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와 두루미가 함께 하는 식탁

입력
2020.09.23 04:30
25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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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화 ‘여우와 두루미’에서 여우는 두루미를 초대해 놓고선 두루미가 먹기 힘든 그릇에 음식을 담아 준다. 남을 배려하지 않았던 여우는 나중에 자신이 똑같은 상황이 되어서야 자신이 두루미에게 어떤 상처를 주었는지 알게 된다. 여우가 차린 식탁, 과연 우리 사회에는 없을까?

대학 강의에서 우리가 타인을 배려하고 있는지 돌아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20대 초반인 대학생들은 우선 요즘 늘어나는 무인 계산대를 두려워하는 할아버지, 어머니들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그리고 예매용 스마트폰 앱, 모바일 현금카드, QR코드 생성 앞에서 아날로그 세대가 소외되고 있는 현실이 공정하지 않다고 했다. 사회 구성원 다수에게 ‘발전된 기술’일지라도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서비스’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21세기 한국 사회가 외국어 사용에 익숙한데 이것이 특정 세대를 불편하게 한다고 했다. 주목할 것은 외국어의 불편함이 새로 등장한 기계 앞에서의 불편함과 같다고 대한민국 청년들이 인식하고 있는 점이다. 풀이되지 않은 외국어를 곳곳에서 만나야 하는 불편한 현실에 한국 땅에서 살면서도 외국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불편을 감수하고 만다. 여우가 차린 식탁과 같다.

우화에서 여우는 상대적으로 약자이자 타인인 손님에게 심술을 부리는 것으로 그려진다. 그런데 남을 골리려고 의도한 마음보만이 심술이 아니다. 다수 구성원이나 힘을 가진 자가 다른 한 쪽을 잊고 밀어붙이는 것도 심술이다. 누구든 그 맞은편에 앉은 두루미가 될 수 있지 않은가? 배려를 가르치지 못했으나 배려를 배운 마음 건강한 청년들이 참 대견할 뿐이다.

이미향 영남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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