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가 미술관에 간 날… 반려견을 위한 이색 전시회

입력
2020.09.23 10:30
수정
2020.09.23 14:12
'모두를 위한 미술관, 개를 위한 미술관' 전시 전경. 사진 박수환.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모두를 위한 미술관, 개를 위한 미술관' 전시 전경. 사진 박수환.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미술관 앞마당엔 개들이 놀기 좋은 어질리티(Agilityㆍ장애물경기) 기구들이 잔뜩 어질러져 있다. 적록색맹인 개들을 위해 전시장 내부는 파란색과 노란색으로 채웠다. 개들이 좋아하는 수준에 습도를 맞췄다고 해서인지, 전시장 안은 어딘가 모르게 눅눅한 느낌이다.

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미술 전시장에 개를 데리고 가도 될까, 한 번쯤은 생각해봤을 테다. 하지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25일부터 온라인으로 먼저 공개하는 ‘모두를 위한 미술관, 개를 위한 미술관’은 사람이 개를 데리고 다니는 곳이 아니라 개가 사람을 데리고 다니는 곳이다.


조각스카웃, '개의 꿈', 2020. '모두를 위한 미술관, 개를 위한 미술관' 설치 전경. 사진 조각스카웃.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조각스카웃, '개의 꿈', 2020. '모두를 위한 미술관, 개를 위한 미술관' 설치 전경. 사진 조각스카웃.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전시 출발점은 간단하다, 반려동물 열풍 덕에 우리나라 가구의 30% 정도가 반려동물을 키운다는데, 미술관은 이들을 배제해야 하는가. 개를 전시에 끌어들이면 어떨까.


김경재, '가까운 미래, 남의 거실 이용방법', 2020. 사진 박수환.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김경재, '가까운 미래, 남의 거실 이용방법', 2020. 사진 박수환.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그래서 전시에 출품된 작품들은 하나 같이 개의 관점에서 본 사람의 모습들이다. 가령 김경재 작가는 여러 가구 등을 이용해 거실을 꾸몄다. 포인트는 높이 등 가구의 사이즈 기준이 사람이 아니라 개라는 것. 개를 위해 가구 높이를 한껏 낮춘 거실에서, 인간은 되레 적당히 앉을 곳을 찾지 못해 서성댄다.


정연두, '토고와 발토 - 인류를 구한 영웅견 군상', 2020, 애견 사료, 혼합재료. 사진 박수환.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정연두, '토고와 발토 - 인류를 구한 영웅견 군상', 2020, 애견 사료, 혼합재료. 사진 박수환.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전염병으로부터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알래스카의 눈 폭풍을 뚫고 달려 면역 혈청을 전달한 선도견 ‘토고’와 ‘발토’. 사람들을 구한 영웅견의 군상을 만들어둔 정연두 작가의 작품. 그 앞에는 개들이 줄지어 늘어서기 일쑤다. 자기네들의 영웅을 추모하고 싶은 걸까. 영웅견의 비밀은 이 군상의 재료가 개 사료라는 것.


김용관, '알아둬, 나는 크고 위험하지 않아!', 2020, 혼합재료. 사진 박수환.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김용관, '알아둬, 나는 크고 위험하지 않아!', 2020, 혼합재료. 사진 박수환.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반려동물인 개와 사람'이 아니라 '반려인간인 사람과 개'를 주제로 한 전시가 묻는 건 결국 우리가 개를 얼마나 잘 알고 있느냐는 질문이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어렴풋이 알고는 있지만 안다고 말하지 못했던, 개에 대한 모든 것을 하나하나 살펴봐가면서 사람도 개를 이해하고 존중해야 함을 역설한다. 국내외 작가 18명(팀)의 작품 25점, 영화 3편이 나와있다. 전시는 코로나19로 인한 휴관으로 국현 공식 유튜브로만 볼 수 있다.



김단비 인턴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