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세 소년에 '탕탕탕'... 美 경찰 총격에 한해 1000명 사망

입력
2020.09.10 08:00
수정
2020.09.10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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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면책권'으로 과잉진압 책임 회피 가능
경찰 훈련 중 '용의자에 총기 연사하라' 교육도

집으로 출동한 경찰이 쏜 총에 맞고 중태에 빠진 자폐아 소년 린든 캐머런. CNN 화면 캡처

집으로 출동한 경찰이 쏜 총에 맞고 중태에 빠진 자폐아 소년 린든 캐머런. CNN 화면 캡처


"아이는 단지 화가 나서 비명을 질렀을 뿐인데…"

13세 자폐아 소년 린든 캐머런의 중상에 엄마 골다 바턴은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 사는 그는 4일 밤(현지시간) 자폐아를 앓는 아들 캐머런이 집에서 소란을 피우자 911에 도움을 요청했는데요.

바턴의 집으로 출동한 경찰관 2명이 캐머런을 향해 바닥에 엎드리라고 명령했지만, 분리불안 증상 때문에 예민해진 캐머런이 말을 듣지 않자 총을 꺼내 여러 차례 실탄을 발사한 것이죠. 캐머런은 어깨와 발목, 배, 방광 등에 총상을 입고 중태에 빠졌어요. 캐머런이 경찰에 의해 총상을 입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과잉진압 논란이 일었죠.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올해 만에도 총기 발사·폭력 등 경찰의 과잉진압 논란이 여러 차례 제기됐어요. 해마다 비판 여론은 거센데, 왜 바뀌는 것 없이 같은 문제가 반복될까요.


美경찰, 무고한 사람에 총 쐈는데 '무죄'

1992년 4·29 흑인폭동의 도화선이 된 '로드니 킹 폭행 사건' 당시 영상 화면. 경찰 2명이 흑인 로드니 킹을 무차별 폭행하고 있으나, 다른 경찰들은 이를 지켜보기만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92년 4·29 흑인폭동의 도화선이 된 '로드니 킹 폭행 사건' 당시 영상 화면. 경찰 2명이 흑인 로드니 킹을 무차별 폭행하고 있으나, 다른 경찰들은 이를 지켜보기만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로스엔젤레스(LA) 흑인 폭동의 계기가 된 1991년 '로드니 킹' 사건 기억하시나요. 그는 단순 교통신호 위반으로 경찰에 붙잡혔다가 무차별 폭행을 당해 청각을 잃었는데요. 당시 인종차별 폭동이 크게 일어났고, 그는 인종차별·경찰의 공권력 남용을 규탄하는 상징이 됐어요.

이후에도 에릭 가너, 마이클 브라운, 아머드 아버리, 트레이본 마틴 등 수 많은 사람들이 경찰의 폭력 때문에 희생됐습니다. 특히 희생자 중 대다수는 흑인이었습니다.

2014년 18세 흑인 남성 마이클 브라운은 미주리주 퍼거슨시에서 검문을 당하다 백인 경관의 무차별 총격으로 숨졌어요. 같은 해 7월 뉴욕 스태튼아일랜드에서는 에릭 가너가 불법으로 담배를 판매한 혐의로 경찰에게 목이 졸려 숨지기도 했죠.

켄터키주에 사는 26세 응급의료요원 브리오나 테일러는 올해 3월 자신의 집에서 쉬다가 경찰의 총에 맞아 사망했습니다. 당시 경찰은 마약사범을 찾고 있었는데, 집 주소를 잘못 찾아 테일러의 집에 들이닥쳤다고 했죠.

시장조사 및 통계 전문기관 '스타티스타'(Statista)의 조사에 따르면 올 1월~8월 미국 경찰의 총에 맞아 사망한 사람은 661명에 달합니다. 앞서 지난해 1,004명, 2018년 992명, 2017년 986명으로 드러났어요. 미국에서 한해 1,000명 가까이 경찰이 쏜 총에 희생당한다고 볼 수 있겠죠.

