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비 지원 정책이 정당성을 갖추려면

입력
2020.09.14 22:00
27면
서울시내의 한 통신사 매장 앞. 뉴스1

서울시내의 한 통신사 매장 앞. 뉴스1


전 국민에게 통신비 2만원을 나눠주겠다고 한다. 국민들은 “내가 원했던 것은 이게 아닌데” 라며 께름칙한 반응이다. 10명 중 6명이 잘못한 일이라 말한다. ‘안 받는 것보다는 낫지 않나’ 정부 스스로 겸연쩍어한다. 야당 정치인들은 9,000억원 예산을 절대 통과시킬 수 없다며 반대하고 나섰다.

끝날 줄 모르는 코로나19 상황은 정책 환경의 불확실성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 때문인지 효과성이 의문스럽고 이해관계자의 반발이 심한데도 불구하고 당장 무리하게 집행될 것처럼 느껴지는 정책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해관계자는 물론이고 국민마저 정책에 대한 의구심을 품게 하는 조급한 정책 결정은 정책의 정당성(正當性, legitimacy) 결여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대표적 행정학자 김영평 교수는 "모든 정책은 불확실성의 동굴 속에서 만들어진다"고 주장한다. 정책은 본질적으로 비효과적, 비효율적일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정책을 결정할 때는 효과성, 효율성과 동시에 정당성도 추구해야 한다. 정책의 정당성이란 국민들이 정부가 내리는 결정이 타당하고 적절하다는 확신을 갖는 것을 말한다. 정당성이 있는 정책이라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정부가 원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정책의 정당성은 어디서 오는가? 내용적 정당성과 절차적 정당성으로 나눠 생각해볼 수 있다. 정책의 내용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정책의 내용이 이해관계자나 국민 다수의 일반적 정서나 공통된 의견과 일치해야 한다. 비록 개인의 이념과는 다르더라도 정부의 정책이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를 정확히 겨냥하고 있을 때, 그리고 그것이 실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때 국민들은 그 정책에 동의할 수 있다.

절차적 정당성을 위해서는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 이해관계자가 참여해야 한다. 아이디어가 정책의 내용과 수단으로 구체화되는 과정에서 공무원과 전문가들이 의견을 조율하고, 나아가 국민들이 그 정책의 필요성에 공감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정책문제와 그 해법에 대해 국민의 눈높이에서 국민과 대화하며 공감과 지지를 이끌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

국제개발협력 사업으로 아프리카 르완다 교사들의 교육 역량 강화 프로그램을 하는 동료가 전해준 소식이 떠오른다. 코로나19 때문에 올여름에 계획한 교사 교육을 온라인으로 하게 되었다. 가장 큰 문제는 통신비가 부족한 르완다 교사들을 교육에 참여시키는 일이었다. 이들을 위해서 데이터 바우처를 지급하였다. 통신비 보조를 받은 교사들이 크게 만족해하며 끝까지 온라인 수업을 들었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작은 기술 하나씩을 배웠다.

1년 내내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고 있는 중·고등 학생, 대학생, 고생하는 교사들에게 통신비를 지원해준다면? 내년 역시 대면수업이 불투명한데 이 기회에 비대면교육 관련 인프라를 확충한다면? 끝이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으로 전시재정을 논하는 어려운 상황임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1조원 가까운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는 일이다. 꼭 필요한 곳에,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곳에 써야 한다. 급하더라도 국민의 의견을 반영한다면 금상첨화이겠다. 지금이라도 통신비 지원 정책의 내용적 정당성을 다시 한번 생각하기 바란다. 국민의 시각에서 정책을 수정하는 것이 절차적 정당성도 높이는 길이다.



김은주 한국행정연구원 부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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