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타항공, 참사 발생에도 보잉 737맥스 2년 전 선제 도입..."이상한 계약"

입력
2020.09.1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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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운항중단 사태로 수백억원 손실
항공업계 “안전성ㆍ리스크 관리 부실
이상직 일가 경영 판단 잘못" 평가?
이스타항공 "신차 구입과 다를 것 없다"

이스타항공이 국내 최초로 도입한 '보잉737맥스8'이 2018년 12월 18일 미국 시애틀 보잉 딜리버리 센터에 주기돼 있다. 이스타항공 제공

이스타항공이 국내 최초로 도입한 '보잉737맥스8'이 2018년 12월 18일 미국 시애틀 보잉 딜리버리 센터에 주기돼 있다. 이스타항공 제공

파산 위기에 처한 이스타항공이 2년 전 안전성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채 신기종 ’보잉 737맥스8’를 서둘러 도입해 경영난을 자초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보잉737맥스8은 2018년 인도네시아에서 탑승자 전원 사망 사고를 낸 기종으로, 이스타항공도 도입 3개월 만에 운항 중단 조치를 당했다. 항공업계에선 이상직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포함한 경영진의 섣부른 판단이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이스타항공은 2018년 5월 항공기 리스사(미공개)와 보잉737맥스8 도입에 대한 최종 계약ㆍ투자 참여 의향서(LOI)를 체결하고, 같은 해 12월과 이듬해 1월 총 2대를 인수했다.

보잉737맥스8는 2017년 항공사들에 인도되기 시작한 미국 보잉사의 최신 기종이다. 좌석 수는 기존 기종(B737-800)과 동일한 189석이지만, 항속거리가 1,000㎞ 더 길고 연료 효율이 14%가량 향상됐다. 국내 항공사 중 처음 이 기종을 도입한 이스타 측은 당시 중ㆍ장거리 국제 노선을 선점하겠다며 4대를 추가로 들여올 계획까지 수립했다.

업계에선 이례적인 결정이란 평가가 나왔다. 안정적인 운항을 우선 확인하고 운용 수익률은 차후에 확보하는 게 기본인데, 당시 737맥스8은 안정성에 대한 검증조차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 2018년 10월 인도네시아 항공사 라이언에어가 737맥스8을 운행하다가 이륙 13분만에 바다로 추락해 탑승자 189명 전원이 사망했다. 저비용항공사(LCC)업계 1위인 제주항공은 737맥스8를 최대 50대 도입하는 구매 계약을 같은 해 체결했지만, 인도 시점을 2022년으로 늦췄다. 그러나 이스타항공은 계획대로 도입을 추진했다.

한 대형항공사 관계자는 “큰 사고 발생에도 별다른 안전 검증 과정 없이 신기종을 도입한 결정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737맥스8은 결국 2019년 3월 에티오피아에서 또 추락하며 전 세계 운항 중단 사태로 이어졌다. 국토교통부는 같은 달 특별 점검을 거쳐 이스타항공이 보유한 해당 기종 2대에 대해 운항중단 조치를 했다.

여객기가 많지 않은 LCC 특성상 2대 운휴에 따른 손실은 만만치 않다. 여객기 리스비(대당 매달 5억원 이상), 인천국제공항 주기료(24시간에 30여만원), 정기점검비 등 고정비가 들어가고, 항공기 1대가 하루에 평균 13시간 가동하는 상황까지 감안하면 매년 수백억원을 고스란히 손실로 떠안는 셈이다. 공교롭게도 이스타항공은 2018년 당기순이익 39억원을 기록한 후 2019년 793억원의 영업손실을 보며 완전자본잠식에 들어갔다.

업계는 이스타항공 실소유주인 이상직 의원 일가와 그 측근들의 경영 판단이 잘못된 결과라고 보고 있다. 이스타항공 조종사노조 주장처럼 이 의원이 20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이스타항공에 복귀해 측근들과 함께 경영에 깊숙이 관여하며 신규 항공기 도입을 비롯한 중요한 의사결정을 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39억원 수익을 본 업체가 수백억원의 손실을 볼 수 있는 결정을 했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계약”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최근 항공업계에서 일고 있는 리베이트와 관련된 것 아니냐는 의혹마저 나온다. 항공기 도입에 경영진이 개입하며 리스사 등으로부터 리베이트를 받는다는 것이다. 올해 3월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소속된 3자연합은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2009년부터 에어버스 항공기 구매에 직접 참여해 거액의 리베이트를 수수했다”며 항공업 리베이트의 존재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스타항공 측은 도입 과정이 문제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스타항공 고위 관계자는 "같은 논리라면 신차도 검증이 안됐으니 구입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니냐"며 "도입 결정은 이 의원과 상관 없이 실무진에서 이뤄졌다”고 말했다. 리베이트 수수에 대해서도 "항공기를 구입할 때의 관행이고, 리스할 땐 리베이트가 없다”고 반박했다.

박관규 기자
류종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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