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로부터 멀어지는 옛 마을의 기억

입력
2020.09.09 22:00
27면
추석 연휴를 앞둔 경북 경주시 구황동 친정을 찾은 딸이 두 아이의 손을 잡고 논자락 길을 걷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추석 연휴를 앞둔 경북 경주시 구황동 친정을 찾은 딸이 두 아이의 손을 잡고 논자락 길을 걷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예년에 없던 긴 장마와 계속 되는 코로나 정국, 여느 때보다 강했던 태풍과 함께 여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앞마당 감나무에 감이 익기 시작하면 가을이 찾아 온 것이라고 어른들께 배웠었다. 절기, 그 때가 되면 해야 할 일과 준비해야 할 일들을 예측하는 능력을 우리 조상들은 늘 겸비하였다. 5000년이 넘는 동안 농경민족으로 살아오면서 농사를 잘 짓기 위한 덕목들을 지키며 깨달은 지혜였다.

조선시대에 겪은 두 차례의 전란은 삶의 방식에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긴 전쟁을 겪은 백성들은 임금이 백성들을 버리고 도망간 사건으로 크게 놀랐다. 아버지처럼 믿었던 나라님이 더 이상 나와 가족을 지켜 줄 수 없는 존재라는 인식을 통해 씨족 마을이 생겨났다. 스스로 공동체를 만들고 환란을 극복해야 한다는 자구책으로 씨족마을이 형성된 것이다.

오늘날 남아 있는 전통마을의 흔적들은 16세기 이후에 나타나는 이 씨족마을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같은 성씨를 쓰는 집성촌이 지방 곳곳에 흔적으로 남아 보존되고 있다. 이러한 씨족중심의 전통마을은 읍성과 함께 구도심의 원형을 보여 주고 삶의 질서를 이해하게 해 준다. 농경사회 삶의 방식은 노동력의 기원인 조상을 숭배하는 가치를 중요하게 여겼다. 소와 같은 가축은 오늘날 농기계로 여겨서 도살이 금지되었다. 소고기가 귀하게 여겨진 이유도 여기서 유래한다. 마을 장정들이 모여 품앗이와 같은 공동체 삶을 통해 서로 도우며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이렇게 형성된 전통 마을들은 산과 물과 논이라는 요소를 겸비하여 그 원형을 형성한다. 논과 물은 농사를 잘 짓기 위한 기본 요소였고 산은 연료의 공급처였다. 마을마다 질서가 있었고 서로 교류하였는데 이를 위해 생겨난 경제활동 지역이 바로 시장이었다. 마을의 특산물이나 잉여 생산물들을 장터에 내다가 팔았다. 보부상들은 시장일정에 맞추어 전국에서 팔 만한 물건들을 가져다 팔았고 그 지역의 특산물을 구입해서 다음 시장에 가져가 팔기도 했다. 그뿐인가? 광대들이 모여들어 신명나게 놀이판을 벌였고 지역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이 구경과 정보 나눔으로 한껏 부풀려진 시장의 흥을 즐길 수 있었다.

세월이 한참 흘러 오늘날 도시민의 삶을 관심 있게 살펴보면 전통마을과 시장의 흔적들이 그대로 계승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세계에서 유일한 거실 중심의 한국형 아파트에 살고 있다. 시장의 역할을 하는 대형 마트와 백화점은 문화센터를 통해 옛날의 광대들이 했던 것처럼 볼거리와 놀 거리를 제공한다. 필요에 따라 오픈마켓으로 물품들을 구입하고 정보를 나누며 삶의 여백을 채워 나간다. 오래전 삶으로부터 물리적인 환경은 변화되었지만 근본적인 질서는 유사한 방식으로 계승되고 있다.

오늘도 대도시는 무한 확장과 첨단 문화 발전으로 분주하다. 그러는 사이 전통 구도심은 물리적 거리뿐만 아니라 마음의 거리마저도 점점 멀어지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빈집이 늘어가고 있으며 매년 고령화와 인구감소 중에 있다. 60대 청년이 80대 장년을 모시고 마을을 가꾸는 형국이 다반사다. 각종 재생사업을 관주도형으로 펼치고 있지만 실제 일할 사람들이 없어 허덕이는 곳이 많다. 옛것과 새것이 상보적으로 관계되는 도시가 건강하다. 대도시와 구도심의 간극을 좁히고 잠시 잊은 가치를 회복하는 일이 시급하다.



김대석 건축출판사 상상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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