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끼리 ‘아파트 계’ 만들어 타인명의 갭투자"… 국세청 "부동산실명법 위반"

입력
2020.09.22 15:0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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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펀드ㆍ검은머리 외국인 등 98명 세무조사 착수

국세청이 최근 조사에서 적발한 '아파트 계모임' 형태의 부동산 편법 투자 사례. 국세청 제공

국세청이 최근 조사에서 적발한 '아파트 계모임' 형태의 부동산 편법 투자 사례. 국세청 제공

#. 서울에 사는 A씨는 동네 주민 네 사람과 ‘아파트 계’를 만들었다. 이들은 약 10억원을 모아 서울 시내 아파트 여러 채를 갭투자로 사들였다. 구입한 아파트는 A씨와 아파트 계에 참여하지 않은 무주택자 B씨의 명의로 했다.

국세청이 명의자 두 사람의 자금출처가 의심돼 조사한 결과, 실제 투자자들이 양도소득세를 아끼기 위해 다른 사람 이름으로 등기한 사실을 밝혀냈다. 국세청은 양도세를 추징하는 한편, 서울시에 이들의 부동산실명법 위반 사실을 통보했다. 부동산실명법을 위반하면 부동산 시세의 30% 범위 내에서 과징금을 내야 한다.

국세청이 22일 부동산시장 과열에 올라탄 ‘변칙 탈세’ 혐의자 98명에 대한 대규모 세무조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A씨처럼 다른 사람 명의로 집을 사거나, 사모펀드나 법인을 이용해 세금을 탈루한 혐의를 받고 있다.

조사 대상은 △사모펀드 투자자 10명 △다주택 취득 법인 관련자 12명 △고가주택 취득 39세 이하 연소자 76명 등이다. 비싼 아파트를 취득한 사회 초년생 중에는 이른바 ‘검은머리 외국인’ 등 외국 국적자 30명도 포함돼 있다.

조사 대상에 포함된 검은머리 외국인 B씨는 고가 아파트를 보유하고 최고급 승용차를 몰면서 생활했지만 자금 출처가 불분명해 국세청의 레이더에 걸렸다. 그는 고가 아파트를 다른 외국인에게 비싼 값에 빌려줬지만, 임대사업자 등록도 수입금액 신고도 하지 않았다. 국세청은 B씨가 증여를 받아 아파트를 사고 증여세 신고를 하지 않았는지, 임대소득세를 불법으로 누락했는지 집중 검증할 계획이다.

자본금 100원짜리 페이퍼컴퍼니를 만든 뒤 부동산 규제를 피한 C씨도 조사 대상이다. 그는 다른 사람 명의로 만든 페이퍼컴퍼니에 수십억원을 투자했고, 이 자금은 다시 부동산 사모펀드로 흘러갔다.

사모펀드는 이 자금으로 주택임대사업을 벌였고, 수익은 고스란히 페이퍼컴퍼니에 배당했다. 국세청은 배당을 받은 법인이 가짜 경비를 지출하는 방식으로 C씨에게 수익을 돌려줬다고 의심하고 있다. C씨는 직접 사모펀드에 투자했다면 배당소득세를 물어야 하지만, 법인을 통해 투자하면서 세금을 회피한 혐의도 받고 있다.

국세청은 투기과열지구ㆍ조정대상지역 등 규제지역의 주택담보대출이 어려워지고, 일정 금액 이상 주택을 거래할 때 자금조달계획서를 제출해야 하면서 이를 우회하는 수법이 늘어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가족 등 특수관계인에게서 “돈을 빌렸다”고 가장할 가능성도 커진다.

김태호 국세청 자산과세국장은 “금융 추적 조사로 자금흐름을 끝까지 살피고, 실제 자금을 빌린 것인지 검증할 것”이라며 “돈을 빌려준 개인과 법인의 자금 조달 능력도 검증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조사는 김대지 국세청장 취임 후 첫 기획조사다. 김 청장은 앞서 열린 세무관서장 회의에서 법인과 사모펀드의 다주택 취득, 30대 이하의 고가 아파트 취득 과정에서의 자금 흐름 검증을 지시한 바 있다.

세종 = 박세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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