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학교 못 간 초등생 형제, 밥 먹으려다 화재로 화상 입어

입력
2020.09.16 17:07
수정
2020.09.16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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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민센터에 형제 돕고 싶다 문의 잇따라

지난 14일 오전 인천 미추홀구 용현동 한 다세대주택에서 부모가 집을 비운 상황에서 초등학생 형제가 라면을 끓이려다가 불을 내 온몸에 화상을 입는 등 크게 다쳤다. 사진은 화재 현장 모습. 인천 미추홀소방서 제공

지난 14일 오전 인천 미추홀구 용현동 한 다세대주택에서 부모가 집을 비운 상황에서 초등학생 형제가 라면을 끓이려다가 불을 내 온몸에 화상을 입는 등 크게 다쳤다. 사진은 화재 현장 모습. 인천 미추홀소방서 제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학교에 못 간 초등학생 형제가 부모가 집을 비운 사이 주방에서 일어난 불로 온몸에 화상을 입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이 형제의 거주지 동 주민센터에는 "돕고 싶다"는 문의가 쇄도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16일 소방당국에 따르면 지난 14일 오전 11시 10분쯤 인천 미추홀구 용현3동 한 4층짜리 빌라 2층에서 불이 나 집에 있던 A(10)군과 동생 B(8)군이 온 몸에 화상을 입고 서울 한강성심병원으로 옮겨졌다.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으나 위중한 상태인 A군 형제는 밥을 먹기 위해 가스렌지를 사용하다가 불을 낸 것으로 추정됐다. 이들은 불이 나자 119에 전화를 걸어 "살려주세요"라고 다급하게 외쳤다. 소방당국은 휴대폰 위치 추적을 통해 불이 난 빌라를 확인하고 진화 작업을 벌여 10분만에 불길을 잡았다.

A군 형제는 원래대로라면 학교에서 급식을 기다렸을 시간이었으나 이날 코로나19 사태로 원격(비대면) 수업을 진행해 집에서 끼니를 해결하려다 변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 어머니와 함께 사는 A군 형제는 기초생활 수급 가정으로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추홀구는 인천도시공사와 함께 숭의동 공공임대주택에 임시 주거지를 마련하는 한편 A군 형제의 어머니에게 긴급 의료비를 지원하고 병원 인근 숙박시설에 머물 수 있도록 돕기로 했다. 병원 측도 A군 형제 치료비를 일부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구 관계자는 "A군 형제를 돕기 위해 여러 곳에서 나서고 있다"며 "용현3동 주민센터에도 '형제를 돕고 싶다', '성금을 내겠다'는 전화가 잇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인천시교육청도 사고현장원스톱지원팀을 통해 A군 형제에 대한 지원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도성훈 인천시교육감은 "모든 행정력을 동원해 지원 대책을 마련 중"이라며 "학교와 학생간 소통 채널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은 없는지 돌아보겠다"고 말했다.

이번 사고를 두고 돌봄 사각지대에 있는 아이들을 위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허종식(인천 동구미추홀구갑) 의원은 "코로나19로 비대면 원격 수업이 진행된 지 수개월이 지났지만 우리 사회는 가정에 홀로 남겨진 위기 학생들을 챙기지 못했다"며 "이번 사고를 계기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코로나19 시대 돌봄 사각지대에 있는 아이들을 위한 대책을 하루 빨리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은 정확한 화재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화재 감식 결과 주방 가스렌지 쪽에서 불이 난 것으로 확인됐다"며 "자세한 것은 조사가 진행 중이라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이환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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