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북이 말하건대, "감히 나를 거부해?"

입력
2020.08.28 16:47
수정
2020.08.28 16:47
22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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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타임라인을 온갖 광고들이 수놓기 시작했다. 온갖 미심쩍은 사람들이 의아한 영상과 혼란스러운 카드뉴스를 내 눈앞에 들이댔다. 그 혼돈으로 가득 찬 목록에는 뿌리기만 하면 나를 스치는 이성이 한 번을 더 돌아보게 된다는 향수, 수십 년 동안 방치된 세탁기 세탁조도 신품마냥 깨끗하게 만들어 준다는 기가 막힌 세탁조 클리너, 코에 자란 모든 블랙헤드를 깨끗하게 뽑아 준다는 코팩들이 반짝거렸다.

세탁조 클리너가 내 이목을 끌었다. 나는 개당 3,000원을 주고 세탁조 클리너를 구매했다. 배달을 받고 드럼 세탁기에 클리너를 넣고 돌렸다. 새하얀 거품들이 세탁조 안에서 몽실몽실 피어났다. 남은 클리너를 찬장에 넣어두고 그 날의 일을 잊었다. 그 뒤로 마크 주커버그의 사악한 미소가 서려 있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몇 주 뒤, 나는 잡화점에서 대기업의 세탁조 클리너를 목격했다. 가격은 이전에 페이스북에서 산 것의 절반 정도였다. 그걸 본 나는 해당 제품의 성분을 기록한 뒤 집으로 돌아와 집에 남은 것과 대조해 보았다. 나는 그제야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 세탁조 클리너란 물건은 그냥 과탄산 소다를 적당한 크기로 포장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그 세척의 한계도 명료하다는 사실을.

나는 페이스북에서 산 세탁조 클리너를 비릿한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나를 위해 맞춤으로 준비되었다는 페이스북 광고들을 하나씩 차단했다. 이 광고를 보고 싶지 않아요. 세상에 한 번만 뿌려도 강의실 전체가 향으로 꽉 차는 향수가 어딨어요, 그걸 누가 써요.

그러자 20대 남성이라는 코호트의 심연에 있는 구정물이 스멀스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신용등급 9등급, 연체 이력자, 군 미필, 무직도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는 자동차 담보 대출. 대출자 사진이 첨부돼 있었는데 옆구르기 하면서 봐도 내 또래였다. 나는 내 일도 아닌데 눈앞이 깜깜해졌다. 20대에 제3금융권으로부터의 추심과 개인회생을 경험할 필요까지는 없지 않은가? 그것마저 차단하자 이제 자기는 인생을 성공했다면서 외제차 앞에서 똥폼을 잡으며 그 비결을 알려주는 떡대의 영상이 내 타임라인에 등장했다. 그 사람의 ‘성공 비결’은 불법 온라인 도박이었다.

바가지를 써서 과탄산 소다에 두 배의 돈을 치른 건 그럴 수 있다. 나는 손해를 봤지만 그 돈은 과탄산 소다를 소포장하고 있는 중소기업의 직원들에게 흘러가서 일용할 브로콜리와 양파와 달걀로 화했을 것이다. 그러나 불법 도박은? 취약층을 겨냥한 대부업은? 나는 요즘 중고등학생들이 불법도박에 중독되는 것이 사회문제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이제 차단이 아니라 신고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광고들은 끝없이 증식했다. 계정을 새로 계속 만드는 모양이었다. 결국 내 타임라인은 쑥대밭이 되어 버렸고 나는 참회의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B급이지만 이토록 천박하지 않고, 속여도 후기 정도만 속이는, 가끔은 그 속에 빛나는 센스가 숨어 있기도 했던 그 광고들이 그리웠다.

앞으로는 쓸데없는 의문을 품지 않기로 했다. 그제서야 페이스북의 소중한 가르침을 어렴풋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주인님께서 하찮은 유기체인 나를 위해 손수 맞춤 광고를 설정해 주셨으면 부정하지 말고 받아들이는 것이 그나마 고뇌를 더는 길이라는 사실 말이다.



심너울 SF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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