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기물 수거, 이제 AI 앱이 처리합니다"

입력
2020.09.07 14:00
수정
2020.09.07 21:3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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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회]수거필증 필요없이 AI로 처리하는 앱 만든 같다의 고재성 대표

폐기물은 누군가에게 버려야 할 귀찮은 물건이지만 누군가에게 사업 수단이 된다. 폐기물을 버리는 일이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폐기물이란 단순 쓰레기가 아니라 사용하지 못하는 가구나 가전제품처럼 덩어리가 커 버리는 절차가 까다롭고 비용이 드는 물건들을 말한다.

가정에서 폐기물을 버릴 경우 지방자치단체가 발행하는 수거필증을 구입해 버리는 물건에 붙인 뒤 지정한 장소에 내놓아야 한다. 이후 지자체에서 지정한 수거업체가 해당 폐기물을 가져 간다. 보통 광역시는 구 단위, 일반 시는 시 단위로 폐기물 수거 위탁사업자를 선정해 관리한다.

문제는 버리는 절차가 은근히 귀찮아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기에 수거필증 비용이 전국 지자체마다 제각각이다. 수거필증 구매법과 부착 방식도 지역마다 다르다. 한마디로 표준이 없다. 그러다 보니 저렴한 동네에서 수거필증을 사서 슬쩍 버리고 오는 경우도 있다.

더 큰 문제는 사람들이 폐기물을 어떻게 버려야 하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관련 정보를 알려 주는 사이트도 없다. 그래서 발생하는 심각한 문제가 무단투기다. 깜깜한 밤중에 슬쩍 내다 버리거나 이사 갈 때 그냥 놔두고 가는 식이다.

스타트업 같다의 고재성 대표가 인공지능으로 폐기물 처리를 돕는 앱 '빼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빼기 앱은 폐기물 처리 뿐 아니라 재활용 중고거래로 쓰레기를 줄이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고영권기자

스타트업 같다의 고재성 대표가 인공지능으로 폐기물 처리를 돕는 앱 '빼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빼기 앱은 폐기물 처리 뿐 아니라 재활용 중고거래로 쓰레기를 줄이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고영권기자


수거필증 붙일 필요없는 폐기물 수거 앱 ‘빼다’ 개발

신생기업(스타트업) 같다의 고재성(37) 대표는 폐기물 수거의 문제점을 사업으로 해결하기 위해 2018년에 창업했다. 고 대표가 개발한 스마트폰용 소프트웨어(앱) ‘빼기’를 이용하면 어디서 구입하든 수거필증 비용이 동일하다. 사실상 앱을 통한 수거 비용의 표준화가 이뤄진 셈이다. 그만큼 이용자들 입장에서는 수거필증 구입 비용을 고민할 필요가 없다. ‘빼기’ 앱 자체가 수거필증 역할을 하기 때문에 폐기물에 따로 종이로 된 수거필증을 붙이지 않아도 된다. 요금 납부도 앱에서 카드 결제나 무통장 입금 등을 선택하면 된다.

절차도 간소화된다. ‘빼기’ 앱에서 주소지를 입력한 뒤 폐기물 사진을 찍어 올리면 자동으로 파악해 해당 지자체의 분류 품목에 맞는 수거필증 요금이 부과된다. 이를 위해 고 대표는 폐기물을 자동으로 파악해 분류하는 인공지능(AI) 기술을 앱에 접목했다. “앱의 사진 판독 정확성은 93~95%예요. 어떤 각도에서 찍든 동일한 물건으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해요. 또 배경에 다른 물건들이 여러 개 보여도 정확히 폐기물을 가려내는 기술도 필요합니다. 이를 위한 관련 특허 2종을 갖고 있어요.”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앱에 적용된 AI는 이용자들이 올리는 사진들을 끊임없이 학습하며 스스로 진화한다. “사진의 판독률을 높이기 위해 AI가 스스로 학습을 합니다.”

한마디로 이용자 입장에서 폐기물 처리 절차가 대폭 간소화된 셈이다. 그렇다고 고 대표는 폐기물 처리를 통해 돈을 벌지는 않는다. “수수료를 전혀 받지 않습니다. 이용자들이 낸 돈은 고스란히 지자체로 갑니다.”

