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옷이 말보다 강하다, 메건 마클처럼

입력
2020.09.16 22:00
수정
2020.09.18 14:34
27면
지난해 6월 런던 버킹엄궁에서 촬영된 엘리자베스 2세(오른쪽부터) 영국 여왕과 해리 왕자, 메건 마클 왕자비. 런던=AP 연합뉴스

지난해 6월 런던 버킹엄궁에서 촬영된 엘리자베스 2세(오른쪽부터) 영국 여왕과 해리 왕자, 메건 마클 왕자비. 런던=AP 연합뉴스


한국은 며느리를 출가외인(出嫁外人, 시집간 딸은 가족이 아니다), 서양은 며느리를 Daughter in Law(아들과 결혼하여 법으로 맺어진 딸)라고 한다. 뉘앙스의 차이는 있지만, 동서양 모두 남과 가족이 되는 데는 책임이 따르고 서로 지켜야 할 선을 넘지 않는 예의도 필요하단 뜻이 담겨 있다. 여기 그 넘지 말아야 할 선, 특히 옷차림(전통과 예의)의 선을 넘어 미운털이 콕 박힌 영국의 왕자비 메건 마클이 있다. 21세기에는 옷차림도 자본인데 그녀가 선택한 패션 시그널은 참 안타까웠다. 캐서린 하킴 런던 정경대 교수는 아름다운 외모부터 패션 스타일링까지 사람을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하는 모든 것이 일상을 지배하는 조용한 권력인 ‘매력 자본’이라고 했다.

메건 마클의 매력 자본이 잘못된 패션 시그널로 입방아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것은 결혼식 때부터였다. 그녀는 들러리로 자신의 절친한 친구인 캐나다인 스타일리스트인 제시카 멀로니를 세웠는데 그녀가 결혼식 당시 입었던 들러리 드레스를 '영국 왕실 결혼'을 내세워 팔면서, 영국인들은 자신들이 낸 세금이 외국인들의 돈벌이로 전락하게 됐다고 수군거렸다.

이후 메건 마클은 모든 스타일링을 스스로 하며 또 한 번 입방아에 오르내렸다(영국과 왕실의 적응을 돕게 배정된 비서들이 줄줄이 궁을 떠났고, 제시카 멀로니를 비공식 스타일리스트로 쓴다는 말도 나돌았다). 메건 마클은 공식적인 왕실 행사나 활동에서 원색보다 베이지색이나 네이비색의 옷을 입으며 왕가의 패션 코드를 어겼다. 테러의 표적이 될 수 있음에도 영국 왕실은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대부분 원색 옷을 입는다. 이는 대중들이 멀리서도 로열패밀리를 잘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왕실의 배려라고 한다. 미국인은 자유로워서 그런 것일까 싶지만 같은 미국 배우인 앤젤리나 졸리는 영국의 여왕에게 작위를 받게 되었을 때 영국 왕실의 패션 코드에 따라 원색을 입는 95세의 여왕이 자신보다 더 돋보일 수 있도록 무채색으로 패션 스타일링을 했다. 앤젤리나 졸리도 그런데 영국의 왕자비가 영국인의 세금이 들어가는 공식 활동에 그녀의 취향을 과하게(?) 반영한 것은 눈총을 받기에 충분했다.


마운트배튼 뮤직 페스티벌에 참석한 해리 왕자 부부. AP 뉴시스

마운트배튼 뮤직 페스티벌에 참석한 해리 왕자 부부. AP 뉴시스


그녀가 남편인 해리 왕자와 함께 자유인의 삶을 살겠다고 선언하자 대중은 공분했고 왕실은 지원을 끊기로 했다. 그런데 메건 마클이 마지막으로 보여준 모습은 왕자비의 정석이라고 할 만큼 원색의 우아한 모습을 선보였고 대중들은 환호했다. 그녀의 이런 행보는 앞으로 킴 카다시안이나 올리비아 팔레르모처럼 재능보다 패션을 통해 ‘유명한 것으로 유명한 셀러브리티의 삶’을 살기 위한 빅 피처였을 수도 있고, 왕가의 일원으로 마지막 예의를 다하고자 한 패션 시그널이었을 수도 있다(독립한 지 채 몇 달도 되지 않아서 해리 왕자가 아빠 찬스로 부족한 자금을 충당해 다시 구설에 올랐다).

출가외인도 Daughter in Law도 가족 사이의 예의는 지켜야 한다. 외부로 드러나는 옷차림은 더 그렇다. 가끔은 말로 화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메건 마클이 영국을 떠나며 보여 줬던 그 훌륭했던 패션 시그널을 다시 활용하여 자신의 매력 자본도 챙기고, 영국 왕실과 영국인들과의 관계도 개선할 수 있기를 바란다. 때때로 옷은 그 어떤 말보다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니 말이다.



박소현 패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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