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벌 먹고 자라는 일본 정치…한일관계, 스가도 별 수 없다

입력
2020.09.23 12:00
수정
2020.09.24 09:47
24면

<세계 어디에도 없는 일본의 파벌정치>

편집자주

국내외 주요 흐름과 이슈들을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깊이 있는(deep) 지식과 폭넓은(wide) 시각으로 분석하는 심층 리포트입니다

지난 14일 일본 도쿄의 한 호텔에서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투개표에서 아베 신조 총리가 차기 총재로 선출된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에게 꽃다발을 건네고 있다. 스가 총재는 이틀 뒤인 16일 치러진 일본 총리선거에서 99대 일본 총리에 취임했다.도쿄=AFP연합뉴스

지난 14일 일본 도쿄의 한 호텔에서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투개표에서 아베 신조 총리가 차기 총재로 선출된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에게 꽃다발을 건네고 있다. 스가 총재는 이틀 뒤인 16일 치러진 일본 총리선거에서 99대 일본 총리에 취임했다.도쿄=AFP연합뉴스

“역시나 아베 아바타군요.” “그래도 무파벌 총리 아닙니까.” 지난 16일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신임 일본 총리가 자신을 보좌할 내각과 자민당 집행부의 진용을 내놓자 일본의 정치 평론가들은 이렇게 파벌 정치의 이면을 놓고 갑론을박했다.

일찌감치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완전 계승’을 다짐했다고는 하지만, 스가 내각에 스가는 보이지 않고 아베의 그림자만 넘실댔다. 아베 내각에 몸담았던 각료의 4분의 3, 전체 20명 중 15명이 유임 혹은 보직 변경, 재기용되어 스가 내각을 채웠다. 심지어 아베의 친동생인 기시 노부오(岸信夫)도 방위장관이 됐다. 최대 파벌 ‘호소다 파’의 실질적 오너이자 자민당 내 절대 강자인 아베의 심기를 살피면서 파벌 안배를 고심한 흔적이 역력했다. 오히려 아베의 어릴 적 가정교사였던 히라사와 가쓰에이(平澤勝榮)가 부흥장관에 기용된 것이 화제가 됐다. “공부 못하는 신조 소년의 머리를 쥐어박았다”는 ‘아픈 과거사’를 들먹였다는 이유로 미운털이 박힌 히라사와는 8선 중진임에도 아베 정권 내내 겉돌아야 했다. 이런 그를 스가가 구제한 것이 역설적으로 ‘미담’이 된 것이다.





무파벌 총리 스가의 파벌 정치

자민당 집행부인 5역(간사장, 총무회장, 정조회장, 선대위원장, 국회대책위원장)은 스가를 공개 지지했던 5개 파벌이 골고루 나눠가졌다. 평균연령 72.2세의 ‘파벌 원로원’이라는 비판이 일자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간사장은 “눈곱만큼도 논공행상이 아니다”라고 발끈했다. 하지만 파벌 간 밀실담합으로 급조된 스가 정권이 파벌들의 영향권 아래에 있다는 건 웬만한 일본 국민들도 짐작하는 바이다.

아키히토 일왕 퇴임을 앞둔 지난해 4월 1일 도쿄에서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새연호 '레이와'를 발표하고 있다. 이후 그는 '레이와 아저씨'로 불리며 대중 인지도가 수직 상승했다. 도쿄=AP연합뉴스

아키히토 일왕 퇴임을 앞둔 지난해 4월 1일 도쿄에서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새연호 '레이와'를 발표하고 있다. 이후 그는 '레이와 아저씨'로 불리며 대중 인지도가 수직 상승했다. 도쿄=AP연합뉴스

그래서인지 요즘 일본 정가에서는 스가가 조만간 국회를 해산해 ‘당고정저(黨高政低)'의 판세에 파열음을 내려할 것이라는 ‘기대 섞인’ 추론이 쏟아진다. 다만, 총선거 카드는 무엇보다 스가 내각에 대한 지지율이 높게 유지되는 정권 초기에나 꺼내들 수 있는데, 파벌들의 의중은 물론이고, 코로나 확산과 경기 위축, 도쿄올림픽 취소 가능성, 미국 대통령 선거 등 고려해야 할 변수가 너무 많아 보인다.

