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 자정 불가능하다… 새 우물 파는 수밖에”

입력
2020.09.10 20:00
[김희원의 질문] 개신교 회복 주창하는 신학자 배덕만

전광훈 목사와 사랑제일교회의 적극적 방역 방해와 종교 탄압 주장에 시민들이 고개를 흔들며 절망할 때, 교계에선 작지만 소중한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개신교 개혁을 고민하는 10여개 단체들이 결성한 ‘개신교 회복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가 성명서를 내 “방조하고 묵인한 한국 교회의 책임”을 반성했다. 극우 개신교 세력의 반사회적 일탈을 막지 못한 한국 교회는 무엇이 문제이며 어떻게 기독교 본연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까. 비대위 일원인 기독연구원 느헤미야의 배덕만 교수를 만났다.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배덕만 교수가 8일 서울 신촌로 느헤미야 강의실에서 김희원 한국일보 논설위원을 만나 전광훈 목사를 탄생시킨 개신교의 구조적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전 목사 개인 야심과 보수 위기에 편승해 부상

-개신교의 문제를 살피기 앞서 전광훈 목사 사례 분석이 도움이 될 듯하다.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사랑제일교회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장위동 뉴타운 개발이 시작된 3년 전부터 확 달라졌다. 전 목사의 반정부 운동이 주목받으며 전국에서 교인들이 몰렸다. 철거 보상금 560억원을 요구(정부 보상액은 82억원)하며 버티는데 교인들은 밤새 지킨다. 교회는 이권사업이 되고, 정치가 신앙이 된 꼴이다. 몇몇 대형 교회들의 성장과 같은 과정 아닌가.

“전광훈류 목회자들이 전형적으로 해온 사역의 행태라고 할 수 있다. 전 목사는 전부터 매우 정치적인 목사였다. 이미 20년 전 기독당을 통해 기독교 정치판에 행동대원으로 들어갔고 지금 보스가 된 케이스다. 청교도영성수련원이라는 개인 단체를 만들어 전국적으로 부흥회 활동을 했다. 말이 시원하고 웃기니 사람들이 좋아했다. 전국 곳곳의 큰 교회를 다 돌았고, 인간관계를 형성했다. 그러면서 기독당 실무 담당을 하게 됐고 거물 목사들과 긴밀하게 이어졌다. 이게 전 목사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다. 우익 성향을 갖고 정부에 압력을 넣을 만한 목사들 자리에 불려다녔고, 정치적 꿈과 안목이 생겼고, 황교안 전 국민의힘 대표 같은 정치인과 관계가 깊어진 것이다. 또 전 목사가 재주 있는 부흥강사였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부흥이란 결국 성령체험을 도구로 헌금 많이 걷고 사람을 늘리는 것이다. 즉 그의 내면에 자본주의 체제에서 성공하려는 욕망을 볼 수 있다. 제가 조사해 보니 전 목사가 청교도영성수련원으로 카드회사, 장례회사, 화원 등 온갖 비즈니스를 다 했다.

그 때만 해도 ‘똘끼’ 있는 목사 정도였는데 뉴타운 개발과 대통령 탄핵,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의 몰락이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졌다. 예전의 한기총 같으면 특A급 목사만 대표회장을 할 수 있었지만 금품살포 등 선거 과열로 한기총 해체운동이 벌어지고 큰 교회가 빠져 나가 개점휴업 상태가 되면서 2019년 1월 전 목사가 무혈입성할 수 있었다. 여기부터 전 목사가 발휘한 능력은 실로 높이 평가할 만하다. 국민의힘(당시 자유한국당)도 완전히 찌그러져 있던 그 때 전 목사가 승부수를 던진 게 광화문에서 문재인 하야 집회였다. 아직 보수 교단 대표 상징성이 남아있던 한기총의 이름을 걸고 전광훈이 대통령과 싸운 것이다. 박근혜 몰락 이후 고사 상태였던 보수 세력에게 광장에서 다윗처럼 정부에 대항하는 모습이 응어리진 한을 풀어준 거다. 노년층을 중심으로 전국에서 광화문으로 모여들었고 전광훈 살리기 운동에 힘을 보태면서 사랑제일교회가 전국구 교회가 됐다. 신도가 늘고 그 뒤에 대형교회가 받쳐주고, 김문수 김무성씨 등 정치인들이 찾아오니 함부로 철거도 못하게 됐다. 전 목사는 교회도 지키고 명성도 얻었다. 이 사태에서 수익을 본 유일한 사람이다. 돈도 엄청 들어왔을 가능성이 있다. 광화문 집회에서도 헌금을 걷지 않았나. 부인 명의 16억짜리 아파트도 있다. 교회를 옮겨야 하는 개인적 위기, 한기총의 위기, 보수의 위기에서 나름 승부수를 던진 것이 기가 막히게 시대와 조우하며 스타가 탄생했다.”

