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기후변동 커... 기나긴 장마·폭염은 위험 신호”

입력
2020.08.20 20:00
수정
2020.08.27 16:41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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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철의 관찰] 박태원 전남대학교 교수

박태원 전남대 지구과학교육과 교수는 지난 19일 한국일보 [논담] 인터뷰에서 "지구 기후변화는 이제 언제라도 대홍수와 슈퍼태풍, 폭염 같은 기상이변을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절실한 현실이 됐다"고 말했다. 정준희 인턴기자

박태원 전남대 지구과학교육과 교수는 지난 19일 한국일보 [논담] 인터뷰에서 "지구 기후변화는 이제 언제라도 대홍수와 슈퍼태풍, 폭염 같은 기상이변을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절실한 현실이 됐다"고 말했다. 정준희 인턴기자


기나긴 장마의 터널을 빠져나오니, 폭염과 코로나19 2차 확산 위기가 닥친 셈이 됐다. 정말 고달픈 여름이다. 지난 장마는 중부지방 기준 무려 54일간이나 이어졌다. 평년의 32일보다 22일이나 길었고, 1973년 기상청 통계작성 이래 최장기간, 전국 누적 강수량으로는 역대 2위를 기록했다.

장마 지속기간보다 중요한 건 장마의 내용이다. 올해 장마는 북극과 시베리아 지역의 이상고온, 북태평양고기압의 약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그리고 이 모든 기상이변의 원인으로 무엇보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가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런 면에서 이번 장마는 사람들에게 새삼 지구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을 새삼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최근 기상청과 환경부가 공동으로 펴낸 '한국 기후변화 평가보고서 2020'을 총괄 정리한 박태원 전남대 교수는 “이번 장마는 지구온난화가 얼마든지 국지적 기상이변을 일으킬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해진 현실을 일깨운다”며 “집 뒤에 물을 잔뜩 머금은 축대가 가까스로 버티고 있는 상황인 만큼 당장 대응체제 구축을 서두르지 않으면 재앙은 괴멸적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북극 온도 4~5도 급등, 지구 온난화보다 심각

-지난 장마는 유례가 드물게 길었고, 대기순환적 성격도 예년과 달랐다고 한다. 이번 장마를 기상학적으로 어떻게 평가하나.

“장마는 보통 7월 중순부터 북태평양고기압이 확장하면서 장마전선을 북한 쪽으로 밀어 올리며 끝나야 한다. 그런데 올해는 북극과 시베리아 고온현상으로 해당 지역 상공에 따뜻한 기단이 형성돼 북태평양고기압이 확장됐어도 오호츠크해 기단 등 대륙 북쪽의 차가운 기단이 북상을 못하며 장마전선이 한반도 상공에 오랜 기간 유지되면서 장마가 길어졌다.”

-북극과 시베리아 지역의 고온현상은 이례적이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와 연관이 있는가.

“기후변화는 매우 장기적인 개념이다. 반면 올해 북극과 시베리아 이상 고온현상은 단기적 기상현상이다. 두 상황을 직접적으로 연관 짓는 건 좀 무리가 있다. 다만 북극 고온현상은 점차 심각해지는 지구온난화의 양상을 극적으로 나타낸다. 북극 온난화는 일반적 지구온난화보다 더 심각하다. 지표온도는 지난 100년 간 1도 내외 올랐다고 하는데 북극은 4~5도 급등했다. 북극 온도가 더 많이 오르는 이유는 얼음은 하얀색에 가까워 태양열(태양복사)을 반사한다. 그런데 온도가 올라 얼음이 녹고 심해의 검은색에 가까운 수면이 노출되면 오히려 태양열을 더 잘 흡수한다. 그러면 온도가 더 높게 올라가 얼음을 더 빨리 녹이게 되고, 여기에 더 많이 태양복사를 흡수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온난화가 가속화하는 현상이 일어난다. 그걸 ‘북극증폭’이라고 하는데, 올해 북극 이상고온은 그런 양상이 심해졌다는 걸 나타낸다.”

-지난 6월20일 시베리아 최북단의 ‘지구에서 가장 추운 마을’로 불리는 베르호얀스크 최고 기온이 38도에 달했다. 지난 7월 중 시베리아 지역에선 약 300곳에서 산불이 발생하기도 했다. 시베리아 이상고온도 북극 고온현상과 연관된 건가.

“아마 인접한 지역이니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을 수 있긴 하지만 아직 섣불리 단정하긴 어렵다. 그 밖에 엘니뇨 문제라든가, 시베리아 지역이 지난 겨울에 눈이 많이 녹아 더 뜨거워졌다든가 그런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다. 다만 시베리아 지역 자체가 워낙 내륙에 있다 보니 원래 연교차는 크다. 여름에 뜨겁고 겨울에 차가운 건 원래 있는 상황인데, 그래도 베르호얀스크 38도 왠지 섬뜩한 기분이 들 정도의 극단적이고 이례적인 현상이다. 기상학적으로 풀어야 할 과제가 될 것 같다.”

-북극이나 시베리아뿐만 아니다. 유럽이나 오세아니아 폭염 등 세계 곳곳에서 기상이변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 올 여름의 전 지구적 기상이변에 대한 불안감이 적지 않다.