같다의 폐기물 수거 담당자가 '빼기' 앱에서 '내려드림' 서비스를 신청한 이용자의 집을 방문해 무거운 폐기물을 대신 처리하고 있다. 같다 제공

같다의 폐기물 수거 담당자가 '빼기' 앱에서 '내려드림' 서비스를 신청한 이용자의 집을 방문해 무거운 폐기물을 대신 처리하고 있다. 같다 제공


“무거운 폐기물, 대신 버려줍니다”

이용자는 앱에서 폐기물 처리 신청을 모두 마쳤으면 지정한 장소에 폐기물을 갖다 놓기만 하면 된다. 만약 혼자서 들기 힘든 가구나 전자제품의 경우 앱에서 무거운 폐기물을 내려주는 ‘내려드림’ 서비스를 신청하면 된다. 그러면 수거 요원이 방문해 해당 폐기물을 지정 장소까지 가져간다. 이 경우 같다에서 수수료를 받는다. “수수료는 물품 종류와 크기 등에 따라서 다릅니다. 더러 재활용 가치가 높은 폐기물은 중고업자가 구입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구입한 중고 물품은 버젓이 수출 상품이 된다. “폐기물 중에 20%가량 재활용됩니다. 가전의 경우 피복을 벗겨낸 구리선 등을 재활용하고 가구는 수리해서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지에 중고가구로 수출합니다.”

가정을 방문하는 내려드림 서비스 요원들은 같다에서 직접 인력관리 업체를 방문해 살펴본 뒤 계약한다. “최소 2회 이상 해당 업체와 인터뷰하고 사무실을 방문해 살펴봅니다. 계약 후에는 총 30가지 항목에 걸쳐 점검하고 1가지 항목을 위반할 때마다 벌점을 부과합니다. 벌점이 일정 이상 쌓이면 계약을 해지하죠.” 그만큼 엄격하게 인력 관리를 한다.

같다와 협력 관계를 맺은 폐기물 수거업체들은 100곳이 넘는다. “현재 서울 경기 인천 대전에서만 폐기물 수거 서비스를 하고 있는데 점차 서비스 지역을 확대할 예정입니다.”

같다의 고재성 대표가 '빼기' 앱의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중고제품 판매 서비스, 가구를 디자인해 판매하는 클라우드 서비스도 구상 중이다. 고영권기자

같다의 고재성 대표가 '빼기' 앱의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중고제품 판매 서비스, 가구를 디자인해 판매하는 클라우드 서비스도 구상 중이다. 고영권기자


“폐기물 줄여보자” 사회적 문제 해결 위해 창업

일부 중고업체는 ‘빼기’ 앱에 등록된 폐기물을 구입하기도 한다. 이 경우 앱에서 경매 입찰이 이뤄진다. 보통 냉장고, 장롱 같은 큰 물건이 중고 거래로 팔린다. “큰 물건은 이동하기가 힘들어 중고거래 전문사이트에서도 거래가 잘 이뤄지지 않죠. 같다는 중고 매매 중계만 하고 거래가 이뤄지면 매입 단가의 일정 비율을 수수료로 받습니다.” 따라서 ‘빼기’는 단순 폐기물 앱을 넘어 재활용 중고거래로 쓰레기를 줄이는 역할도 한다.

폐기물 수거와 재활용이라는 두 가지 분야에서 같다의 역할을 알아본 지자체들은 속속 고 대표와 쓰레기 폐기물 수거 계약을 했다. 경기 성남시가 6월 15일부터 ‘빼기’ 앱을 이용해 폐기물 배출이 가능하도록 계약을 했고 인천시 연수구에 이어 최근 인천시 미추홀구도 폐기물 수거 협약을 체결했다.

그래서 고 대표는 같다를 “사회적 기업 형태의 소셜 스타트업”이라고 강조했다. “회사의 정관 1번에 폐기물 산업에 관련된 사회적 문제 해결이 목적이라고 나와 있어요. 단순히 돈 버는 것에만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주체할 수 없이 늘어나는 폐기물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거창한 뜻을 품고 있죠.”