보수단체들이 15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 주최한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경찰 저지선을 뚫고 청와대를 향해 나아가려 하고 있다. 전광훈 목사 추종자들이 몰린 이 집회는 코로나19 재확산의 기폭제가 됐음에도 방역을 방해하고 종교 탄압을 주장해 개신교 전반에 대한 비판이 고조됐다. 뉴시스

-전 목사는 코로나19 이전부터 이단, 금권선거, 막말 등 논란이 많았다. 그런데 교계에선 왜 자정이 안 되었나.

“교계의 자정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교회사에서 자정이 성공한 적이 없다. 전광훈을 배출하고 유지시킨 세력은 자기 반성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제2, 제3의 전광훈을 찾을 것이다. 조금 더 세련되고 덜 천박한 사람으로. 문제제기를 하면 종북 좌파고 교회를 무너뜨리는 악마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유명 교회에서 집회를 열고 그들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다. 이것이 한국 개신교의 문제다.

답답하고 속상한 것은 그러면서 한국 교회가 타이태닉호처럼 침몰하는 것이다. 루터도 가톨릭을 바꾸지는 못했다. 그 후 가톨릭은 신학적으로 철옹성이 됐고 내부자를 단속하고 말 안 들으면 이단으로 몰았다. 이런 식으로 하면 역사의 심판을 받는다. 조선 사회가 500년 동안 유교를 받들었지만 나라가 망해갈 때 유학자들이 힘을 못 쓰자 민중들이 기독교로 갈아탔다. 지금 누가 유학을 공부하나. 1919년까진 동학이 개신교보다 10배 교세가 컸지만 역시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니 동학도가 남아있나. 개신교도 곧 가입할 사람이 없게 된다. 그나마 대형 교회는 오래 버티겠지만 교회의 10%도 안 된다. 그들에 동조하는 대다수 작은 교회들은 한 세대를 못 버틸 것이다.”

우익과 손잡고 성장한 개신교, 과거 머물러

-어쩌다 그렇게까지 됐나. 개신교의 문제가 무엇인가.

“한국 교회가 길게는 130년 동안, 정확하게는 광복 이후부터 남한에서 국가를 세우는 과정의 핵심에 있었다. 상당수 북한에서 내려오신 분들이 중심이 돼 1~5공화국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 그러면서 개신교가 양적·질적으로 급성장했다. 광복 직후 5% 미만이었던 교인이 30년 만에 20~25%가 되고, 오피니언 리더 즉 정부 관료, 변호사, 의사, 언론인, 기업인의 교인 비율은 훨씬 높고, 대통령 선출에 절대적 영향을 미쳤다. 문제는 80년대 이후 한국 사회가 빠르게 민주화, 다원화됐는데 개신교는 여전히 반공을 붙잡고 있다는 점이다. 또 다양한 가치를 수용해 타자들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시대가 됐는데도 이주민, 미투 운동, 차별금지법 등을 용납 못 하는 사상적·문화적 수구주의자로 남았다. 한국 사회는 굉장히 빠르게 변화하는데 한국 교회는 19세기, 1945년 이전에 머물러 사회와 이질감을 만들고 있다.

이에 더해 교회의 성장이 정점에 오른 2000년대 들어 수많은 일탈 현상이 드러났다. 상징적인 게 교회 세습이다. 기업도 세습을 꺼리는 시대에 교회를 아들, 사위에게 넘기는 일들이 대형 교회 중심으로 터졌다. 사실 세습은 빙산의 일각이고 이를 가능케 한 배경 즉 교회 자체가 자본주의 체제의 정점에 있는 이익집단이 됐다는 점이 문제다. 온갖 배임 횡령, 성추행, 교회 재산권을 둘러싼 법정 투쟁 등이 주류 교회에서 터져 나왔다. 80년대 이후 대학교육을 받고 민주화 운동을 경험한 이들이 많아지면서 이런 문제에 각성했고 갈등이 생겼다. 그러면서 개신교로 유입이 안 되고 내부자는 교회를 떠나는 현상이 나타났다. ‘개독교’ 표현이 나오고 교회의 성장은 정체됐다. 교회에서 탈출한 이들은 신천지 같은 이단 종파로 넘어가거나, 정체성은 유지하되 교회에 속하지 않는 가나안 성도가 되거나, 배교했다.

