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적 우월감'부터 내려놓으라

입력
2020.09.14 18:00
수정
2020.09.14 18:45
26면


추미애 아들 의혹 문재인 정부 공정성 의문
‘조국 흑서’ ‘조국 백서’로 여전히 쪼개진 사회
갈등과 분열 치유, 임기 마지막 과제 삼기를

문재인 대통령이 14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배경막에 '나라답게 정의롭게'라는 글씨가 씌여져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14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배경막에 '나라답게 정의롭게'라는 글씨가 씌여져 있다.


4ㆍ15 총선 후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70%로 치솟자 ‘레임덕 없는 최초의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코로나 사태가 계속되는 한 ‘K방역’ 효과로 인한 지지율이 쉽게 떨어지지 않을 테고, 설혹 지지율이 떨어져도 ‘존재감 없는’ 야당으로 옮겨가는 일은 없을 거라는 게 근거였다. 청와대와 여당도 내심 임기 말 '노 레임덕'을 기대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관측은 오류로 판명됐다. 근거부터 허물어졌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K방역을 입에 올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새 부동산 정책 실패와 ‘입법 독주’ 등 정권의 무능과 오만이 불쏘시개가 됐다. 여당의 떨어진 지지율이 ‘김종인 효과’로 야당으로 흡수된 것도 예상치 못한 현상이다.

하지만 이런 분석은 결과를 놓고 원인을 찾는다는 점에서 절반만 맞다. 애초 5년 단임제에서 임기 후반기에 접어드는 대통령의 지지율 고공 행진은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것을 간과한 때문이다. 역대 누구도 피하지 못한 단임제 대통령의 운명을 문 대통령만 거스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착각이다.

최근 대통령의 말에 힘이 실리지 않는 장면이 자주 노출되는 것도 그런 이유다. 의료계 파업이 한 예다. 집단 휴진이 시작되자 문 대통령은 “법 집행을 통해 강력하게 대처하라”고 지시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사실상 백기 투항한 격이 됐다.

집권 4년 차는 현 대통령보다 차기 지도자에 더 관심이 쏠리는 시기다. 언론에 문 대통령의 동정 기사가 점점 작아지는 반면, 차기 유력 대선 주자인 이낙연 민주당 대표와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발언이 크게 취급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의사 파업 합의문 서명식 때 이 대표가 마이크를 잡은 장면은 상징적이다.

문 대통령은 조만간 사실상 임기 5년 차를 맞는다. 동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새로운 정책을 펴기보다는 어떻게 마무리할지를 고민하는 게 현명하다. 문재인 정부의 공과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견해가 다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이 이토록 심각한 지경에 이른 적은 없었다는 점이다. 문 대통령이 이런 일그러진 모습을 바란 건 아니겠으나 ‘편가르기’로 국민을 분열시켰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조국 사태를 정반대의 시각에서 바라본 이른바 ‘조국 백서’와 ‘조국 흑서’가 같은 시기에 출간돼 나란히 베스트셀러에 오른 사실이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문 대통령은 남은 기간 공동체 복원에 온 힘을 쏟아야 한다. 진영 간 대립 해소를 위해 가장 우선해야 할 것은 ‘도덕적 우월감’을 내려놓는 것이다. 내 편과 네 편을 가르는 바탕에는 우리는 옳고 깨끗한데, 저쪽은 부도덕하고 잘못됐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조국과 박원순 사건에 이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 특혜 의혹에서 보듯 문재인 정부의 주축인 586 정치 엘리트들은 이미 강고한 기득권 세력으로 자리잡았다. 정의기억연대 전 이사장인 윤미향 의원의 회계 부정 의혹도 14일 발표된 검찰 수사 결과, 대부분 사실로 드러났다. 국민들이 보기에는 진보 정권이나 보수 정권이나 별반 다를 바 없는 것이다.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잘 아는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시(한국명 이만열) 경희대 교수는 저서에서 “한국의 정치인들은 군자인 척하지만 뒤로는 최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고 힘 있는 자들을 만나고 다닌다. 학부모들에게 교육 개혁이 필요하다고 열을 올리지만 몇 시간 뒤엔 엘리트 집단을 만나 부동산 투기와 자녀 해외 유학 문제를 이야기한다”고 비판했다.

‘촛불혁명’으로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특권과 불공정, 불평등을 혁파할 소명을 위임받았다. 문 대통령은 자신이 부여받은 책임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이충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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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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