대해 보건당국은 생산에 5~6개월이 소요돼 만들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힌 질병청은 “향후 조치 방안 등을 강구할 예정”이라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다.


김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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