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아이 '덕분에' 바뀐 인생... 엄마는 오늘도 아들의 일기를 쓴다

입력
2020.09.23 16:27
수정
2020.09.23 20:27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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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인데 지적인 재현씨' 연재하는 정유진씨
아들 지적장애 판정 후 뒤늦게 특수교육 공부
이젠 발달장애 자녀ㆍ부모 교육에 매진

운동 중인 재현씨. 정유진씨 제공

운동 중인 재현씨. 정유진씨 제공


안녕하세요.
저는 조재현입니다.
저는 글씨 쓰는 걸 좋아해요.
사람들이 물을 때 글로 써서 대답하는 것도 좋아해요.
말로 대답하는 건 어려워요.
발음도 어렵고 사람들이 잘 못 알아들어요.
나에 대해 궁금한 게 있을 때,
말로 대답하지 못하면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종이랑 연필을 건네주면 더 좋아요.
새로운 글자를 배워서 보여주면
똑똑하다고 칭찬 받아요.
저는 지적이예요.

페이스북 '지적인데 지적인 재현씨' 중 발췌

지적장애 2급의 조재현(21)씨는 페이스북에 매일 일기를 쓴다. 한 화장품 회사의 장애인 수영 선수로 활동 중인 재현씨는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수영장이 문을 닫자, 집에서 퍼즐을 하거나 노래를 부르며 시간을 보낸다.

집에서 투표 용지 접는 법을 수십번 연습하고 처음 투표를 하러 갔던 날, 친구와 처음 소주를 마셨던 저녁식사, '이상한 기계'로 햄버거를 주문하느라 버벅댔던 날까지. 재현씨의 일기엔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소소한 일상이 한 줄 한 줄 기록돼 있다. 어린 아이 정도의 지능을 가진 21살 청년의 시선엔, 우리가 보지 못한 이 사회의 새로운 모습이 담겨 있다.

사실 재현씨의 일기에는 비밀이 하나 있다. 일기의 화자는 재현씨지만, 실제론 재현씨의 엄마 정유진(49)씨가 대신 쓰는 일기다. 20년 전 아들의 지적장애 장애 판정을 계기로 특수교육학 공부에 뛰어든 정씨는 발달장애 아동과 부모들을 상담하고 교육하는 일을 하고 있다.

'지적인데 지적인 재현씨'라는 이름의 페이스북은 지적장애인들에 대한 편견을 불식시키기 위해 엄마와 아들이 함께 세상을 향해 손을 내민 소통의 장이다. 어린 아이 정도의 지능을 가진 지적장애인의 순수한 시선으로 '삐딱'하게 바라 본 세상은 여전히 장애인에게 친절하지 않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 취지라고 한다.

20일 오후 경기 성남시 소통과지원연구소 사무실에서 만난 정씨는 "'지적인데 지적인 재현씨'는 6년 전부터 페이스북에 제가 재현이로 빙의해서 쓰는 일기"라며 "엄마가 자기 이름을 도용하고 있는 걸 알면 재현이가 화를 낼지도 모르겠다"고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하늘이 내려준 선물, 2살 재현이에게 내려진 장애 판정

20년 전 발달장애지원전문가 정유진씨와 아들 조재현씨의 모습. 정유진씨 제공

20년 전 발달장애지원전문가 정유진씨와 아들 조재현씨의 모습. 정유진씨 제공


21년 전 정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한 20대 후반의 평범한 주부였다. 1999년 1월 18일 태어난 맏아들 재현씨는 하늘이 내려준 선물이었다. 다른 아이들보다 말이 조금 느렸지만, 정씨 부부는 재현씨가 점잖은 아이라고 생각해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단다.

정씨가 재현씨에게 장애가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태어난 지 2년쯤 뒤였다. 어느날 아침 재현씨가 갑자기 경기를 일으켜 응급실에 가게 됐는데 "혹시 다른 아픈 곳은 없느냐"는 의사의 질문에 정씨가 "말이 늦다"고 하자 의사는 검사 1분 만에 '장애' 판정을 내렸다.

"의사가 그러더라구요. 자폐라고. 어차피 수술로도 못 고치니까 시간 낭비하지 말고 맛있는 것 많이 사주고 장애 다니는 치료센터를 소개해줄테니 거기 가보라고. 그게 전부였어요. 그 말이 어찌나 야박하던지. 믿을 수가 없어서, 눈물도 안 나왔어요. 이제와서 보면 의사 말도 틀린 거였어요. 자폐가 아니고 지적장애인데."

의사의 말을 믿을 수 없던 정씨 부부는 한 가지 약속을 했다고 한다. 재현씨가 딱 태어난 지 2년이 되는 날 아침에도 재현이가 '엄마'라는 말을 못 하면 아들이 장애가 있다는 걸 받아들이자고.