자민당 안의 ‘파벌 마을’들

일본 정치는 곧 자민당의 파벌 정치라는 말이 있다. 세계 어느 정당이든 정당 내에 다양한 목소리가 존재하게 마련이지만, 자민당 파벌처럼 ‘회장’이라는 1인 정치인을 중심으로 '당총재=총리' 자리를 놓고 당내 다른 파벌들과 대놓고 경쟁하는 정치 결사체는 드물다. 정치적 목표의 공유를 전제로 하는 정당 안에 이런 경쟁적 사조직들이 난립한다면 정당 자체가 콩가루 집안이 되고 말겠지만, 자민당은 오히려 이런 파벌 구도를 자양분 삼아 진화해 왔다.

파벌은 자민당의 당칙에도 없는 단어이지만 실질적인 정치 세력이다. 복수 교섭단체를 인정하는 일본 국회법에 따라 파벌들은 독자적으로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도 있다. 언론에서는 파벌 수장의 이름을 따 ‘??파’라고 부르지만, 대부분의 파벌은 나름의 정치 좌우명을 표방한 공부 모임으로, 어엿한 ‘공부방’도 갖고 있다. 가령 현재 제1파벌인 ‘호소다 파’의 정식 명칭은 ‘청화정책연구회(청화회)'다.

자민당 의원들 사이에서 파벌은 ‘무라(村, 마을)'라는 애칭으로 통한다. 자민당이라는 ‘정치판’에 여러 ‘마을’이 있는 셈이다. 회비를 낸 의원들은 매주 자기들 ‘마을’에 모여 ‘마을 회장’에게 인사하고 약간의 공부를 한 후 함께 밥을 먹는다. 이렇게 부지런히 결속해야만 ‘주군’인 회장이 당총재(=총리)가 되고 덩달아 ‘마을 구성원'들도 승승장구할 수 있는 것이다. ‘마을’의 발전을 위해 파벌 수장은 인사권과 정치자금을 장악한다. 한 선거구에서 여러 명의 의원을 뽑는 중선거구제를 채택했던 과거에는 파벌에 대한 충성도가 공천과 당선 여부를 가름했다. 파벌 수장도 소속 의원들을 다독이느라 여름에는 ‘얼음 값,’ 겨울에는 ‘떡값’을 돌렸다. 소선거구제가 채용된 요즘에는 파벌의 성격도 다소 변해 이런 미풍양속(?)은 사라졌지만, 그래도 연말에는 파벌 차원의 정치자금 모금 행사, 즉 ‘마을 잔치’를 연다.

호사다 파의 실질적 리더인 아베 신조 전 총리가 19일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모습. 연합뉴스

호사다 파의 실질적 리더인 아베 신조 전 총리가 19일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모습. 연합뉴스


파벌은 ‘연립정권’ 속의 정당’?

파벌이 득세하는 것은 결국 자민당 장기 집권 체제 때문이다. 자민당은 출범 이후 두 차례 짧게 정권을 내준 것을 빼곤 내리 집권해 왔다. 잠시 정권을 내준 것도 야당에 패했다기보다는 파벌 내 혹은 파벌 간의 불화로 인한 자멸의 성격이 강했다. 가령 1993년 8월의 호소카와(細川) 연립정권의 탄생은 파벌을 박차고 나간 의원들이 야당 세력과 손잡고 자민당 정권을 엎어버린 경우다. 약간 과장해서 말하면 일본에선 여태까지 제대로 된 정권 교체를 한 적이 없다.

때문에 이렇게 막강한 자민당은 하나의 정당이 아니라 “파벌이라는 ‘정당’이 여럿 모인 장기 연립정권”으로 간주되기 일쑤다. 자민당이 연립정권이라면, 자민당 안에 기생하는 파벌은 연립정권을 구성하는 정당인 것이다. 이 해석을 더욱 확장하면 일본의 상당수 야당들도 파벌 정치의 유산이므로 자민당의 ‘장외(場外) 파벌’이 된다. 결국 파벌들은 자민당 안에서 보수진영의 다양한 욕구를 흡수함으로써 자민당의 장기집권을 떠받쳐온 ‘당 속의 당’인 셈이다.