하지만 사건에 연관된 대부분 경찰들은 모두 불기소 처분이나 무죄 판결을 받았어요.


'공무원 면책권' 어디까지 해석해야 하나

미국 경찰관들이 7월 인종차별 반대 시위를 벌이던 15세 소년을 강경하게 진압하고 있다. 해당 장면이 담긴 영상이 온라인에 퍼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보이드 러빙 페이스북·연합뉴스

미국 경찰관들이 7월 인종차별 반대 시위를 벌이던 15세 소년을 강경하게 진압하고 있다. 해당 장면이 담긴 영상이 온라인에 퍼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보이드 러빙 페이스북·연합뉴스


억울한 죽음들이 많은데, 대부분의 사건에서 당사자인 경찰들은 왜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을까요. 바로 '공무원 면책권' 때문입니다.

1967년 대법원은 공무 중 선의로 인권을 침해한 공무원에 한해 면책권을 부여하도록 판결했는데요. 그러니까 체포 과정에서 과잉진압을 하더라도 나쁜 의도에서 한 행동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만 하면 경찰은 이에 대한 책임을 지지않아도 되는 것이죠.

당시엔 공무원들이 공무 집행 과정에서 불필요한 소송을 당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였어요. 2015년 대법원은 이 원칙에 대해 '공무원들은 상식적인 사람이 알만한 명확히 수립된 법적, 헌법적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한 공무 중 행위와 관련해 피소되지 않는다'는 해석을 내놓았죠.

'상식적인 사람이 알만한 법적 권리'라는 설명이 참 모호하죠. 누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시간이 지나면서 이 면책권은 개념이 왜곡됐고, 경찰들이 과도한 공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명분으로 자리잡았어요.


경찰의 이유 있는 총기 난사?…'그렇게 하라고 배워서'

5월 5일 미국 뉴욕 맨해튼 할렘지역 거리에서 경찰관들이 바닥에 주저앉은 한 남성을 둘러싸고 서 있다. 뉴욕=AFP 연합뉴스

5월 5일 미국 뉴욕 맨해튼 할렘지역 거리에서 경찰관들이 바닥에 주저앉은 한 남성을 둘러싸고 서 있다. 뉴욕=AFP 연합뉴스


최근 미국 CNN은 경찰이 흔히 범죄 용의자를 향해 총을 여러 차례 난사하는 이유에 대해 "대체로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경찰은 자신을 죽이거나 해를 가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 때 필요한 만큼 총을 쏘도록 훈련받았다는 겁니다.

지난달 26일 세스 스토턴 사우스캐롤라이나대 법대 부교수는 "경찰은 위험한 상황이 닥쳤을 때 용의자를 제압할 때까지 멈추지말고 여러 발 총을 연사하도록 훈련받는다"고 했어요. 용의자의 상태를 확인하려고 총격을 멈추면, 그 사이 용의자가 경찰에게 다른 피해를 끼칠 수 있다는 겁니다. 경찰이 총을 쏜 횟수는 법적으로도 따지지 않는다고 해요.

고위험 상황에서 경찰이 극도로 긴장해 판단력이 흐려진다는 점도 난사의 요인으로 꼽히는데요. 경찰 훈련 전문가 세드릭 알렉산더는 "눈 앞에 위험이 있다고 느껴질 때 뇌가 (멈추라고) 판단할 때까지 여러 차례 방아쇠를 당길 수 있다"고 했어요.

하지만 문제는 위협적이지 않은 상황입니다. 비무장 상태의 사람, 특히 흑인을 향한 총기 발사가 되풀이되면서 경찰의 총기 사용 관련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어요.

6월 미국 민주당은 경찰의 공권력 남용을 막고 책임과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경찰개혁 입법 추진에 나섰는데요. 미국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이 반대 뜻을 보이고 있어 법안이 처리되기까지 험난한 길이 예상됩니다. 어떻게든 더 이상 죄없는 피해자는 없어야 할텐데요.

이소라 기자
이은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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