"2001년 1월 18일 오전 9시였어요. 일어나자마자 남편이랑 재현이한테 가서 "재현아, 엄마라고 해봐. 엄마"라고 말했어요. 그런데 아무리 타이르고 말을 붙여봐도 엄마 비슷한 소리는 커녕 제 쪽을 쳐다 보지도 않았어요. 그때 마음 속으로 '재현이가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어요. 그 길로 갓 태어난 둘째를 포대기에 들쳐 업고 한쪽엔 재현이를 안고 유명한 치료센터며 의사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한 거죠." 정씨가 딱 30살이 되던 해의 일이었다.


영양사였던 엄마가 미국서 특수교육 대학원에 간 이유

과일을 다듬고 있는 재현씨. 정유진씨 제공

과일을 다듬고 있는 재현씨. 정유진씨 제공

정씨는 처음 발달장애를 공부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이유를 "재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하는 막연한 걱정 때문이었다고 고백했다. 정씨에 따르면 2000년대 초반은 발달장애를 가진 부모에겐 너무나 불편한 세상이었다. 지금처럼 발달장애 부모들이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인터넷 커뮤니티도 발달하지 않았고, 장애 아동을 위한 교육 시스템 등 사회복지 제도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정보는 알음알음으로 들을 수 있는 게 전부였고, 치료는 주먹구구식이었다.

"망망대해에 혼자 떨어진 기분이었어요. 어느 병원 어떤 의사에게 어떤 치료를 받아야할 지, 어린이집과 유치원, 학교는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아무 것도 모르니 막막할 수밖에요. 어떤 치료센터는 대기만 1년을 해야 치료를 받을 수 있다고 하더라구요. 특히 재현이를 받아 줄 수 있는 어린이집을 찾는 것조차 쉽지 않았어요."

그러던 2004년 남편이 박사 후 연구원(포스트닥터) 과정으로 미국 일리노이주의 한 대학으로 유학을 가게 됐는데, 그때 정씨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남편이 공부하는 대학에 발달장애 관련 특수교육 대학원이 있었던 것. 정씨는 "원서라도 넣어보자"는 생각에 무턱대고 대학원 입학을 신청했다.

"원래 전공이 식품영양학이었어요. 영양사 자격증도 있어요. 잘하지도 못하는 영어로 자기소개서를 꾸역꾸역 적어서 냈어요. '평소 팝송을 많이 들어서 영어를 잘한다' '똑똑해서 입학만 시켜주면 엄청 잘 할 거다' '꼭 특수교육 공부를 하고 싶다'고요. 지금 생각해보니까 말도 안 되는 이야기만 써놨더라구요."

운이 좋았던 걸까? 정씨는 대학원에 합격했고 때늦은 공부는 그렇게 시작됐다. 아침에 아이들을 버스에 태워 학교에 보내고, 연구실로 가 산더미의 책과 씨름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남편이 2년간의 과정을 수료하고 먼저 귀국한 뒤에도 정씨는 3년간 아이들과 미국에 남아 석사 학위 공부를 마쳤다.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정씨의 둘째 딸은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집에서 자주 울었다"고 했지만, 정씨는 그때를 "나도 모르게 쌓여 있던 우울함을 회복하는 치유의 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발달장애 부모도 '덕질'할 수 있는 땔감 필요해

노래를 부르는 재현씨. 정유진씨 제공

노래를 부르는 재현씨. 정유진씨 제공


2010년 한국에 돌아온 정씨는 집 근처 재현씨가 다니던 복지관에서 장애 아동 상담사로 일하며 발달장애지원전문가로서의 첫 발을 뗐다. 재현씨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됐을 무렵이었다.

"처음엔 순수하게 재현이에 대해 알아보자는 생각으로 공부를 시작한 것이었지만, 운좋게 받은 혜택을 한국에서 나누지 않는다면 평생 빚지는 기분으로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던 중에 집 근처에 새로 복지관이 생겼어요. 신임 관장님이 장애 아동 부모들을 모아놓고 앞으로 어떤 프로그램들을 운영하겠다고 설명회를 하는데 농담으로 '부모님들 중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지원하세요'라고 하신 거예요. 저는 눈치가 없어서 번쩍 손을 든 거죠."

정씨는 복지관에서 5년 넘게 일하며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수많은 부모들을 만났다. 쉬는 날에도 복지관에 나와 출근 도장을 찍었다. 아이를 특수학교에 보내야할지 통합학교에 보내야할지부터,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가 힘이 세져 어찌할 줄 모르겠다는 하소연까지 정씨가 했던 고민들을 다른 부모들도 똑같이 하고 있었다. 그가 볼때 문제의 핵심은 '소통의 어려움'이었다.

"재현이가 노래방 가는 걸 정말 좋아하는데, 가족들이 코로나19로 못 간다고 여러 번 설명해도 이해를 못 해 매번 화를 내요. 반대로 제가 재현이의 속마음을 몰라서 끙끙대다 한참 뒤에서야 '이 얘기를 하고 싶어 이 난리를 쳤구나' 싶은 순간도 많아요. 하물며 가족들조차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오죽하겠어요. 쇼핑몰에 가면 재현이가 진열대에 놓인 신발을 만지면서 소리를 내요. 그럼 저희 가족은 '재현이가 저 신발 갖고 싶은가 보다'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겨요. 그런데 정작 점원은 어떻게 해야할 지 몰라서 어쩔 줄 모르더라구요."

