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산이 쏘아 올린 '시무 7조 신드롬'… '시무'가 뭐길래

입력
2020.08.3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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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이 진성여왕에게 올린 '시무십여조' 풍자
시무엔 '신하의 바른말 새겨 들어야'란 조언도

진인 조은산(필명)이 1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린 청원이 관리자의 검토를 거쳐 27일 일반에 공개됐다. 청와대 국민청원 캡처

진인 조은산(필명)이 1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린 청원이 관리자의 검토를 거쳐 27일 일반에 공개됐다. 청와대 국민청원 캡처

신하가 왕에게 올리는 상소문을 풍자해 문재인 정부의 실정을 비판한 '진인 조은산'의 '시무(時務) 7조'가 화제입니다. 30대 후반의 평범한 직장인이라고 자신을 밝힌 조은산(필명)씨가 써서 12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린 시무 7조는 청원 관리자의 검토를 거쳐 27일 공개됐는데, 공개 하루 만에 정부 답변 기준인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끌어냈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해시태그(#)를 단 짧은 글 쓰기를 선호하는 요즘 유행과 너무나 결이 다른 길고 어려운 한자말이 잔뜩 들어간 글쓰기인데도 정부의 국정 운영에 답답해하는 국민들로부터 호응을 얻었습니다.

시무 7조는 반박 글과 패러디를 양산하며 '시무 7조 신드롬'을 만들었는데요. 30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림태주 시인과 설전을 벌였고,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는 '사흉(四凶)’을 주벌하기를 청하는 소(疏)'란 제목으로 시무 7조와 비슷한 형태의 반박 상소문이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시무 7조가 대체 뭐길래 많은 사람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걸까요.

통일신라 때 처음 등장한 '시무'

불국사 삼층석탑. 게티이미지뱅크

불국사 삼층석탑. 게티이미지뱅크

시무란 '지금 시대에 중요하고 시급하게 다뤄야 할 일'을 뜻합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신하가 왕에게 올리는 상소였죠. 시무 7조는 즉 문재인 정부가 민심을 살피기 위해 시급히 해결해야 할 7가지 일을 정리한 겁니다. 최소한 이 7가지는 해야만 얼었던 국민의 마음 녹고 국정을 제대로 돌 볼 수 있다는 한 국민의 당부라고 볼 수 있죠.

시무는 통일신라 때 등장했습니다. 894년 최치원이 진성여왕에게 '시무십여조(時務十餘條ㆍ시무 10조)를 올렸는데, 신라의 뿌리인 골품제도로 사회 곳곳에 문제가 속출하고 있다고 지적한 겁니다. 조은산의 시무 7조는 최치원의 시무 10조에서 따 온 걸로 보입니다.

최치원은 시무십여조에서 고위 관리와 중앙 귀족들의 부정부패를 척결해야 한다고 고언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여기에는 '신하의 바른말을 새겨 들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된 걸로 전해지는데요. 진성여왕은 최치원의 상소를 받아들여 그를 6두품의 최고 관직인 '아찬'에 임명합니다. 6두품이었던 최치원이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자리에 앉히며 시무십여조를 실행하겠다는 왕의 의지를 드러낸 거죠.

하지만 귀족들의 반발로 최치원이 제안한 개혁 과제들은 결국 좌초됩니다. 당시에는 삼국사기에 최치원이 시무책을 올렸다는 사실만 기록됐을 뿐, 내용은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고려를 유교 국가로 바꾼 '시무의 힘'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신하가 충심과 애국을 담아 올린 시무책은 최치원의 시도가 마지막이 될 뻔 했죠. 하지만 시무 10조의 정신을 다시 살린 게 고려시대 때 최승로입니다. 최승로는 최치원의 증손입니다.

왕건의 손자인 성종은 왕위에 즉위한 이듬해인 982년 5품 이상 관료들에게 국가 현안에 대한 의견을 올리라고 청했습니다. 당시 인사와 행정업무를 담당한 최승로는 '시무 28조'를 써서 올렸는데요. 고려 초 불교계의 심각한 비리를 비판하는 내용으로, 28조 중 22조가 남아 있습니다. 나머지 6조는 1250년 몽골 침입으로 잃어버렸죠.

시무 28조는 불교계에 대한 조언은 물론 국방과 호족에 관한 정책, 중국과 관계, 지방권력에 대한 견제, 왕실 관리 등 국정 전반을 망라했습니다. 무엇보다 불교를 억제하고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삼아야 한다고 제안했는데, 성종은 최승로의 소를 받아 들여 유교를 정치 이념으로 삼는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시무 28조가 유교 국가로서의 기틀을 마련한 셈입니다.

최승로는 시무십여조처럼 왕의 됨됨이에 대한 조언도 담았는데요. '왕은 교만하지 말고 아랫사람을 공손히 대하라'며 신하의 말에 귀기울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문 대통령, 시무 7조에 응답할까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 소회의실에서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하메도프 투르크메니스탄 대통령과 통화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 소회의실에서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하메도프 투르크메니스탄 대통령과 통화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시무는 조선시대에서도 이어졌습니다. 율곡이이의 주장으로 유명한 '십만양병설'도 시무로 올라온 내용입니다. 1583년 율곡은 선조에게 '시무 6조'를 올렸는데요. 그는 "앞으로 10년 안에 나라가 무너지는 큰 화가 있을 것이니 10만 병졸을 미리 양성해 한양 도성에 2만명, 각 도에 1만명씩 두고 변란이 일어나면 그 모두를 합쳐 나라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율곡은 상소를 올린 이듬해 숨졌고, 시무 6조는 그렇게 잊혀졌습니다. 하지만 율곡이 숨진 뒤 9년 뒤인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는데, 이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역사를 돌이켜보면 충신의 진언을 새겨 들은 왕은 태평성대를 누린 반면, 이를 간과하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는데요. 문재인 대통령은 시무 7조에 과연 반응할까요. 문 대통령의이 국민의 호소에 귀기울이고 적극적으로 대응할지, 남은 임기 2년을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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