그럴 만도 한 것이 국내 폐기물 시장은 규모가 무려 연간 6조4,000억원에 이른다. 산업 폐기물을 제외한 생활 폐기물만 따진 규모다. 시장은 어마어마한데 수거 방식은 20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다. 고 대표는 이를 바로잡고자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아직까지 앱을 이용한 디지털 방식의 폐기물 수거는 경쟁자가 없어요. 같다가 처음 뛰어들어 폐기물 수거의 혁신을 꾀하고 있습니다.”

고 대표가 성공 가능성을 높게 보는 이유는 폐기물을 버리는 사람과 수거하는 사람, 이를 관리하는 지자체 3자에게 모두 이롭기 때문이다. “이용자는 앱을 이용해 간단하게 폐기물을 버릴 수 있으니 편하고, 수거업체 역시 수거가 쉬워 좋아하죠. 지자체도 무단 투기 등 사회적 문제를 줄일 수 있어 반기고 있습니다.”

“자원 재순환으로 쓰레기 없는 세상 만드는 것이 꿈”

고 대표가 폐기물 사업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은 통신사인 톰슨로이터의 국내 지사에 근무한 것이 계기였다. 4년간 톰슨로이터 국내 지사의 데이터베이스 운영사업부에서 근무한 그는 미국 덴버에 있는 본사에 출장을 오가면서 미국의 폐기물 사업을 유심히 봤다. “미국은 7년 전에 이미 앱을 이용해 폐기물을 수거하고 있었습니다.”

고 대표에게 직접 영향을 준 업체는 웨이스트매니지먼트였다. “세르비아계 노동자가 창고에서 창업한 미국 스타트업이었어요. 앱을 이용해 폐기물을 수거하는 업체인데 지난해 매출이 4조원을 넘어섰죠.”

여기서 힌트를 얻은 고 대표는 한국판 웨이스트매니지먼트를 목표로 창업했다. “영국계 헬스케어 업체, 톰슨 로이터, 일본업체 프론테오코리아 등에 다니면서 10년 정도 직장 생활을 했어요. 웨이스트매니지먼트를 보고 1년 동안 창업 준비를 했습니다.”

창업 후 직원 10명인 이 업체에 IBK기업은행, 서울산업진흥원 등에서 투자를 했다. 지금은 두 번째 투자 유치를 진행하고 있다. 다행스럽게 하루 폐기물 수거 신청이 200건에 이를 정도로 이용자들이 늘고 있다. 앱 이용자 수는 현재 7만명이다.

남이 가지 않은 길이어서 경쟁자가 없지만 그만큼 시장 개척의 어려움도 있다. “일단 ‘빼기’ 앱을 널리 알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폐기물을 버릴 때 ‘빼기’ 앱을 떠올리게 만들어야죠.” 지자체와 계약도 확대할 예정이다. “올해 30여곳의 지자체와 서비스 계약을 할 계획입니다.”

나아가서 사칙연산에서 이름을 딴 새로운 서비스도 구상 중이다. “중고제품 판매를 전문으로 하는 ‘더하기’, 가구를 디자인하고 만들어서 판매 후 수익금을 나누는 디자인 클라우드 서비스 ‘곱하기’ 등을 구상 중입니다. 내년 하반기에 더하기 서비스를 먼저 선보이고 1년 간격으로 새로운 서비스를 내놓을 예정이에요.”

안타까운 것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재확산되면서 폐기물 무단 투기가 늘었다는 점이다. “경제가 어렵다보니 폐기물 수거 신청 비용조차 아끼려는 것이죠. 코로나19 이후 이사 갈 때 폐기물을 버리고 가는 집들이 늘고 있어요.”

“자원이 100% 재순환돼 쓰레기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꿈”이라는 고 대표는 여기에 기여하는 기업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그래서 고 대표는 직원을 뽑을 때 학력, 외모 등을 보지 않는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구성원의 철학이다. 채용 후에도 직급이나 직함 없이 모두가 평등하게 영문 이름으로 서로를 부른다. “면접 볼 때 스타트업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지원자에게 직업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왜 이 일을 원하는지 등을 물어요. 철학이 같아야 같은 꿈을 꿀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사명도 ‘같다’로 지었어요.”

최연진 IT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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