페이스북에 쓰는 재현씨의 일기 '지적인데 지적인 재현씨'도 그 무렵 시작됐다.

"재현이도 분명 세상과 소통하고 싶을텐데, 보통 사람과는 방식이 다르니까 주변사람들은 '지적장애인은 수동적일 거야' '복잡한 생각은 못하겠지'라고 생각해요. 거기서 끝나는 게 아쉬웠어요. '재현이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글이나 말로 소통할 수 있다면 세상을 이렇게 바라보겠지'하는 생각으로 한 자 한 자 고심해서 일기를 쓰게 된 거죠."

이후 복지관을 그만 둔 정씨는 김성남 나사렛대 재활자립학과 겸임교수와 합심해 '소통과지원연구소'에서 본격적으로 발달장애 부모를 위한 교육과 컨설팅에 뛰어들었다. 최근엔 밀려드는 강의 요청에 주말에도 쉴 틈이 없단다. '발달장애'를 주제로 한 팟캐스트도 매주 진행한다. "발달장애 관련해서도 부모들이 소위 '덕질'할 수 있는 땔감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 이유다.

"꿈이요? 재벌돼서 성인 지적장애인들이 놀 수 있는 '카페' 만드는 것"

20일 오후 경기 성남시 소통과지원연구소 사무실에서 정유진씨가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승엽 기자

20일 오후 경기 성남시 소통과지원연구소 사무실에서 정유진씨가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승엽 기자


내가 요즘 제일 좋아하는 노래는
악동뮤지선 '다이노소어'예요.
태양 '눈코입'도 좋아하고
걸그룹 최신노래도 자주 들어요.
근데 복지관 선생님들은 같이 신나게 춤추자면서
'아기상어' 노래를 틀어줘요.
난 어른이 되야 다닐 수 있는
복지관 프로그램에 합격했는데요~
내가 합격한 건 복지관 대학이지
복지관 유치원이 아니예요.

페이스북 '지적인데 지적인 재현씨' 중 발췌

아들의 장애를 계기로, 아니 아들 덕분에 뒤바뀐 인생이다. 정씨는 '아들이 결정한'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있을까. "선생님은 행복한가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최근 페이스북에 올린 재현씨의 6월 23일 일기 이야기를 꺼냈다.

"지적장애인들의 지능 수준이 어린 아이에 머물러 있다고 해도, 그들이 어린 아이인 건 아니에요. 그래도 재현이가 본인이 듣고 싶은 노래를 선택하는 것과,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건 달라요. 취업도 마찬가지예요. 지적장애 부모들은 자녀가 성인이 되면 간단한 포장 업무 등을 하는 작업장에 취직해 '사람 구실'하며 반듯하게 사는 걸 원해요.

저도 재현이가 성인이 되기 전 취업 상담을 하려고 잘 운영되는 장애인 사업장으로 알려진 공장에 찾아간 적이 있어요. 소규모 작업장들이 모여있는 공단이었어요. 장애인 분들이 천장이 낮은 사무실, 작은 탁자에 둘러 앉아 종이를 접고 있었어요. 그런데 문득 재현이가 여기서 일하면 행복할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여기 있으면 성취감이 느껴질까. 결국 이곳이 재현이 인생의 종착점일까. 재현이는 평생 노래만 부르면서 살고 싶을 수도 있는데. 눈물이 쏟아지더라구요."

그래서 정씨의 꿈은 발달장애인들의 '선택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성인 장애인들이 손쉽게 드나들 수 있는 '카페'를 만드는 게 꿈이다. 다른 평범한 사람들처럼, 장애인들에게도 취직이 다가 아니라, 여가 시간에 자유롭게 쉴 수 있는 놀이터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정씨는 "발달장애인이 나들이를 한 번 가려면 복지관 '프로그램'을 통해서 가는 방법밖에는 없다"며 "카페를 만들려면 '재벌 3세' 정도의 재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래서 주말에도 일한다"고 말하며 미소지었다.

식품영양학을 전공한 발달장애 지원전문가. 정씨는 '아들 덕분에 바뀐 인생'의 큰 빈자리를 채우려 악착같이 노력했고, 마침내 비슷한 처지에 놓인 다른 부모와 아이들에게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는 힘을 얻게 됐다.

"당연히 20년 전에는 꿈에도 생각 못 했죠. 내가 장애를 가진 아이의 엄마가 되리라는 것도, 발달장애를 공부하리라는 것도. 그런데 예전부터 저를 알던 친구들은 그래요. '너는 쇼맨십이 있어서 비슷한 일을 하고 있을 줄 알았다'고. '잘 어울린다'고."

이승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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