존재론적 위기감에 2000년대부터 기독교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는 문제제기가 많았지만 개혁이나 반성으로 가기는커녕 교회를 파괴하려는 불순분자로 몰아 자정의 목소리에 귀를 막았다. 브레이크가 안 걸리고 계속 오다가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것이다. 광화문집회로 코로나19가 확산되는 일이 안 터졌다면 끝도 없이 갔을 거다.”

지난해 11월 20일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가 청와대 분수대 인근에서 열린 '문재인 하야 범국민투쟁본부'의 집회를 찾아 집회를 주도한 전광훈 목사와 함께 연단에서 연설하고 있다. 보수 정치권과 개신교 우익의 연대는 광복 이후 줄곧 이어졌다. 연합뉴스

-보수 정당도 쇄신하는 마당에 왜 개신교는 변하지 않나. 신도를 포섭하기 위해서라도 사회 변화를 따라잡아야지 않나.

“우선 구조적 한계가 있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교황을 중심으로 위계질서가 확실해 문제가 있으면 상급 법원 혹은 대주교, 추기경, 교황의 결정을 통해 통제가 된다. 가톨릭에서 떨어져 나온 개신교는 루터가 교황제도를 부정한 데 이어 수많은 교파로 분열되면서 상위 기관이 아예 없다. 이단이라고 몰아내도 새 교회를 세우면 된다. 18세기 이후 정교(政敎) 분리로 국가도 개입하지 않는다. 교회는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세포분열하며 늘리기만 한다. 심각한 문제 중 하나다.

역사적 경험도 무시할 수 없다. 한국 기독교의 뿌리깊은 반공주의는 칼빈주의니 웨슬리주의니 하는 신학적 정체성보다 중요하다. 광복 전 북한에 개신교의 70%가 평안도, 황해도 등 서북지역에 있었다. 지주들이었던 이들이 1945~53년 시기 주도권 쟁탈에서 공산주의자에 밀리고, 교회와 고향을 빼앗기고 월남하면서 말할 수 없는 고난을 겪었다. 신학적 충돌보다, 모든 걸 빼앗긴 체험으로 인한 적대감이 크다. 냉전 체제에서 남한은 우익 사회가 됐고 이북 출신들은 더 적극적으로 ‘공산당이 싫어요’ 목소리를 내야 했다. 개인적 경험과 생존적 요구가 만나 철저한 반공주의자가 됐다. 마침 정권을 잡았던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전 대통령은 불법 선거, 쿠데타 등으로 정통성이 부족하니 지원세력으로 기독교와 손을 잡았다. 윈윈 하며 1990년대 초반까지 부귀영화를 누렸다. 그런데 김대중 대통령이 나타나 햇볕정책을 하자 신변의 위협을 느끼기 시작했다. 노무현 정권은 사학법 개정으로 수익이 짭짤한 개신교 주머니를 건드렸다. 우리나라 사학의 80%가 개신교 사학이다. 정부가 50년 동안 개신교에 엄청 퍼준 결과다. 여기에 국가보안법도 없애겠다고 하니 개신교가 누렸던 특권을 좌파 정부가 모두 없앤다고 생각했다. 이런 위기감이 우익 전체에 있었지만 개신교 우익의 위압감이 훨씬 컸다. 혹시라도 김정은이 대통령 되면 제일 먼저 두들겨 맞을 거라는 위기감, 70년 동안 죽을 고생하며 쌓아 온 모든 것이 무너질지 모른다는 생각인 거다.

정치권은 차라리 결별이 쉽다. 싸울 기력도 없을 때는 돈키호테 같은 전 목사와 같은 배를 탔으나, 지금 지지표가 떨어져 나간다는 셈법에선 얼마든지 버릴 수 있다. 국민의힘은 권력을 탈환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고, 기독교 외 다른 지지세력도 본다. 오히려 개신교가 전 목사에게 올인했다. 그를 통해 내부 문제를 다독거리고 입지를 다졌다. 특히 대형 교회 목사들이 전광훈을 지지하고 돈과 인력도 댔을 것으로 보인다. 호랑이 등에 올라탄 꼴이다. 내릴 수도 없고 멈출 수도 없다.”

