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연출, 중동 3국 주연의 아브라함 협정

입력
2020.09.20 10:00
25면
아브라함 협정 서명식에 앞서 참석자들(왼쪽부터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압둘라티브 빈 라시드 알자야니 바레인 외무장관, 셰이크 압둘라 빈 자예드 알나흐얀 UAE 외무장관)이 인사하고 있다. AP 뉴시스

아브라함 협정 서명식에 앞서 참석자들(왼쪽부터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압둘라티브 빈 라시드 알자야니 바레인 외무장관, 셰이크 압둘라 빈 자예드 알나흐얀 UAE 외무장관)이 인사하고 있다. AP 뉴시스


지난 칼럼(7월 20일자 25면)에서 아랍에미리트(UAE)와 이스라엘이 사이좋은 협력관계가 될지 눈여겨봐야 한다고 했다. 시간이 제법 걸릴 줄 알았는데 양국은 예상보다 빨리 관계정상화에 합의했다. 여기에 바레인까지 평화협정에 합의하면서 9월 15일 백악관에서 UAE, 바레인, 이스라엘 간의 역사적인 '아브라함 협정' 서명식이 개최되었다.

다음 타자는 과연 누구일까? 모로코, 수단, 오만 등이 거론되고 있다. 걸프 지역의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의 행보는 초미의 관심사이다. 섬나라 바레인은 이웃 나라인 사우디아라비아와 해상 교량인 킹 파흐드 코즈웨이를 통해 연결되어 있다. 2011년 바레인의 진주광장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발생하자 사우디아라비아는 해상 대교를 통해 군대를 파병했고, 덕분에 바레인 왕가는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이런 바레인 정부가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사전 교감 없이 평화협정에 나섰을 리 만무하다. 다만 살만 국왕과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평화협정을 놓고 입장을 달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만큼 좀 더 지켜봐야 될 것 같다.


이스라엘 텔아비브 시청 건물. AP 뉴시스

이스라엘 텔아비브 시청 건물. AP 뉴시스


예상보다 속도를 내고 있는 평화협정을 어떻게 이해해야 될까? 트럼프 대통령은 중동 평화와 안정을 위한 외교의 큰 성과라며 11월 대선을 앞두고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 역시 UAE와 이스라엘 평화협정이 체결되자 중동 평화를 위한 중요한 전진이라고 강조했다. 아브라함 협정 체결을 기념해 이스라엘 텔아비브 시청 건물에 아랍어, 영어, 히브리어로 평화라는 단어가 밝혀졌다. 2021년 노벨평화상에 재도전하는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평화협정의 연이은 중재를 통해 수상 가능성에 한 걸음 더 다가가고 싶어 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워싱턴에서 전해 오는 중동 평화를 향한 당찬 외침 속에서 팔레스타인의 정치적 고립은 점점 심해져 간다. 분노한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인들은 트럼프 대통령, UAE의 무함마드 빈 자이드 왕세제, 바레인의 하마드 빈 이사 국왕,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사진을 불사르는 퍼포먼스를 연출했다. 팔레스타인의 어느 정치인은 코로나19에 빗대어 평화협정의 바이러스가 더 이상 퍼지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분노한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들. 연합뉴스

분노한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들. 연합뉴스


눈길을 사로잡는 논평이 있었다.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의 사엡 에레카트 사무총장은 이번 평화협정이 평화와는 별 상관이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히려 지역 내 군사 동맹 형성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워싱턴에서는 중동 평화와 안정을 위한 성공이라고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다른 쪽에서는 중동 평화의 안착을 위한 것과는 거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중동의 평화와 안정이 아니라 동맹이라는 말의 의미를 나름대로 곱씹어 보려고 한다. 우선 이란의 위협을 막기 위해 동맹국들을 결집하고 있다는 시각이 주류이다. UAE와 이스라엘은 이란에 대한 공동대응의 차원에서 협력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다. 이란 위협에 대한 공동 대응을 위해 구성된 미국, UAE, 이스라엘 3자 회동이 작년에만 3차례 이상 개최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2019년 12월에는 로버트 오브라이언 미국 국가안보보좌관, 메이어 벤 샤밧 이스라엘 국가안보보좌관, 유세프 알 오타이바 주미 UAE 대사가 이란에 대한 공동 대응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백악관에서 만났다. 이란 과의 갈등이 커지면서 이스라엘과 새로 손을 잡는 아랍 국가들이 생기고 있다는 얘기이다.

여기에 미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관계정상화의 흐름 속에는 다른 속내가 있다는 관측도 있다. 그것은 바로 중국에 대한 견제이다. 코로나19 이후 미중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남중국해에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미중 갈등은 중동 지역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부 중동 국가들은 미중 틈바구니에서 어떠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 최선일지 저울질하기 시작했다. 미국이 중동 지역에서 중국에 대한 대응을 염두에 두고 평화협정을 통해 동맹국의 결속을 다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이다. 어쩌면 워싱턴의 정책결정자들이 중동 평화의 진전과 동맹의 형성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다 달성하려 시도하는 것일지 모르겠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중동 정세를 감안해 볼 때 정말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 한다면 좀 욕심이 과하지 않나 싶다.

김강석 단국대 GCC국가연구소 전임연구원
대체텍스트
김강석한국외대 아랍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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