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 에포크'의 상징적 종말

입력
2020.09.14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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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팔가호의 침몰(9.14)

1차대전 보조군함 트라팔가호와 카매니아호의 해전 상상도. 영국 국립 해양박물관.

1차대전 보조군함 트라팔가호와 카매니아호의 해전 상상도. 영국 국립 해양박물관.


세기말 유럽의 '벨 에포크(Belle Epoqueㆍ아름다운 시절)'는 한 시대의 돌출적 영화가 아니라 특권적 계급 계층이 인류 역사 내내도록 누린 '특수한 보편'이라 해야 할지 모른다. 그 시절이 특별히 기억되는 것은 전례 없는 물질 진보와 문화예술의 성취, 자유를 값지게 여기던 풍조 덕도 있었지만 전쟁의 반사효과, 착시효과 때문이기도 했다. 1914년 세계대전은 벨 에포크 주역들의 시공간마저 뒤집어 놓았다. 하지만 그 시절, 그 세계는 극단의 세기를 거쳐온 지금 21세기에도, 마천루 최고층 펜트하우스로 좁아져 오면서도 결코 사라진 적이 없었다.

비행기가 없던 시절, 벨 에포크의 주역들이 누린 특별한 영화 중 하나가 대륙 횡단 초호화 여객선이었다. 대항해시대 이래 거의 모든 원양의 배들은 '부수적으로' 군함이었다. 해적과 경쟁국 선박의 침탈에 대비해 함포 한두 기는 갖춰야 했다. 그 갑판에 수영장을 짓고 선상 카페를 연 게 벨 에포크 시대였고, 대표적인 게 '타이타닉호(1912년 취역)'였다.

1914년 4월 첫 항해에 나선 독일 국적 남미 왕복선 '트라팔가호(Cap Trafalgar)'는 1등실을 도금으로 치장한 1만8,700톤급 초호화 여객선이었다. 1차대전이 발발한 그해 7월 말 트라팔가호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항에 정박 중이었고, 독일 제국은 모든 민간선박의 무장을 지시했다. 트라팔가호 갑판에도 4.1인치 함포와 4기의 자동포가 장착됐고, 승무원도 군인으로 교체됐다. 보조군함(auxiliary cruiser)은 영국 등 연합군도 운영했다.

트라팔가호는 9월 14일 브라질 트린다지(Trindade) 항을 출항해 두 번째 작전 항해에 나섰다가 함포 4기로 무장한 영국 보조군함 카매니아호(Carmania)와 격돌, 약 두 시간의 격렬한 함포전 끝에 침몰했다. 카매니아호도 항해 불능의 피해를 입었다. 두 척의 군인 등 600명 가운데 사망자는 60명에 그쳤지만, 그 전투야말로 '벨 에포크'의 침몰이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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