대형 교회, 개신교 주류의 근본주의가 문제

-개신교가 보수적 성향이 있기는 해도 전 목사 같은 극단적 세력은 일부라고 생각했는데, 들어보니 개신교 주류가 문제라는 것 아닌가.

“그렇다. 전 목사는 겉으로 드러난 증상일 뿐이고 그를 가능케 한 판 자체가 문제다. 경험상 전 목사는 광장에 나온 역대 목사들 가운데 최악의 경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판을 깔아주고 자금을 대 준 것이 대형 교회들이다. 사실 실명으로 전 목사를 지지하고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목사들도 다수는 얼굴마담에 불과하고 교회의 실권은 장로들, 헌금을 많이 내는 핵심 의사결정 그룹이 쥐고 있다. 상위 1% 안에 드는 기득권 세력이 대형 교회를 움직인다. 이 장로 그룹은 국민의힘과 정치적 이념과 계급적 지위가 일치한다. 우리 사회 우익 진영에서 혜택도 보고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있다. 그들이 고용한 목회자들이 그 입장을 대변할 수밖에 없다. 반대되는 얘기를 했다간 자리보존하기도 어렵다. 그런 면에서 보수정당보다 더 극단적이고 경직된 것이 보수 기독교 세력이다.”

-그래도 개신교 전체가 문제적 집단은 아닐 텐데 비율을 따진다면.

“전문적으로 말하면 ‘근본주의적 개신교’가 문제다. 종교학자나 역사학자들은 한국 개신교의 70%가 근본주의 성향이라 보고 있다. 보수 개신교를 상징하는 한기총에 7~8년 전만 해도 주류 교단이 다 있었다. 내부 갈등으로 한기총에서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 학국교회연합(한교연)이 나갔지만, 다 같은 사람들이다. 김대중 정권부터 문재인 정권까지 강력하게 반정부 목소리를 냈던 이들이다. 태극기 부대는 그 극단적 버전일 뿐이다. 미루어 짐작컨대 850만~900만 개신교 인구 중 최소 60%, 많으면 80%가 ‘친 전광훈’ 성향이다. 그렇게 상스럽지는 않아도 전광훈의 메시지에 공감하고, 선거에선 보수 정당을 찍고, 문 대통령은 무조건 싫은 사람들이다.

진보 성향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도 있다. 그러나 민주당, 정의당에 우호적인 목사, 교회는 10%가 안 될 것이다. 심지어 진보적이라는 교단 즉 감리교, 기독교장로회도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대다수 목사가 보수적이고, 지역 교회들은 (보수 교단과) 차이가 없다. 70~80년대에는 그 교단들도 NCCK 중심으로 민주화 운동을 했지만 최근 거의 보수화됐다. 고 김홍도 목사(2005년 “동남아 쓰나미는 하나님의 심판” 등 발언으로 논란을 빚었다) 형제가 감리교 제일 큰 교회 목사였는데 얼마나 보수적인가. 감리교 신학교 안에서조차 진보적 목소리가 소수가 된 시대다.”

배덕만 교수는 "가난한 자를 배려하라는 것이 가장 고유한 기독교의 정신"이라고 말했다. 배우한 기자

-목회자도 문제지만, 교인들은 왜 그렇게 맹신하나. 누가 봐도 몰상식하고 반과학적이고 내 가족과 공동체에 해가 되는 주장인데.

“나도 참 궁금하다. 일단 신비 자체가 종교의 고유한 특성이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개신교는 막스 베버의 표현에 따르면 카리스마가 강하다. 목회자는 하나님의 종이라는 특별한 존재임을 130년 동안 강조했다. 목사가 축도, 성례 집행, 안수 권한을 독점하다 보니 목회자 중심주의가 퍼졌다. 가부장 문화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두번째 이유는 근본주의 신학 사조일 것이다. 근본주의는 1800년대 후반 유럽에서 진화론 등 새로운 과학이 교리와 성경의 권위를 위협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됐다. 교회 정통성을 지키기 위해 근대주의·세속적 인본주의를 반기독교·반종교로 몰고, 성경 말씀을 순수하게 유지하려는 생각이다. 세상을 선과 악으로 양분하고 반과학적이며 분리주의적 성향이 강하다. 근본주의 신학은 미국에서 만들어져 선교사들에 의해 우리나라에 이식됐다. 이런 토대에서 좌파 정권이 교회를 해하려 한다고 주장하면 쉽게 받아들인다. 나이가 많을수록, 근본주의 신앙 색채가 강할수록, 그 시각으로만 세상을 본다. 공부를 많이 하고 사회적 지위가 높아도 소용 없다.”