“사실 단기적, 지역적 기상이변은 역사적으로 드문 일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2018년 기록적인 더위를 기록한 적이 있고, 유럽은 2003년 폭염으로 많은 사람이 죽었다. 다만 기상이변의 정도나 빈도가 점점 심해지고 잦아드는 느낌이 드는 건 사실이다. 지구온난화가 가속화 하면서 전체 기후 및 기상 메커니즘에 모종의 특이점을 자극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지구의 복수’라는 자극적인 표현이 있지만, 대홍수나 폭염, 슈퍼태풍 등이 잦아지는 걸 보면 그런 느낌도 없지 않다.”

지구 온도 0.5도 더 오르면 돌이킬 수 없어

-최근 기상이변으로 기후변화에 대한 경각심이랄까, 관심이 높아졌다. 지구촌 기후변화의 현주소는.

“기후변화는 수억 년 전부터 진행돼왔다. 엄밀히 말하면 최근에 일어난 기후변화는 주로 지구온난화라는 말로 설명한다. 산업혁명 이후 150년 간 지구온도 변화가 최근 가속화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기온 상승 속도가 점점 가팔라진다는 얘기다. 산업혁명 이후 지구온도 1.5도 상승을 지구온난화 임계점으로 보는데, 지금은 대략 1도 상승점을 지나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이밖에 강수량이나 해수면 상승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할 때 임계점에 점점 빠르게 다가가고 있는 셈이다.”

-‘기후변화 임계점’이라는 건 무슨 의미인가.

“지금 산업혁명 이전 대비 지구 지표온도가 약 1도 올랐다고 한다. 국제기구에선 산업혁명 이전 대비 2도 이내로 기온 상승 저지 목표가 정해졌고, 학계에선 1.5도를 임계점으로 보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까 산업혁명 이전 대비 1.5도, 지금보다 0.5도 기온이 상승하면 지구 기후변화가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된다는 의미에서 ‘임계점’이라는 용어가 쓰이는 것 같다. 사실 산업혁명 이전까진 1도 올라가는데 수백 만년이 걸렸다.”

-지구 전체의 변화에 비해 우리나라 기후변화는 어느 정도인가.

“우리나라는 세계 평균에 비해 기후변동이 크게 일어나고 있다. 대륙과 대양의 접점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 때문이다. 똑같이 이산화탄소 농도가 올라가도 우리나라는 다른 지역에 비해 민감하게 온도가 올라간다든가 여름 강수가 올해처럼 많이 온다든가, 봄에 가뭄이 더 심해진다든가 이런 현상과 반응이 민감하게 나타나는 지역이라는 얘기다. 일례로 1880~2012년 지구 평균 지표온도은 0.85도 상승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1912~2017년 약 1.8도 급등했다.”

-근년 들어 지구 기후변화와 온난화 현상이 가속화 하는 원인은.

“온실가스를 계속 배출하는 게 가장 큰 원인이다. 온실가스라는 게 배출하고 나서 1년 지나면 없어지는 게 아니라, 대부분 누적되기 때문에 배출을 억제해도 농도는 계속 증가한다. 1850년대 산업혁명 초기 누적 이산화탄소량은 270ppm, 즉 공기 100만개 중에 이산화탄소가 270개 있었는데, 지금은 400ppm을 넘기고 있다. 약 1.5배 증가한 것이다. 산불과 개발로 인해 아마존 열대우림 등 지구촌 삼림이 줄고 있는 상황과, 시베리아 등 고위도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매장 탄소 발생이 증가하는 것도 온난화 악순환을 일으키는 요인이다.”

-지구온난화가 가속되면 질병도 증가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번 코로나19 확산도 그런 맥락에서 볼 여지가 있나.

“병리학적 설명을 드리긴 어렵고, 다만 지구온난화와 질병 확산과의 관계는 지구온난화로 지구 온도 변동성의 폭이 예를 들어 20도에서 25도로 확대되면 확대된 만큼 질병 바이러스나 세균 같은 게 활성화할 여지가 커질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한국 기후변화 평가보고서 2020’에 따르면 기온 1도 증가 시 말라리아가 9.52~20.8%, 살모넬라 47.8%, 장염비브리오가 19.2% 증가하는 것으로 평가됐다.”

미국 기후협약 탈퇴 강행, 부끄러운 실책 될 것

-미국이 파리 기후변화협약 탈퇴를 선언하는 등 국제사회의 기후변화 대응체제가 과거에 비해 약해졌다는 우려가 많은데.

“트럼프 행정부가 탈퇴를 선언했고, 1년 유예기간을 감안하면 올해 10월이 실제 탈퇴 이행 시점이다. 아직 탈퇴가 결행되지 않아 이행계획 같은데 당장 차질이 빚어진 건 아니다. 다만 미국의 행보가 기후변화 대응 관련 글로벌 리더십을 흔들고 있는 건 사실이다. 이산화탄소 감축 목표를 둘러싼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저개발국 사이의 이견 같은 게 여전히 해소되지 않아 기후변화 대응력이 결집되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미국이 실제로 기후변화협약 탈퇴를 강행한다면 매우 부끄러운 실책으로 남을 것이다.”

-지구온난화와 관련해 이산화탄소 감축이 중요한 목표가 되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국내 ‘탈원전 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만만찮은데, 기후학자로서 어떻게 보는가.

“친환경에너지 개발은 당연하다. 하지만 친환경에너지 생산이 충분한 경제성을 확보하기 전에 지나치게 급하게 ‘탈원전 정책’이 강행되면 자칫 이산화탄소 배출 저감 목표를 실현할 수 있는 여지가 좁아질 우려가 크다. ‘탈원전 정책’을 해도 과속보다는 점진적으로 정책적 딜레마를 피하면서 균형을 맞추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장인철 논설위원
변한나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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