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라루스 여성 시위대의 중심에 선 70대 지질학자

입력
2020.09.20 15:00
수정
2020.09.20 18:35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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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소련 시절부터 '행동하는 지식인'의 표상

19일 벨라루스 민스크에서 2,000여명의 여성 시위대가 대규모 행진을 벌인 가운데 73세 전직 지질학자 니나 바힌스카야가 경찰들에 의해 체포되고 있다. 민스크=AP 연합뉴스

19일 벨라루스 민스크에서 2,000여명의 여성 시위대가 대규모 행진을 벌인 가운데 73세 전직 지질학자 니나 바힌스카야가 경찰들에 의해 체포되고 있다. 민스크=AP 연합뉴스

대선 결과에 불복하는 반정부 시위가 한 달 넘게 계속되고 있는 벨라루스에서 백발이 성성한 70대 여성 지질학자가 주목받고 있다. '유럽 최후의 독재자' 알렉산드로 루카셴코 대통령에 맞선 그의 거침없는 언행은 어느 순간 '시위대의 아이콘'이 됐다.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에서는 19일(현지시간) 2,000여명의 여성 참가들이 루카셴코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행진을 벌이다 전직 지질학자인 니나 바힌스카야(73)를 포함한 300여명이 체포됐다고 영국 BBC방송이 전했다. 바힌스카야는 당시 흰색과 붉은색 가로줄이 선명한 옛 벨라루스 국기를 들고 무장한 경찰에 맞서 시위대를 이끌고 있었다.

바힌스카야는 이날 경찰서로 연행되던 중에 풀려났다. 경찰이 너무 많은 여성들을 체포함에 따라 이송 차량이 꽉 차서 일부를 석방해야 했다고 AFP통신은 보도했다. 현지 매체들은 그러나 그가 체포된 데 격분한 국민들이 20일에 있을 일요시위에 대거 몰리면서 지금까지의 하루 최대 시위대 규모 2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내다봤다.

바힌스카야에 대한 관심은 유럽의 한 온라인채널을 통해 그가 시위대에서 활약하는 동영상이 퍼지면서 급속히 확산됐다. 바힌스카야는 영상에서 옛 벨라루스 국기를 빼앗으려는 경찰에게 "뭐하는 거냐"고 소리쳤고, 시위 군중 속에서 "루카셴코는 사이코패스"라고 직격탄을 날리며 주변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또 경찰이 불법시위를 이유로 체포하려 하자 "지금 산책 중"이라고 쏘아붙이기도 했다.

지난달 벨라루스 민스크에서 니나 바힌스카야가 대선 결과에 불복한 시위대를 대표해 옛 국기를 들고 서 있다. 민스크=AP 연합뉴스

지난달 벨라루스 민스크에서 니나 바힌스카야가 대선 결과에 불복한 시위대를 대표해 옛 국기를 들고 서 있다. 민스크=AP 연합뉴스

바힌스카야가 시위 현장에 나선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유럽 언론들에 따르면 그는 1988년 정치범 체포를 반대하는 시위를 시작으로 옛 소련 시대에는 대량학살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지 철거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는 등 지난 30여년간 사회 정의와 정치적 올바름을 위해 기꺼이 앞장서는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다.

벨라루스의 반정부 시위에선 바힌스카야 외에도 유독 여성 운동가들의 활약이 돋보인다. 제도 정치권에선 '잔다르크 3인방'이란 애칭이 붙은 스베틀라나 티하놉스카야, 베로니카 체프칼로, 마리아 콜레스니코바가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야권이 만든 조정위원회 간부 중 유일하게 체포되지 않은 채 시위를 이끌고 있다.

강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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