국민 무시한 합종연횡

자민당은 처음부터 파벌 연합체였다. 1955년 요시다 시게루(吉田茂)의 자유당과 하토야마 이치로(鳩山一?))의 일본민주당이 ‘보수 합동’이라는 명분으로 뭉치는 과정에 각종 인맥이나 경력, 신조 등이 엇비슷한 의원들이 가세하면서 자연스레 파벌들이 형성됐다. 1956년 12월의 당총재 선거를 계기로 ‘8개 사단’으로 불린 파벌들이 조직되더니, 점차 5대 파벌로 수렴된다.

특히 1970년대 초반 아베의 작은 외조부인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의 후계 자리를 놓고 펼쳐진 이른바 ‘삼각대복중(三角大福中)'은 파벌 투쟁의 극치를 보여줬다.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 등 5명의 당권 후보는 금권정치를 포함한 온갖 야합과 회유, 권모술수를 동원한 파벌 간 권력 투쟁을 전개했다. 이렇게 10년 이상 그야말로 피 터지게 싸운 끝에 정해진 서열에 따라 당총재=총리 자리가 하나씩 채워졌다. 물론, 이런 일들은 모두 국민의 뜻과는 전혀 무관한 그들만의 합종연횡이 이뤄낸 결과물이었다.

이 과정에서 아베의 두 외조부, 즉 사토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형제가 파벌사에 남긴 족적은 뚜렷했다. 각각 자민당의 전신인 자유당과 일본민주당 출신인 이들 형제는 난립한 파벌들을 크게 ‘보수 본류’와 ‘보수 방류’로 양분해 낸 주역이다. ‘보수 본류’는 이른바 ‘요시다 노선’을 계승해 평화헌법 유지, 미일동맹 하의 경제우선 정책을 추구한 ‘비둘기파’인 반면, ‘보수방류’는 미일동맹을 강조하면서도 헌법 개정을 통한 자주 노선을 지향한 ‘매파’다. ‘보수 본류’ 계열의 파벌 수장들이 장기간 총리 자리를 꿰차면서 ‘경제대국’ 일본이 만들어졌다.

극우 쪽으로 ‘확 기울어진’ 파벌 판세

하지만 2000년대 이후 파벌 간의 역학 관계에 중대한 균열이 생겼다. ‘보수 방류’로 분류됐던 파벌이 대반격에 나서 주류 자리를 꿰찬 것이다. 그 중심에 아베가 실질적인 오너인 ‘청화회’가 있다. 아베 입장에선 ‘보수 방류’의 태두 격인 큰 외조부 기시를 추종한 셈이다. 헌법개정을 통한 보통국가화를 전면에 내건 청화회는 기존의 대파벌 ‘굉지회’를 소수파로 몰아붙였을 뿐만 아니라, 선거 전략상 매우 중요한 공명당의 협력까지 얻어 자민당 1당 체제를 재확립해 냈다. 여기에 초당파 조직인 ‘일본회의’ 등 극우 정치 세력이 편승했다. 이렇게 완전히 ‘기울어진 운동장’은 아베가 7년8개월간의 장기 집권 중에 치른 3차례의 중의원선거에서 압승하면서 더욱 굳어졌다.

총리가 누가 되든 오른쪽으로 확 쏠린 파벌 판세를 뒤집긴 요원하다. 이런 가운데 아베의 퇴진이 지병을 빙자한 일시적인 ‘자산 도피’일 것이라는 소문이 자자하다. 스가 정권에 한일관계 등에서 뭔가 의미 있는 노선 변경을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이동준 기타큐슈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한국일보 기자 출신으로 일본 도호쿠대에서 국제정치학으로 법학 박사를 취득했다. 일본 공립대학에서 한국·일본을 중심으로 동아시아 정치외교를 가르치며 최근에는 한일관계사를 이데올로기와 담론 차원에서 재구성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저서로 ‘미완의 평화’(일본어판) ‘미완의 해방’(공편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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