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아도 아는 말

입력
2020.09.16 04:30

오리온 초코파이 광고 캡처


한국말 ‘정(情)’은 번역하기 힘든 말 중 하나이다. 정이란 사랑이나 친근감을 느끼는 마음이다. 비슷한 말로 마음, 우애, 우정, 친분, 사이 등이 있다고 하나, 사실 ‘정(情)’은 그런 의미를 다 담은 종합 선물 세트이다. 정은 그저 친한 게 아니라 ‘오랫동안 지내오면서 생기는 마음’에 가깝다. 한 과자 회사는 그 속뜻을 잘 살려 홍보에 크게 성공하였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라며 한국인들의 동의를 얻어낸 것이다. 이 과자가 외국에서도 정의 이미지로 소개되는 것은 아니다. 러시아에서는 멋진 사람으로, 중국에서는 좋은 친구로 그려졌고,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좋은 재료로 된 건강한 음식으로 소개되었다.

흥미롭게도 이 말에 대한 반대말이 없다. 오히려 ‘사람은 헌 사람이 좋고 옷은 새 옷이 좋다’라는 말처럼, 오래 사귈수록 정이 두터워진다는 말만 허다하다. 정답다, 정겹다, 정들다, 정을 주고받다 등이다. 일단 ‘정’이 형성되면 상대방의 단점을 봐도 감싼다. 정이 없다면 ‘정 붙이기’나 ‘정 두기’도 하면서 정 때문에 웃고 운다고 한다. 정에 주리거나 목마르다는 것도 정을 아는 사람에게나 가능하다. 역설적이게도 ‘정떨어지다’ ‘정을 떼다’라는 투정 같은 말 속에 그간 담뿍 들었던 옛정이 투영된다. 그래서 ‘미운 정’도 모순이 아니다.

현대인에게 정이란 예전과 다르다고들 한다. 같은 과자인데도 지금은 “말하지 않으면, 모르죠!”로 광고가 바뀌었다. 재치 있는 변신이다. 그러나 이는 표현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일 뿐, 정 자체를 설명하는 표현은 아니다. 정은 여전히 말로 설명이 안 된다.

이미향 영남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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