소외된 자, 약자 편 기독교 원래 자리로 돌아가야

-그렇다면 도대체 개신교는 어디로 가야 하나. 주류가 자성하지 않고 개혁할 생각이 없으면 어떻게 기독교의 본질을 복원할 것인가.

“장기적으로, 루터와 칼빈이 가톨릭 자체를 바꾸지는 못했지만 나와서 새 교회를 세운 것처럼 우물을 새로 파야 할 것이다. 새로운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견디다 보면, 지지하는 이들이 생길 것이다. 신학자들이 믿는 바대로 인간이 본질적으로 종교적 존재라면 제대로 된 종교에 귀의할 소비자는 늘 있다. 그러니 선을 긋고 뛰쳐나와야 한다. 비대위 성명서도 그런 의미에서 낸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전광훈을 지지하는 건 아니다, 대면예배를 고집하는 건 아니다, 부끄럽게 생각하는 목사와 교회가 존재한다는 것을, 세상에 알릴 필요가 있다.”

-결국 내부 자정은 불가하고, 종교개혁처럼 대안 세력이 나타나 개신교 주류를 대체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런 거다. 10년 전 한국 교회가 이상하게 가는 것에 제동을 걸려면 교인의 각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대안적 신학교육기관으로 기독연구원 느헤미야를 만들었다. 일반 신도를 대상으로 한 야학 같은 것이다. 놀라운 건 지금도 400명 정도가 우리 학교에서 수업을 듣는다는 점이다. 교회 안에서 느끼는 갈증이 그만큼 심하다는 뜻이다. 대형 교회는 우리 학교 교수들을 절대 강사로 안 부르지만, 그래도 밥 안 굶고 산다. 농담 삼아 시간싸움이라고 말한다. 누가 오래 살 것인가.”

마틴 루터가 1519년 교황의 교서를 불태우는 모습을 그린 파울 투만의 그림. 루터는 교황체제를 거부하며 가톨릭에서 뛰쳐나가 개신교의 출발점이 되었지만 가톨릭 자체를 변화시키지는 못했다.

-근본적 질문이다. 이렇게 문제가 많은 종교가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가.

“역사를 들여다 보자. 종교의 순기능이 얼마나 많았나. 종교가 없어진다면 무엇인가가 종교의 기능을 대신할 것이라고 믿는다. 종교의 출발은 이기적이다. 내 생존과 번영을 위해 초월자에게 의지하는 것이다. 이 욕망이 더 자라면 종교가 이익집단이 될 수 있다. 만인의 투쟁이 될 세상이 질서정연한 상생의 세상으로 가려면, 이기심을 넘어서는 초월적 가치가 필요하다. 그 버튼이 정의, 공의, 자비, 사랑이다. 기독교 불교 힌두교 같은 고등 종교가 미신과 다른 점이다. 수많은 이익집단이 혼돈스럽게 싸울 때 서로 용서하고 공존하자는 얘기를 하는, 신호등처럼 초월의 가치를 보여주는 게 종교의 보편성, 공공성이다.

기독교의 고유성은 삼위일체나 예수의 양성론(兩性論)이 아니다. 구약과 신약에 면면히 내려오는 그 가치는 가난한 자들에 대한 배려다. 누가? 가진 자들이 해야 한다. 성경은 가난한 자들에게 혁명을 일으키라 하지 않는다. 고아, 과부, 나그네를 돌보라고 끊임없이 말한다. 세상은 평등하지 않고 공정하지 않으니 예수에게 하듯 소외된 자들에게 하라고 가르친다. 약자의 편에서 그들을 지지하고 공존하는 것이 교회의 역할이다. 130년 전에 개신교인이 한 명도 없던 때 누군가 기독교로 개종한 이유가 이 때문이라고 본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이 교회를 안 가는 이유도 이걸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변화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배덕만

대안적 신학교육기관인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교수. 백향나무교회 담임목사. 서울대, 서울신학대 신학대학원, 예일신학대학원(석사) 드류대(박사) 등에서 수학했다(교회사 전공). ‘한국 개신교 근본주의’ 등 다수의 저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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